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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127.순간

puresmile 2016. 6. 12. 13:45

*순간


1.

2주 전부터 목이 갑갑하더니, 의사가 편도염이라고 했다.

목 안이 다 헐고, 목 안에 백태까지 생겼다고 한다.

몸에서 열도 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3일을 꼬박 집에서 쉬었다.

아, 그리고 의사가 커피도, 술도 모두 마시면 안된다고 했다.

그 두 가지의 금기사항이 나를 생각보다 답답하게 만들었다.

왜 나는 꼭 여름이 되면 아플까. 겨울에는 감기 한 번 안걸리고 멀쩡하더니.

예전에도 여름에 몸살이 제대로 나서 일주일동안 방 안에서만 골골대며,
겨우 아빠가 지어온 정체불명의 센 약을 먹고 나은 적이 있다.
여름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여름만 되면 아파서야 되겠나.
내년 여름에는 아프지 않길 다짐해본다.
몸에 컨디션이 급속도로 나빠져서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을 때가 제일 싫다.
몸이 아프면 무기력이 찾아온다. 제발 아프지 말자. 

2.

어느 해의 일기장에는 '정신차리자' 따위의 글들을 잔뜩 늘어져있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아무리 정신을 차려봤자 제자리걸음, 또 제자리걸음.

그저 내가 그 시기를 인지하고, 또 인지하리라, 라는 생각으로 적어놓았던 것 같다.

이런 시기도 꿋꿋하게 기억하고, 또는 아무 생각없이 흘려보내지도 않고,

시간이 빨리가라, 라는 등의 말도 안되는 주문으로 하루하루를 덧없게 보내지도 않고,

그냥 말 그대로 그 시기를 받아들였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시기에 저항할 수 있는 건

내 서재 속에 꼭꼭 숨겨져 있는 내 일기장을 밤마다 꺼내어 '정신차리자', '정신차리자', 또 '정신차리자'라고 적어놓는 수 밖에. 

어느 하루는 답답함이 극에 달했던지, 아니면 분노가 차올랐던지, 마지막 '자'의 글씨를 엄청나게 휘갈겨 써놓았다.

그렇게 내 손에서 해결하지 못할 답답한 시기들이 내 곁을 지나갔다.

다행히 나는 내 일기장의 꽤 많은 면들을 그 시기에 바쳤을 뿐, 어느 다른 것들을 더 희생하진 않았다.

그러기 싫었다.


3.
나를 툭툭 치고 가는 텍스트들에 대해  심장이 약한건지, 마음이 생각보다 약한건지, 

머리가 쭈뼛쭈뼛하며,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순간이 있다.

그럴땐 행동이 느려지고, 생각하기를 멈추며, 몸에 힘이 빠지며, 공포심에 휩싸인다.

내가 더 대범해지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루종일 마음이 불편하고, 아무리 나만의 강경책을 펼쳐도, 

그 기분을, 그 마음을, 그 순간을 이겨내기가 어렵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때마다 내 옆에는 같이 웃을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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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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