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1. 대화
조금만 내게 귀를 기울이면 많은 소리들이 들린다.
내 두 발이 말했다.
하이힐이 그렇게 좋냐고.
내가 소리지르는 건 들리지 않냐고.
그럴수록 나는 더 높은 힐을 찾았다.
내 왼팔이 말했다.
왜 오른팔에는 무거운 가방을 들지 않냐고.
양 팔로 나눠 들면 조금은 더 가볍지 않겠냐고.
왼팔에겐 미안하지만, 오른팔에 무언가를 들고 있어서
못쓰게 되는 상황이 오면, 난 왠지 모르게 불안해.
내 귀가 말했다.
몇 개의 노래들만 듣지 말아달라고.
왜 하루에, 아니 일주일, 어쩌면 한 달 내내 몇 개의 노래들만
몇 년 째 듣고 있는 거냐고. 지겹지도 않냐고.
나는 이제 그나마 조금씩 다른 노래들을 찾기 시작했었고,
그리 성공율이 높진 않았다.
내 손톱이 말했다.
나도 예쁜 매니큐어 한 번 쯤 발라보고 싶다고.
왜 자꾸 3일마다 자르기만 하고, 꾸며주지 않는거냐고.
그럴수록 나는 더 손톱을 짧게, 더 짧게 잘랐고,
손톱 자르는 주기를 최대한 앞당겼다.
내 눈이 말했다.
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지 않냐고.
자꾸 갔던 곳들만 가려하냐고.
익숙함을 찾고 싶어서, 편안함을 찾고 싶어서,
갔던 장소들을 회상하곤 했는데.
하긴, 아직 안 가본 곳들이 수두룩하니 용기내어 가보자.
내 등이 말했다.
나만 왜 바디로션을 발라주지 않는 거냐고.
건조해서 힘들어하는게 느껴지지 않냐고.
누군가가 발라주지 않으면 내게 등은 여전히 바디로션 바르기가 쉽지 않다.
내 어깨가 말했다.
너무 딱딱해졌다고.
바짝바짝 뭉쳐있어 숨 쉬기가 힘들다고.
아주아주 가끔씩 안마를 받으러 가긴 하는데,
뭉치는 횟수가 잦다. 나 역시 너무 아파.
내 뇌가 말했다.
언제까지 같은 생각, 좁은 생각만 할거냐고.
조금만 더 넓은 생각을 해보면 어떠냐고.
넓은 생각은 무엇이고, 좁은 생각은 무엇인지, 뭐가 기준인지 변명삼아 반문해보지만,
결국 반성하게 된다.
조금만 내게 귀를 기울이면 많은 소리들이 들린다.

2. 오늘의 도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카페에서 책을 읽고 싶었다.
그 카페에 가는 길은 익숙했다.
그 카페를 가는 길은 어언 8년 전에 처음 가봤던 길이였는데,
카페에서 두 블럭 쯤 전에 있었던 펍에서 테라스에서 맥주와 고로케를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한 번도 안가본 카페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어두웠고, 그렇게 맛있다고 극찬하던 라떼는
역시나 기대를 잔뜩하고 가서 그런지 굉장히 별로였다.
오래된 카페여서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고,
내가 갔을 때에도 벽을 보는 자리 뿐이 남지 않아서 벽을 보고 앉았다.
눈 앞에 작은 스탠드 조명이 하나 켜 있었는데,
그 스탠드가 없었으면 아마 책을 못 읽었을 것이다.
시집을 들고 나왔는데, 두 번째 읽는 시집이지만 여전히 어려웠다.
이해가 가는 시도 있고, 이해가 가지 않는 시도 있었다.
그래도 처음 볼 때보단 글이 더 많이 읽혔다.
테이블은 생각보다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내 등 뒤로는 사람들의 대화소리에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시끌시끌했다.
그리고 뭔가 어색하게도 서빙하는 사람들이 계속 자리가 났는지,
주문을 받지 않은 테이블이 혹여라도 주문할까하며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안그래도 어수선한 카페가 더 어수선해보였다.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아,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 사실은 추운데 밖으로 나가지 않아서 좋았는데,
카운터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어서 어정쩡하게 카운터 앞에 서서
화장실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그 순간이, 참으로 더디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원래 생각보다 조금 빨리 나는 그 카페에서 나왔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 번도 걷지 않았던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3. 우울한 랩소디 , 노혜경
그녀는 우울하다
빨래를 할 때 우울하다
우는 아이를 때릴 때 우울하다
유리창을 깰 때 우울하다
그녀의 우울을 가시게 할 비법은 없다

그녀는 랩소디를 듣는다
랩소디는 우울하다
비명은 우울하다
현을 켜다 말고 자살해 버린 바이올린 주자는 우울하다

랩소디를 그치게 할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우울한 랩소디를 듣는 사람은 우울한 사람이기 때문에

무한반복의 짧은 소절 안에
한 생애가 갇혀버린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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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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