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

1.
어릴 적에 하루는 외출하고 집에 들어오시는 엄마 손에 순대 한 봉지가 들려 있었다.
먹고 싶어서 사오셨다면서, 같이 먹자는 엄마의 한 마디와 함께.
초등학생 꼬맹이였던 나는 왜 떡볶이를 사오지 않았냐며, 순대만 사오면 맛이 없지 않냐며 투덜댔다.
그 당시 나는 순대보다 떡볶이를 훨씬 맛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는 어른이니까 떡볶이보다 맛없는 순대를 더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분명 내게 순대는 떡볶이를 일단 시키고, 뭔가 심심하니 서브로 시키는 음식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종종 떡볶이가 아닌 순대만 떠올랐다.
떡볶이보다 순대 특유의 고소한 맛을 느끼며 맛소금에 찍어먹고 싶어졌다.
순대를 도대체 어디서 팔았더라. 집에 가는 길에 동네에 뭐가 있었는지 떠올려보았다.
아, 집 가까운 곳에 분식포장마차가 있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내 지갑엔 현금이 없었다. 그래서 부러 조금 멀리 있는 은행에서 현금을 뽑아서 포장마차로 향했다.
나는 순대에 있는 내장도 좋아해서 간과 허파, 오소리감투 모두 다 추가해달라고 한 뒤 군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드디어 따끈한 순대가 내 손에 들려 집으로 온 뒤 순대를 먹었다.
내가 순대를, 그것도 순대만 먹고 있다니. 그 사실이 갑자기 새삼스럽고 웃겼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서 가족채팅방에 보냈다.
그랬더니 역시나 아빠도, 너네 엄마랑 어쩜 똑같냐며, 순대가 어떻게 먹고싶을 수가 있냐며, 신기해했다.

2.
새삼스럽지만, 네가 순대를 잘 먹어서 난 좋다. 간 정도는 싫어해도 괜찮아. 같이 순대를 먹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런 너의 삶에 빈틈없이 스며들어서 마치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너에게 그런 존재로 남고 싶다. 

3.
순대볶음, 닭갈비, 낙곱새 등 이런 음식을 먹을 때 난 항상 당면을 먼저 집어들고, 그 다음은 당근을 집어든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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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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