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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93.전화

puresmile 2015. 10. 18. 02:25

*전화


1.

전화가 왔다.

나는 사무실에서 나와 여자화장실 맨 끝 칸으로 들어갔다.

수화기 너머로 그녀가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심장이 내려 앉았다.

대충 전화를 얼버무려 끊었다.

그녀는 왜 학교에 가지 않았을까.

마음 속에 있는 무엇이 그녀를 힘들게 했을까.

얼마나 그녀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그 이면엔 내 잘못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나의 충분하지 못한 애정이 그녀를 힘들게 만들진 않았을까.

우리가 같이 있던 시간에 조금이라도 그녀를 더 애정으로 대해줄걸.

엄청난 시간들을 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에게 따뜻하지 못했다.

항상 나를 먼저 생각했고, 그녀는 항상 자의반 타의반으로 내게 양보했다.

나는 항상 그녀의 앞에 있었고, 그녀는 항상 내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어렸던 나는 그녀의 마음을 살펴 볼 겨를은 커녕,

그녀의 생활 전반에 대해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최소한 내가 본 시각에서는 그랬다.

이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내 탓인 것 같았다.

순식간에 시야가 흐려졌다.

눈물이 쏟아졌다.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곧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였고,

옷 소매로 눈물을 스윽 훔치고, 휴지로 눈 주변을 꾹꾹 누른 다음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내가 참으로 미웠다.


2.

전화가 왔다.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몇 년 동안 들으려고 해도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였다.

그렇게 무턱대고 전화를 먼저 할 줄 몰랐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고, 전화를 받으면서도 그 다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를 굴렸다.

말하고 싶었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으며, 어딜 다녀왔으며,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하루하루가 숨이 막혔던 시절도 있었고, 왜 지금에서야 연락을 했는지, 왜 연락을 끊었는지.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다 접고, 원망과 욕설보다는 지금 잘 지내고 있냐고 물었다.

수화기 너머로 잘 지내고 있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그래, 그거면 됐다고 이야기했다.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물었다.

수화기 너머로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다고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현재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언급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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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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