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티슈 어른들 같았으면 행주를 썼을 경우의 90%정도를 물티슈로 메꾼다. 누군가는 그런 시대가 왔다고 하며 웃어넘기지만 누군가는 환경문제를 꺼내며 물티슈 사용은 지양하라고 한다. 물론 부엌에 행주가 있긴 하지만 행주를 빨아서 쓰는 행위보다 행주를 힘들게 짜는 행위가 싫어서 물티슈에 먼저 손이 간다. 행주를 힘들게 짜는 행위가 싫은 이유는 행주가 두껍기 때문이기에 행주를 반으로 잘라서 쓰고 있지만 그래도 손이 잘 안 가는 건 마찬가지. 그래서 며칠 전엔 저렴한 가격에 물티슈를 두 박스 씩이나 쟁여뒀다.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걸까. 미시적으론 당장 편해서 좋지만 거시적으론 말해 뭐해. 굉장히 별로지. -Hee ·······················································..
*다이어리 요즘 다이어리를 쓰는 행위에 조금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예전엔 다이어리에 이것저것 단상들을 써 내려갔다면 요즘은 그냥 블로그나 아이폰 메모장에 쓰고 있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그래도 난 쓰는 행위가 좋긴 해서 다이어리를 펼치고 펜을 들곤 하지만 그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 건 사실이다. 가끔은 스티커를 붙이고 싶어서 다이어리를 쓰기도 하고, 다이어리에 텅 비어있는 빈 공간들을 채우고 싶어서 쓰기도 하는데. 음. 생각해 보면 차곡차곡 매년 모아둔 다이어리들을 다시 열어보지 않아서, 뒤돌아보지 않아서, 이게 쓰는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나조차도 다시 보지 않을 기록들을 계속 생산하는 게 맞나. 10년 뒤, 20년 뒤엔 내가 읽어보려나. 확신이 없다. 영어 공부를 하다가 다시 보고 싶고, 기억하고..
*대견함 이마가 톡 튀어나와서 어릴 적부터 알콩이라고 불린, 둘째의 숙명처럼 종종 첫째의 그림자에 가려져서 마음속으로 끙끙 앓았을 적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자기만의 살 길을 찾아 더 이상 스스로 상처받지 않게 자신만의 보호막을 단단히 세우며 그렇게 잘 컸던 그녀는 어느새 어렵고 큼지막한 일들을 척척해낸 어엿하고 듬직한 어른이 되었다. 가끔씩 그녀에게 풍기는 성숙함과 든든함은 점점 보통 내공이 아니게 느껴져서 대견함을 넘어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하루 종일 통마늘 몇 망을 까고, 손이 부르트도록 간 다음, 잘 얼린 후 오는 동안 녹지 않게 그 무거운 아이스팩을 두 개나 같이 넣고 그걸 집들이 선물로 자상함은 어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지. 거기에 부대찌개 맛집이라면서 육수까지 이고지고 온 그 마음은 절..
*피자 이사 온 동네 주변 식당들을 하나씩 가보는 중 아주 괜찮은 횟집을 발견했다. 심지어 집과의 거리도 300m 정도도 안될 만큼 가까워서 술 한 잔하기에도 전혀 부담 없고 겨울에도 룰루랄라 걸어가기 좋은 곳이다. 게다가 방어도 특대 방어만 팔아서 얼마나 고소한지! 이렇게 방어가 맛있는 생선이었나 싶을 정도로 입안에 고소함과 행복함이 꽉 차는 맛이다. 벌써 올겨울 두 번 방어회를 먹었는데, 웃긴건 2차로 무조건 피자를 먹으러 간다는 것이다. 동네가 국립대학교 주변+신도시처럼 새로 생긴 상권이라 삐까뻔쩍한 식당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중 찾아보지도 않고 간판만 보고 갔던 그곳은 바로 브롱스. 매일 치즈 크러스트 추가하지 않으면 딱히 '피자? 음'했던 내가 예전에 더부스 피맥의 맛을 안 후로 피맥을 굉장히 ..
*안녕, 나의 2023년 비행기를 타고 약 15,050km가 넘는 이동을 했고, 네 곳의 나라를 다녔고, 다섯 번의 이사를 했으며, 앞으로는 매우 희박할 것만 같았는데 운이 좋게도 평생 가져가고 싶은 값진 인연들을 만났고, 아무 걱정 없는 아이처럼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먹고 싶은 것들을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가고 싶은 곳들을 웃으면서 돌아다녔고, 원 없이 걸었고, 원 없이 수영했고, 원 없이 테니스를 쳤고, 원 없이 뛰었고, 원 없이 음악을 들었고, 원 없이 공부했고, 원 없이 커피를 마셨고, 원 없이 욕을 했고, 다신 절대 살기는커녕 가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동네에서 어쩌다 다시 살아봤고, 예전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봤고, 이상하게 평소 설렜던 것들에 대해 설레지 않..
*완벽주의 완벽주의에 빠지다 보면 중요하지 않고,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바람에 서로(혹은 내) 감정이 상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번 심호흡하고 돌아보면 별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 날을 세웠는지. 살면서 조금은 무뎌지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넘기면 그만인 것을. 모두가 이렇게도 평화로운 것을.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의 다른 글들도 만나보세요. 🔸도란도란 프로젝트 Tumblr 바로가기 🔸도란도란 프로젝트 브런치 바로가기 🔹도란도란 프로젝트 페이스북페이지 바로가기 🔹도란도란 프로젝트 트위터 바로가기
*분위기 뻔한 분위기가 싫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도 뻔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나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건가. 어쩔 수 없는 건가. 그래도 변함없는 사실은 쇄신은 언제나 중요하고, 부러지지 않는 유연함이 절실하다는 것. 더 많은 공부와 사고가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의 다른 글들도 만나보세요. 🔸도란도란 프로젝트 Tumblr 바로가기 🔸도란도란 프로젝트 브런치 바로가기 🔹도란도란 프로젝트 페이스북페이지 바로가기 🔹도란도란 프로젝트 트위터 바로가기
*엄마 지금보다 어리고 엄마가 힘들었을 때에는 그냥 그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고, 가까이 있을 땐 그 소중함을 당연함에 사로잡혀 전혀 몰랐는데,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할 때 '이럴 땐 엄마가 어떻게 했더라' 자연스럽게 떠올려지고, 엄마가 큰 수술을 했을 때 문득 엄마가 언젠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변의 진리가 확 와닿았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그립고, 언젠가 그리워질 음식은 엄마의 밥과 국, 찌개, 반찬이었고, 한창 사춘기 땐 엄마의 웃음소리가 그렇게 시끄러웠는데 이제는 늘 시끄럽게 웃어줬으면 좋겠고, 나이가 90이 넘어도 여기저기 자주 돌아다니려고 하는 외할머니를 꼭 닮아서 우리 엄마도 나랑 같이 여기저기 놀러 다녔으면 좋겠어. 멀리 살 땐 그저 그 존재만으로도 감사했는데, 막상 서로 부르면 부를..
*번아웃 내 최약점 중 하나는 예민함이다. 평소에는 전혀 예민하지 않다가 단기간에 굉장한 정신력과 집중력을 끌어 쓰다 보면 신경이 곤두서버려 쉽게 예민해진다. 내가 하는 것들에 대해 내가 평가를 내리고,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에 대해 또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슴도치가 되어있다. 나조차 내 날에 베어버릴 것 같아 몸서리친다. 날카로움에 혀를 내두른다. 나의 그런 부분을 싫어하는 내 자아가 꿈틀대며 극도의 피로감을 가져와준다. 마치 그만하라는 듯이. 그렇게 피로감을 느끼며 심신이 지쳐버리자 이젠 내가 내보였던 예민함을 정면으로 자각하게 된다. 때론 일말의 후회도 뒤따른다. 언제쯤 이런 프로세스가 무던해질까. 흥미로운 건 내가 예민함에 가득 차 있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의 반응. 어떤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