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가장 즐겁고 재미있었던 식사 혹은 술자리에 대한 기억


'여보세요'

'나 지금 학교 앞에서 내렸는데, 저녁 먹었어? 주먹밥 사갈까?'

'아 아직 안먹었어. 그래 그거랑 컵라면이랑 먹자'

'알겠어!'

그땐 이런 대화가 굉장히 일상적인 대화인줄만 알았다. 언제나 항상 할 수 있는 대화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때의 그 대화는 굉장히 소중했고, 아주 어쩌면 다신 그런 대화를 못 나눌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나는 학교 기숙사에 살았고, 시기는 겨울방학때였다. 

막상 겨울방학이 되고나니 아는 친구들은 전부 집에 내려가고, 나만 기숙사로 올라간 꼴이 되었는데,

거기서 평소에 수업을 같이 듣던 친구를 만났다. 처음에는 아 저 친구도 기숙사에 계속 남아있구나, 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친구가 되었다.

어쩌다보니 밖에서 여러가지 것들을 하고, 저녁에 기숙사에 들어오면 그 친구와 휴게실에서 수다떠는 일이 많았다.

처음에는 그냥 얼굴 한번 보고 이야기해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이, 하루, 이틀, 일주일동안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도대체 언제 들어와? 빨리 와~ 할말 엄청 많다구!'

항상 이런 말로 우리는 연락을 했고, 밤에 기숙사 휴게실에서 모이면 그 날 하루에 있었던 이야기들, 왜 이 사람은 저런 행동을 헀을까, 라는 생각들, 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그 사람한테 했을까, 라는 회고들 등등.

그 때마다 거의 빠질 수 없던 것들이 군것질, 배달음식, 분식들이였다.

둘다 기숙사 식당을 좋아하지 않아서 기숙사에 사는 동안 식당에는 가본 적도 없었고, 항상 저녁에 치킨, 과자, 빵, 과일 등등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보기에는 정말 별거 없어 보이고, 지금은 많이 찾지도 않는 자극적인 음식에다 인스턴트 뿐이였는데,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 그 음식들이 그렇게 맛있었다.

아마 그 친구와 함께여서 맛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와 나는 마치 16살 사춘기인 아이가 종종 듣는 새똥이 굴러가도 웃는다는 그 말이 딱 어울렸다.

물론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십 몇 년이 넘도록 서로 다른 방식, 다른 환경에서 자랐으니 나랑 친해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겨울 내내 그 기숙사 휴게실의 넓다란 테이블과 쇼파를 하나씩 차지하고 깔깔대며 이야기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서로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가족, 친구, 연애사, 가치관, 그 날의 하루, 성격, 꿈, 미래, 수업, 공부, 어떤 것들에 대한 의미, 사람의 심리, 하고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음식, 가고 싶은 곳, 서로에 대한 생각, 행복의 의미,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들, 운동, 다이어트, 영어, 글, 영화, 드라마, 기숙사 룸메이트에 대한 단상 등등. 

정말 수백 가지, 수천 가지의 주제들이 때로는 매운, 때로는 달콤한, 때로는 담백한, 때로는 고소한 음식들 위를 떠돌아 다녔고, 결국엔 지금까지 서로 제일 잘 아는 친구가 되었다.

하루는 내가 밖에 있다가 요플레가 있길래, 같이 먹으려고 가방에 넣고, 새벽 즈음에 기숙사에 들어왔다.

그 친구에게 '나한테 요플레 있다!' 하면서 자랑스럽게 가방을 딱 열었는데, 그 순간..요플레는 가방 안에서 무참히 터져있었다.

'으악!' 비명과 함께 바로 그 친구와 나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가방 안에 있던 소지품들을 모두 살리고 싶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나씩 건져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어폰 하나만 살리지 못했다.

그리고 모든 소지품을 정리하고, 가방 속에 있는 요플레를 걷어내려고 화장실을 갔는데, 그 새벽에 화장실에서 엄청난 둘이 웃음이 터졌다.

진짜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였다.

'꺄하하하하크하꺄아아아흐흐흑아흑끄하하흡으하하하와하하하꺄아아!'

정말 그렇게 한번에 빵 터진 웃음을 지속한 것은 처음이였다. 진짜 다른 말을 할 수도 없을 만큼 요플레 묻은 가방을 손가락질 하며 둘이서 눈만 마주치며 웃었다. 정말 웃겨서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 시간은 자정을 넘긴 새벽이였고, 화장실이 크고 넓어서 웃음소리가 많이 울렸나보다.

'저기요! 너무 시끄럽거든요?' 라는 소리가 복도에서 들렸고,

그 친구와 나는 동시에 웃음을 멈췄고,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나서 다시 눈을 마주치고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큭큭푸흡큭큭큭훕풉풉풉크하하하큽큭큭풉합푸하크하하하크하큭큭훕'

소리를 크게 낼 수는 없지만 정말 완전 웃겨서 터진 많고 많은 웃음들. 화장실에서 배꼽이 빠지도록 웃으며 가방을 살리고, 휴게실로 와서 또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그 친구와 함께 무엇을 먹어도 정말 맛있었고, 무슨 이야기를 해도 즐거웠다.

공허함을 많이 느끼는 요즘, 그때가 그립다.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도란도란 프로젝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57.발  (0) 2015.02.07
56.발자국  (0) 2015.01.29
54.버스  (0) 2015.01.11
53.같으면서도 다른  (0) 2015.01.05
52.소세지  (0) 2015.01.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