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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247.고속도로

puresmile 2018. 9. 30. 22:34

*고속도로

1.
꼭 A라는 직업을 가져서 성공을 하고, 꼭 B라는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하고, 앞으로의 일생을 함께하고, 꼭 C만큼의 돈을 가질 수 있고, 꼭 D라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라고 했다. 이 세상에 A가 무엇인지, B가 누구인지, C가 얼마인지, D가 어떤 방향인지는 아무도 정답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엄청난 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것이 그 날의 위로였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듯 모든 것들이 순탄하게만 흘러간다면 나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도, 내가 누구인지 알 기회도, 과연 내가 온전한 나로서 지내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2.
나보고 산청까지 운전을 하란다.
단 한 번도 고속도로를 탄 적이 없는 내게.
처음부터 끝까지 운전을 하라고 했다.
못한다고 엄살을 더이상 부릴 수가 없어서 다음날 아침에 운전할 때 갈아신을 운동화를 챙기고, 내 허리와 등을 받칠 만한 가디건을 둘둘 말아서 출근했다. 
운전대에 앉았고, 안전밸트를 채웠다.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다. 고속도로라는 미지의 세계가 무서웠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옆 차선의 속도가 무서웠고, 가끔 뉴스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고속도로 사고 블랙박스 영상이 괜히 생각나서 무서웠다. 
하지만 불안함에 떨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조수석과 뒷좌석엔 나 외에 3명이 더 탔다. 아. 아.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엑셀을 밟았다. 
정신을 차리자 내가 고속도로에 와 있었다. 서울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차가 거의 없었다. 엑셀을 더 세게 밟았다. 계기판을 슬쩍 보자 속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속도 90km/h도 무서웠는데, 100km/h으로 더 달려버리자 90km/h이 더이상 무섭지 않았다. 100km/h가 무서웠는데, 110km/h로 달려버리자 100km/h가 무섭지 않았다. 생각보다 안무섭네. 생각보다 할만하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달리자 어느새 산청에 도착했다. 
어떻게든 하면 되긴 되더라고.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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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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