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1. 내 시력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라식이나 라섹 등 교정을 위한 수술을 할 만큼의 용기는 없다. 벌써 렌즈를 착용한 지 17년 정도 된 것 같다. 중학교때부터 콘텍트렌즈-하드렌즈를 지나 이번엔 한달용 콘텍트렌즈를 사용중이다. 물론 출근하거나 외출할 때, 운동할 때만 착용하고(러닝할 땐 제외) 집에 오면 무조건 제일 먼저 렌즈부터 뺀다. 눈이 나쁜 사람들은 다들 알다시피 렌즈나 안경을 착용한 직후엔 시력이 평소보다 순간 더 나빠진다. 안그래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눈이, 렌즈를 빼고 나면 더욱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보이지 않는 답답함을 갖고 살게 된다. 이런 와중에 조명마저 어두워버리면 너무 답답해진다. 그래서 집에선 웬만하면 항상 밝게 불을 켠다. 누군가는 불을 끄고 미미..
*사라진 것들 꼭 필요한 것들도 사지 못하게 했던 한 줌의 걱정 이제는 이름도 까마득한 내 첫 에프바이 페라가모 향수 수다도 떨고, 계획도 세우고, 팔찌도 만들던 우리 동네 카페 늘 현명한 선택만 할 것만 같았던 어떤 삶 단지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제는 함께 할 수 없는 밤 속도를 더 줄일까 말까 고민했던 페달 밟던 순간들 찬 바람이 불 때쯤 동네에 사는 친구와 만나 함께 붕어빵을 먹던 순간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더욱 관심이 없었던 희대의 라볶이 레시피 제일 깡말랐었을 시절에 신나게 주문했던 밀크팥빙수 홍대에서 이젠 먹을 수 없게 된 히비의 앙카케 가을에 연차를 내서라도 꼭 가야했던 프로젝트 온더로드 고작 한 번이지만 진한 추억으로 남은 나의 작은 카페 특히 돈 앞에서 크게 들렸던 머리 굴리는 소리 ..
*닭죽 집에서 엄마가 삼계탕까진 아니고 닭을 통째로 삶은 후 김이 조금 빠지면 꺼내서 살을 발라주셨다. 그러면 나랑 동생은 소금과 후추, 그리고 깨를 섞은 종지에 닭고기를 콕 찍어서 야금야금 먹기 바빴지. 그리고 양이 적은 나는 닭고기가 맛있어도 절대 배부를때까지 먹지 않았다. 왜냐면 마지막에 남은 닭고기를 잘게 찢어서 끓인 닭죽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지. 집에선 닭죽 먹고 싶다고 엄마한테 한 마디만 지나가듯이 해도 엄마는 그 말을 기억하곤 그 날 저녁이나 다음날에 생닭을 사오신 후 뚝딱 해주셨다. 근데 자취한 이후로 닭죽이 생각나서 밖에서 사먹으려고 하면 왜 이렇게 발이 안떨어지는지. 본죽에 가도 삼계죽은 비싼 죽에 속했다. 그러다보니 지갑이 열리지 않았다. 엄마밥은 언제나 최고다. 아빠와 동생은 종종 ..
*미니멀리즘 1. 이제는 잠깐 머물다가는 자리가 아닌 정말 내 공간, 내 자리들을 만들어보기 2. 인스타그램에서 한창 미니멀리즘이 유행했을 때 몇 개의 계정을 팔로우 한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집은 정말 새-하얀 인테리어에 아일랜드 바 위, 식탁 위, 책상 위 정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더라. 난 속으로 '음. 이런 걸보고 미니멀리즘 삶이라고 하는 건가'라고 생각했고, '위에 아무것도 없으니 먼지 닦긴 되게 쉽겠다'라고 생각했다. 당시 내 옆에 누구는 '와 다 하얗네. 되게 정신병원 같다'라고 말했다. 3. 난 솔직히 조금씩 미니멀리즘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일단 화장대를 보면 되게 비슷한 색의 립스틱과 섀도우들이 즐비하고, 밤에 바르는 나이트크림과 선크림만해도 최소 2개 이상이다. 이젠 화장..
*강요 어느 누구도 슬픔을 강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조바심이라면 조바심이고, 노파심이라면 노파심으로 강요되어졌을 뿐. 셀프강요로 인해 나는 고비를 넘긴 것 같다. 밤마다 그리워서 우는 일도 없으며,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간절해지지도 않았다. 여긴 다행스럽게도 계절의 장난도 없어 감정에 쉽게 지배당하지도 않는다. 물론 다달이 부-욱 찢어버리는 달력과 매주 넘어가는 다이어리 덕분에 가을을 실감하고, 추워졌다는 친구들과 가족들의 말, 그리고 SNS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들이 계절을 느끼게 해줄 뿐. 계절의 관성때문인지, 무의식 중에 계절을 학습한 덕분인지 몰라도 네일아트샵에서 색을 고를 때 쨍한 여름 색들은 외면하고 약간 어둡고 가을무드가 느껴지는 색을 고르는 내가 재미있다. 아 또 한 가지, 쇼핑몰에 가득..
*그날의 분위기 1. 입김이 호호 나오는 날에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짧은 치마에 기모도 아닌 얇디얇은 스타킹 하나 겨우 신고 그래도 배는 시렵다고 끈나시 덧대입고 그 위엔 (치마 속에 넣어 입기 위해 절대 두껍지 않은) 목티를 입고 울 몇 프로가 섞였는지도 잘 모르겠는 자켓 입고 이제는 하도 신어서 아픈 줄도 모르는 높은 힐을 신고 깔깔거리면서 누굴 만나는 지도 모르는 채 밤거리를 돌아다니던 겨울이 있었다. 2. 밤 9시 정도였으려나. 홍대역에서 내려서 밖으로 나왔는데 눈과 비가 섞여서 내리고 있었다. 미리 준비한 우산을 폈고 약속장소를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내 우산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 놀라서 옆을 보니 어떤 남자애였다. 죄송하다며 능청스럽게 우산이 없다고 떠들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1. 몇 번이고 헤어짐을 고한 사람이 있었다. 근데 그 사람은 나랑 헤어지고 나서 한 번도 잡은 적이 없었어. 내가 헤어지자고 한 마당에 나랑 헤어지기 싫다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사람이어서 그건 그거대로 짜증이 났어. 이별을 고하는 화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건 그거대로 서운했어. 근데 되돌아보면 내가 너무 완고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다시 붙잡았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테니까. 2. 나름 더 나은 선택인 줄 알고 어렵사리 꺼낸 이별이었고, 꼴에 상대방의 안녕을 빈 적이 있었어. 나 같은 사람 만나지 말라고. 근데 그건 너무 내가 거만했더라. 내가 너무 가식을 떨어버렸지 뭐야. 결국 나 같은 사람 잊지 말라는 말이었던 것 같아. 3. 헤어지자고 하니, 내 앞에서 ..
*현타 1. 일주일 내내 다이어리를 펴보지 않은 적이 있었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하나의 이유는 사색이나 성찰 따위를 하기 싫었기 때문이지. 다이어리를 펴는 순간 무언가 마음이 경건해지고, 시간에 대한 마음가짐과 산다는 것에 대한 비장함, 앞으로 더욱 잘 해보고 싶다는 욕심 등이 한꺼번에 밀려오게 되는데, 그런 것들이 밀려오게 되면 결국 현재의 나, 과거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에 대해 다시금 성찰해보거나, 사색해보는 시간까지 갖기 마련. 그런 프로세스를 거치다보면 내가 잘하지 못했거나, 잘 대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현타가 오고, 부끄러워서 쥐구멍에 숨어버리고 싶은 만큼 자존감이 떨어질 때도 있고, 얼굴이 붉어질 때도 있는데 그런 나와 마주하기 싫었기 때문에 다이어리를 펴보..
*월요병 1. 월요병을 이겨내는 나만의 방법은 아침에 일어나서 스트레칭하고, 시리얼이나 과일을 먹고, 샤워하기 전 아이폰을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한 후 엄청 신나는 노래를 틀어놓는 것. 샤워뿐만 아니라 머리 말릴 때, 화장할 때, 옷입을 때 등 출근하려고 현관을 열기 직전 에어팟을 귀에 꽂기 전까지 신나는 노래를 틀어놓는다. 사실 아침 음악들은 러닝할 때 플레이리스트랑 거의 겹치는 부분. 2. 아침에 출근하기 직전까지 마음가짐을 잘 갖춰놓으면 회사에선 월요병이고 뭐고 문제없다. 특히 월요일은 생각보다 더 시간이 빨리 흐른다. -Hee --------------------------------------------------------------------------------------- 도란도란 프로젝..
*주말 1. 지난여름엔 주말에 자전거 타러 나가기 바빴는데 이제는 테니스 치러 나가기 바쁘다. 이제 테니스 시작한 지 2달 정도 되었는데, 치면 칠수록 어렵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생각보다 단순한 스포츠가 절대 아니었다!!! 내 몸뚱아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어떤 사람들은 테니스 3년은 쳐야 폼이 겨우 나온다고들 하는데.. 그 말을 듣고 위로 삼기에는 내 인내심이 부족하다. 너무 3년이면 멀잖아.. 아무튼 매주 토요일마다 레슨을 받는데, 나아질랑 말랑 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주부턴 화요일 밤에도 레슨을 받게 되었다. 레슨 외엔 그냥 사람들끼리 모여서 주 중에 한 번 연습을 한다. 처음 테니스 시작하고 나선 레슨일인 주말만 기다려졌는데, 이젠 일주일 7일 중 띄엄띄엄 2~3일은 테니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