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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179.문턱

puresmile 2017. 6. 11. 23:01

*문턱

1. 슈퍼 안으로 날아들어간 사람
조금 더 싼 가격을 찾아 헤매던 한 여자애는
길가에서 허름하지만 작은 두 가게정도를 합쳐놓은 것만 같은 슈퍼를 찾았고,
저 슈퍼에는 마치 찾던 물건이 합리적인 가격에 있을 것만 같아 씩씩한 발걸음으로 슈퍼에 도착했고,
미처 보지 못한 슈퍼 입구의 높은 문턱에 걸려 슈퍼 안으로 거의 날아들어가게 되었다.
슈퍼입구를 기준으로 오른쪽 카운터에는 주인 할아버지가 앉아있었고,
슈퍼입구를 기준으로 왼쪽 난로가에는 주인 할아버지 친구가 앉아있었다.
정확히 두 할아버지의 중간에 갑자기 어떤 여자애가 날아서 비련의 여주인공마냥 착지했으며,
그 두 할아버지는 너무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며 벌떡 일어났다.
그 여자애는 사실 많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두 할아버지의 리액션에 덩달아 놀라 '아얏! 아프다'라고 내뱉었으나,
사실은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다리가 풀려 계속 털썩 자세로 일어나지 못했다.
두 할아버지는 그 여자애의 양쪽 팔을 잡고 일으켜세웠으며, 연신 괜찮냐고 물어보고 또 물어보기 바빴고,
이제 다리에 힘이 생겨 걸을 수 있는 여자애는 치마를 툭툭 털며 '괜찮아요!'라고 외치며,
'혹시 여기 콘센트는 어디있어요?'라고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고, 
주인 할아버지는 '귀하고 어렵게 오셨는데 콘센트가 어딨더라' 하면서 선반을 뒤적거리며 콘센트를 찾으려했고,
결국 콘센트를 찾지 못한 주인 할아버지는 '콘센트가 원래 있었는데..'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귀하고 어렵게 오신' 여자애는 괜찮다고 웃으며 높디높은 슈퍼 문턱을 찬찬히 바라보며 
이번엔 정확히 디디고 나가야겠다는 생각과, 그럼 집 앞 편의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로가에 다시 앉았던 주인 할아버지의 친구 할아버지도 조심히 가라며 손을 흔드는 것을 보며
그 여자애는 다시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2. 여름감기
목소리가 갈라진다.
쉰 목소리가 난다.
며칠 전 병원에 가보니 급성인후염이라고 했다.
의사선생님이 다시 말하면 그냥 목감기라고 하면서 약 잘 챙겨먹으면 된다고 했는데,
그래서 나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고 약을 잘 챙겨먹었는데,
술도 안마시고, 커피도 정말 거의 안마셨는데.
목소리가 갈라진다.
쉰 목소리가 난다.
나는 겨울에 참 튼튼하다.
하지만 여름에 감기가 걸린다.
여름감기가 독하다던데.
돌아보면 심하던 약하던 그냥 다 여름에 끙끙 앓았다.
겨울 추위에는 강해도,
에어컨 앞에선 한없이 약해진다.
회사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켜자마자 그만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무릎담요도 잘 덮고 있었는데. 
음. 저녁 약을 챙겨먹어야겠다.

3. -
시간이 흘러도 마음의 짐이 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짐의 무게가 더 선명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덜 곳 조차 없었고,
차라리 외면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 큰 것을 어찌 외면하리.

4. 생각을 해보니까
나는 다정한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다정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 좋다.
나는 나에게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 좋다.
나는 다정한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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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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