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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34.결혼식

puresmile 2014. 8. 31. 15:37

*결혼식


1. 고등학교 2학년. '政治'라는 과목을 좋아했다. 좋아하는지라 잘하기도 했다. '政治'선생님은 단발머리에 깐깐한 이미지를 지닌 여자선생님이셨다. 아마 입술 위에 점이 포인트로 하나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어려운 '政治'라는 과목을 그 선생님 덕분에 머릿 속에 쏙쏙 들어왔고, 시험도 만족스러운 성적이 나와주었다. 그런 '政治'선생님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잘됐구나, 하며 좋아하고 있는데, 국어선생님이 오시더니 내게 같이 축가를 부르자고 제안하셨다. 정확히 말하면 나와 우리반 여자아이 한명 더. 국어선생님이 성악을 예전에 잠깐 하셔서 성량이 크기 때문에 여자파트는 두명이 커버해주어야 한다고 했고, 어찌어찌하여 내 생애 첫 축가를 부르게 되었다. 그때 부른 축가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선곡된 노래 듣고 있는데, 김동규,조수미의 듀엣은 정말 아름답고 듣기 좋았다. 이 노래를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3주 전 쯤 학교 음악실에 모여서 첫 연습을 했다. 국어선생님은 긴장한 나와 우리반 여자아이에게 편하게 음악실기보는 것처럼 부르라고 말씀하셨는데, 음악실기 보는데도 누가 편하게 부르나요... 라고 대꾸하며 연습을 시작했다. 몇번 불러보니 어느정도 화음과 박자, 호흡이 맞기 시작했고, 그럭저럭 들을만한 축가가 되었다. 마침내 '政治'선생님의 결혼식 날. 우리 학년 뿐만 아니라 3학년 선배들도 결혼식에 많이 왔다. 그 외의 하객들도 많았고, 선생님들도 많았다. 약간 긴장이 되었다. 마침내 축가를 부르는 순서가 되었고, 교복을 입고 단상에 올라가 노래를 시작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政治'선생님과 신랑분이 앞에 서서 보고 계셨는데 어찌다 어색하고 민망하고 떨리던지. 어떻게 불렀는지도 모를 노래가 끝이 났고, 박수를 받으며 어색한 웃음을 짓고 내려왔다. 이게 내 생애 첫 축가였다. 

그 뒤로 어느새 시간이 흘렀고, 체감상으로는 아직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있는 만큼 주변에서 결혼식이 잦았다. 그러다 축가를 부르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고, 곧 9월에도 축가를 부른다. 매번 축가를 부를때 곡이 달랐는데, 이번 축가 노래는 마음에 쏙 든다. 곡명은 이예준, 신용재의 '약속'. 부르면 부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좋다. 내가 축가를 부를 수 있도록 영광을 준, 부부들은 정말 큰 탈 없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환절기라 밤엔 쌀쌀하기 때문에 목관리를 더욱더 잘 해야겠다. 



2. 여자들은 드레스에 대한 환상이 있다는데. 난 왜 그런 환상이 없을까. 솔직히 결혼식때 드레스도 입기 싫다. 물론 결혼식장에서 하기도 싫지만. 보통 드라마에서 보면 드레스룸에서 커튼이 열리고 여자가 드레스를 입으면 뒤에서 후광처리하면서 예비신부가 굉장히 신비롭게 비춰지는데,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같다. 



3. 결혼, 결혼식을 엄청 특별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사람과 사람이 만나다보면 계속 같이있고 싶어지고, 그러다가 정도 들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앞으로도 쭉 같이 살고 싶지 않을까. 간혹 어떤 이들을 보면 연애의 끝이, 최고 정점이 결혼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느낀다. 사실 결혼은 어찌 보면 연애를 다시 시작하는 포인트이지, 연애의 목표가 아닌데 말이다. 



4. 갤러리. 전시장. 심플한 하얀 벽이 있는 공간. 이게 아직까지 내가 원하는 결혼식장인데.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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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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