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나마

그때 2013.06.07 14:06
치과배드에 몸을 뉘였다.
짧은 치마를 입은 내 다리엔 담요가 덮어지고,
치과 조명기 바로 아래에 있는 내 얼굴엔 입 쪽에만 동그랗게 구멍이 나 있는
청색 도포가 씌워졌다.
조금 뒤에 간호사가 내 입을 벌리더니 이에 붙은 브릿지들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순간 내 귓가에 결혼행진곡이 들렸다.
치과에서 결혼행진곡을 틀어주더라.
참으로 묘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 하필 많은 노래 중에, 정말 수만가지 노래 중에 결혼행진곡이라니.

점점 생각에 꼬리를 물고 꼬리에 꼬리를 또 문다.
내가 결혼하는 날이 올까,
그 때 내 옆에서 멋진 턱시도를 입고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사람은 누굴까.
정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을 하고는 있을까.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이랑 평생을 살면 행복할까.
아이는 내 욕심대로 낳을 수 있을까.
내가 꿈꾸던 결혼생활은 하고 있을까.
매일매일 삶이 재미있을까.
혹시나 싸우면 뭐 때문에 싸우게 될까.
등등.

'연희씨 두어번만 더오면 끝날 것 같아요' 라는 남자 목소리와 함께 내 생각은 끝났다.
어느덧 의사선생님이 간호사와 바톤터치를 한 것이다.
간단하게 담소를 나눈 뒤 의사 선생님은 다음 환자를 진료하러 자리를 떴고,
몇십분 누워있어서 눌린 부시시 해진 뒷머리를 어루만지며 배드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굳이 생산적인 생각이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어느 시점을 떠올려본다.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그때 내가 잘 한 걸까?

너무 이기적이였던 건 아닐까.

음, 이기적이였던 것도 같다.

그 당시 문득 든 생각이,

만약 조금 더 나아가다보면 결국 서로 미워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랬다.

좋은 감정만 가지고 떠나고 싶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앞에 나만 이라는 단어가 붙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 날 이해하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나의 모습까지 감싸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은 정말 큰 욕심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들은 내 생각과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뭐 그게 대수라며.

근데 나는 돌이켜볼때 마음아픈 기억을 더 추가한다는 것이 더 싫었다.

세상에 확실한 관계들이 어디있겠냐만은,

나는 도무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을 바랐던 것이였을 수도 있겠다만은,

그래도 나는 그런 관계에서 만큼은 판타지를 꿈꾸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더 마음을 주지 못했던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어폰에서 걸쭉한 휘성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같은 날, 딱 듣기 좋은 목소리다.




'그렇게 생각하든 저렇게 생각하든 정답은 없다'라는 위안 아닌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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