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1. 숙제
종종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마치 '패잔병 같은 감정'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기분을 처음 느껴 본 시점이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수 천 가지 감정들을 겪어 본 것 같지만, 아직 내게는 겪어보지 않은 많은 감정들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근래에 느낀 감정들은 대부분은 부정적인 감정들이였으며, 뭔가 해야 할 일을 안한 것 같은 그런 찝찝함과, 습기가 빠지지 않고, 서늘하고, 눅눅한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의 감정들이였다. 그 중 '패잔병 같은 감정'은 아무리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뛰어도 거대한 무언가가, 또는 너무 많은 무언가가 내 앞에 우뚝 서 있어 숨이 막히는 듯 하면서도, 이제 그만해도 괜찮다고 하지만, 아직도 내가 해야 할 당위적인 성격을 가진 어떤 것이 아직도 해수욕장의 백사장처럼 흩어져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감정이다.
이 '패잔병 같은 감정'을 처음 느꼈을 때는 굉장히 불안했다. 조금만 가만히 있어도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았으며, 어떤 무언가를 하면서도 지금 내가 이 것을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반문했으며, 혹시나 놓치고 있는 것이 잔뜩 있지는 않을까, 계속해서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의심은 다시 불안을 낳고, 불안은 다시 의심을 낳고. 끊임없는 악순환이 그 때의 나를 괴롭혔다. 불안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꼭 쥐고 있으면서도 왜 내가 불안해야 하는가를 계속해서 질문했었다. 그 불안함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고, 결국 아무것도 손에 잡힐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버렸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느낀 '패잔병 같은 감정'이였다.  
이 '패잔병 같은 감정'을 두 번째로 느꼈을 때는 굉장히 외로웠다. 홀로 낯선 나라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을 찾아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조차 없이 차가운 길바닥에 앉지도 못하고, 오로지 외투도 없이 홑겹으로 가만히 서 있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진 것만 같았다. 마음이 허하고, 방향을 잃었으며, 도무지 그 어떤 누구도 생각이 나지 않은 채 그렇게 외로움에 떨었다. 이 것이 내가 두 번째로 느낀 '패잔병 같은 감정'이였다.
이 '패잔병 같은 감정'을 세 번째로 느꼈을 때는 아무런 에너지가 없었다. 불안함과 외로움도 에너지가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였다. 모든 감정들을 뒤로 한 채 그냥 의무적으로 길을 걸었고, 집에 왔으며, 쓰러져 잠을 잤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였다. 
살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패잔병 같은 감정'처럼 내게 그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감정들이 내게 나를 흔들때마다 사실 아직 어떻게 그 감정을 컨트롤해야 하는지, 어떻게 그 감정을 대응해야 내게 덜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한때는 든든한 누군가가 옆에 있어 내가 기댈 수 있길 바랐는데, 알고보면 그것은 나 아닌 그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기대여 놓는 것이라, 그 누군가가 흔들리거나, 사라진다면 더 큰 상실감이 들 것 같아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다. 

2. 우연한 친구
우연히 내가 21살때 신촌에 있는 INPASTA라는 파스타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시기는 달랐지만 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를 만났다. 처음에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었는데, 이런저런 옛날 이야기를 서로 하다보니 서로 같은 파스타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신기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겹치는 공통점이 두어가지 정도 있었다. 사실 아예 다른 사람이길 바랐는데. 그래도 그 공통점들은 그 친구와 나의 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진 못했다. 그 친구를 망각하는 시간을 조금은 더 연장해주는 정도. 생각보다 망각의 속도는 빠르다.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또다른 무언가가 망각하지 못하게 할 지도 모른다. 뭐, 어쨌든. 뭐든 운명이다. 

3. 어떤 장미
길을 걷다 새빨간 장미를 발견했던 여름이 있었다. 새파랗고 쨍한 하늘을 배경으로 한 그때 그 장미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그 장미를 보고 있으면,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수 없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고, 두 팔로 어떻게든 있는 힘껏 꼭 껴안고 입술에, 볼에, 쪽쪽거리며 입맞추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 장미에겐 생애 첫 데이트날 전 날에 잠을 못 이뤘던 설렘과, 듣고 싶었던 사람에게 사랑고백을 듣고 표정관리가 안되어 씰룩거리는 입꼬리가 있었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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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1. 순간의 고충 
5월, 집에 꺼두었던 보일러를 한 달 만에 다시 켰다.
우리집은 알고보니 (2월에 이사를 왔는데, 그 당시엔 추워서 햇볕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2층에다가 일단 창문은 벽 한 면의 3/5는 차지할 정도로 크게 있기에 환기는 할 수 있겠거니 하며 그냥 계약했다) 볕이 직접적으로 들지 않는 집이였다.
3월, 4월을 지나 5월이 되었는데, 빨래가 뽀송뽀송하게 마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겨울에는 보일러를 항상 켜 두어서 빨래가 어떻게 마르든 빳빳하게 마르긴 했었고, 4월이 되자 보일러를 껐지만 따땃한 날씨에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 그럭저럭 빨래가 말랐다. 하지만 5월이 되고 미세먼지가 거세져서 창문을 꼭꼭 닫고 있으니, 방 안에 습기가 높아지고, 빨래는 뽀송뽀송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2일 정도 지나면 원래 빨래를 개고도 남았는데, 개려고 옷들을 만져보니 차갑고 바짝 마른 것 같지 않았다. 잠시 서서 채 마르지 않은 것 같은 옷들을 만지며 고민을 했다. 하루이틀 정도는 조금 더 두면 마르지 않을까? 아니면 오늘 저녁엔 바짝 말라있진 않을까? 수건들은 다 마른 것 같은데, 왜 면으로 된 옷들은 눅눅한 느낌이 드는 걸까? 왜이리 옷들은 차가운 걸까. 이것이 정말 다 마른 것이긴 한걸까? 차가워서 내가 눅눅하게 느끼는 건 아닐까? 창문을 닫아놔서 환기가 안되서 마르지 않은 걸까? 아니야, 예전 집은 창문 닫아두어도 잘만 말랐는데. 근데 나는 왜 지금 이 빨래들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는걸까? 얘네들은 날 고민시키지 않아도 되는 애들아닌가? 안그래도 생각할 거리들이 산더미같은데, 이 면으로 된 옷 몇 개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고민해야 하나?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선 모든 것들을 내 기호대로, 내 취향대로 할 수 있었는데, 이 빨래만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괜히 심술이 났다. 괜히 한번 심술이 나면 다른 것도 손에 잡을 수 없는 성격이라 고민 끝에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보일러를 엄청 세게 틀었고, 제습기를 검색해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조만간 조그만 제습기 하나가 우리집에서 제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겠지. 오랜만에 보일러를 틀어놓으니 방바닥이 따뜻해서 차가웠던 내 발이 스르륵 녹은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여름엔 그래도 볕이 직접적으로 들어오지 않아 덥진 않겠다며 긍정적으로 위로를 했다. 안그래도 에어컨바람을 싫어하는데 많이 틀 일은 없겠거니 싶었다. 바람에 밀려 미세먼지가 하루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부디.

2.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살아온 방식은 존중하겠지만, 자신의 어두운 면 등을 상대방 앞에 무기처럼 들이밀면서 의사를 관철시키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막무가내라는 말이 딱 알맞은 것이 아닐까. 그냥 웃으면서 넘기기엔 씁쓸함이 앙금처럼 남아있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3. 어떤 이별
나는 너의 그늘을 알아버렸지만, 애써 모른척했었다. 그것이 너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고, 우리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너의 그늘은 너무 어두워서 나의 조그만 손전등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렇다고 나는 고작 손전등 하나에 의지하여 너의 그늘로 들어갈 용기도 없었다. 너의 그늘이 나를 잠식할 것만 같았다. 너의 그늘을 외면할 때마다 나는 더 외로워졌다. 우리가 서로 소통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너에게 완전한 나의 언어로 다가와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나의 이기심을 뾰족하게 드러내는 것만 같아서 나는 너를 빙빙 돌아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한 채로 등을 돌렸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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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러닝

그시간 2017.05.02 01:49


나이키앱을 켜보니,
2015년에 뛴 게 마지막 러닝이였더라.
반성하고, 오랜만에 다시 뛰었다.
안양천은 뛰기에 최적인 장소였다.
예전 춘천 석사동 삼익아파트 뒤 천에서 뛰었던 게 생각났다.
그 곳보다 안양천이 아주 조금 더 괜찮은 것 같다.
아, 그리고 오늘은 나이키에 가서 레깅스랑 바람막이도 샀다.
종종 잘 뛰어야겠다!
체력을 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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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앙. 
난생 처음으로 카레를 해봤다!
내 기호에 맞게 브로콜리랑 토마토를 추가했고, 당근과 감자를 크게크게 썰어 넣었다.
고기는 그냥 마트에서 카레용으로 파는 돼지고기를 샀다.
다음날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와서 카레를 대접했다.
다음 번에는 토마토를 많이 나중에 넣어야겠다.
오래오래 끓이니 토마토가 흔적없이 사라졌다 (ㅠㅠ)
카레사진 보니깐 또 카레 먹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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