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도란도란 프로젝트

82.장마

puresmile 2015. 7. 27. 17:41

*장마


1.

여름, 그때 당시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분과 약속했던 날이기도 했다.

밖엔 주룩주룩 비가왔다. 아마 장마라서 비가 왔던 것도 같다. 굉장한 장대비였고, 오래오래 내리던 비였다.

내가 밖에 나갈 때 장대비가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항상 하이힐에 치마를 고집했던 나에게 비란 성가신 존재였다.

장대비가 바닥에서 튀어 내 발을 온통 점령하고, 내 하이힐을 몽땅 적시고,

심지어 종아리까지 모두 빗물이 튀면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내겐 그 흔한 레인부츠 하나 없었다.

그 날도 평소와 같은 복장을 하고 밖에 나갔었다. 

약속장소는 꽤나 먼 거리였다. 아마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내려 역에서도 조금 더 걸어야 하는 곳이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역 밖으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약속시간에 늦기 싫었다. 

하이힐과 발가락과 발목에 튀는 수많은 빗방울들 보다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되는게 백 배는 싫었다.

장마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장대비가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얕은 물 웅덩이는 그냥 첨벙첨벙 밟고 지나갔다. 

일단은 내가 그 곳에 제 시간에 도착을 해야 한다는 그 마음 뿐이였다.

그 마음 덕에 물이 잔뜩 들어와 하이힐 바닥이 미끈거려 나의 발가락들이 자꾸 앞으로 쏠려 힘들었지만,

그 힘듬이 제시간에 도착하게끔 만들어주었다.

돌이켜보면 '어떤 것에 대한 망설임'에 대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몸과 마음을 사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 몸과 마음을 사리지 않아도 될 정도의 일들에 대해 사려버리니 망설임이 따라오게 되고,

결국 나는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였다.

조금만 더 거침없어도 괜찮았을텐데.

조금만 더 과감해져도 괜찮았을텐데.

조금만 더 용기내어도 괜찮았을텐데.

앞으로는 어떤 일이든 조금 더 거침없고, 조금 더 과감하고, 조금 더 용기를 내어봐야지.


2.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각인시키고, 각인되어버리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계절, 물건, 장소, 혹은 날씨에게도.

장마도 아마.


3.

어느 장마철이다.

조금이라도 더 사랑받고싶어하는 내 자신만 남았다.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도란도란 프로젝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84.너의 의미  (0) 2015.08.15
83.복숭아  (0) 2015.08.04
81.방황  (0) 2015.07.24
80.이불  (0) 2015.07.15
79.개떡  (0) 2015.07.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