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 1.소중한 친구들을 만났다. 요즘 우리의 화젯거리는 서로 얼마나 더 고된 삶을 살고 있는가였다. 실제로 우리들은 현재 시간에, 험난함에, 고단함에 맞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였다. 그래. 험난함은 겪어보면 나중에 요령과 나만의 자산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으므로 험난함따위는 괜찮다. 우리에게 닥쳐와도. 하지만 내 소중한 친구들은 그 험난함을 뚫고 지나가는 길이 조금은 덜 고단했으면 좋겠다. 사람에 지치고, 일에 지치고, 시간에 지친 우리들은 시간가는줄 모르게 이야기를 쏟아냈고, 때론 찰진 욕설을 내뱉기도 하고, 세상 떠나가라 깔깔대며 웃기도 했다. 우리 조금만 더 기운내자! 2.언제 적응할까 싶었다. 나와 다른 타인이기에 적응하지 못할까봐 한편으로는 겁이 났다. 나의 방식대로,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온 시..
*정 1.정이 들고 있는 중이다.마주보고 웃는 날이 많아질수록 함께 뛰어다니는 날이 많아질수록 서로를 조금씩 조금씩 이해할수록점점 더 정이 들고 있는 중이다.앞으로도 계속 정이 들고 있는 중이였으면 좋겠다. 2.처음 이 집에 왔을 때 그냥 마냥 너무 작았다. 그래서 이 집도 그냥 패스하고 다른 집을 보러 갔었다. 하지만 결국 이 집으로 돌아왔다. 이 집이 그나마 제일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때가 채 타지 않은 하얀 벽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4면의 벽 중 한 면의 벽이 벚꽃 꽃다발느낌의 꽃무늬 벽지가 조금은 거슬렸지만) 기본 옵션으로 있던 책상은 아예 빼버리고, 책상이 있던 옷장과 냉장고 사이를 책장과 서랍장을 사서 끼워넣었다. 전자렌지가 없는 것을 당장은 깨닫지 못했었는데, 곧..
*반짝임 1. 사라지는 것들영원히 반짝일 것이라고 여기던 것을 예전에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시간이 흐르고 다시 서랍을 열어보니, 반짝임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았다. 가죽만 남았다. 빛을 잃은 거죽만이 남아있었다.아- 그 반짝이던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분명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었는데.혹여나 잃어버릴까봐, 반짝임을 오래보면 더 닳을까봐, 분명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었는데.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낯섦이 또다시 마음에 와닿았고, 몸서리치며 다시금 마음을 잡는다. 2. 꿈나 순간 잊을 뻔했어.내가 예전에 무슨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지.너무 차갑고 따가워서, 너무 따뜻하고 포근해서,내가 너무 불안하고, 내가 많이 흔들렸어서,나 순간 잊을 뻔했어.다시 마음 한 켠에 잘 새겨두어야지. 3. 0행복하..
*찬란한 계절 1. in my 20s20대의 마지막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더운 여름날, 짧게 자른 단발은 어느새 (한번 다시 잘랐음에도 불구하고) 스멀스멀 길어버렸고, 그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청바지를 어느날은 두 개씩이나 사버렸고(그것도 나름 고가의 가격에), 런닝화를 신고 밖에 나가 씩씩하게 웃으며 걷고 뛰었던 주말이 하나 둘씩 늘어갔고, 나의 마음을 항상 살펴보고, 나의 마음을 먼저 보살펴주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 든든하고, 몇백만원짜리 자전거들을 검색해보며 성능을 이것저것 따져보기 시작했고, 다음날 아침 영어수업을 위해 자기 전에 영어 문장들을 읽고 있다. 댜니는 회사의 생리를 조금은 깨달아가고 있어 나름의 요령도 생겼고, 세대주도 되어보았고, 부모님에게 많진 않지만 용돈도 쥐어주고, 가끔이지만 ..
*병(病) 1. 마음의 병그날은 아침부터 잔뜩 예민했다. 사실 그 전날부터 예민했었는지도 모른다.잠에 들 때도 신경이 곤두서있고, 잠을 잘 때도 신경이 곤두서있었을지도 모른다.평소 같았으면 웃으며 넘길 수 있었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뇌리와 마음에 꽂히고,날이 바짝 서 있었던 나는 내게 어떤 이야기를 하는 누구에게던지 까탈스럽게 굴었고,그 말을 들은 상대방이 내게 지적을 하면 내 자신을 되돌아 볼 기미도 없이괜히 서운함을 더 먼저 느껴서 또다시 공격태새를 갖추었다. 악순환의 연속.신경이 바짝 곤두서있는 시간들이 오랫동안 지속되자 지치기 시작했다.그렇게 예민함이 피크에 오르기 전에 내 자신을 내가 말렸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도 들고,마음이 사르르 녹을 정도로 내게 왜 따뜻하게 한 마디 해주는 사람은 없..
*숲 너의 숲에 들어가고 싶었다.너의 숲에 들어갔다.너의 넝쿨들이 나를 타고 뒤엉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너의 넝쿨들은 서서히 나의 팔, 다리, 몸통 등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나는 쉬이 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미소를 지은 채로 너를 쳐다보고만 있었다.너는 내게 괜찮다고 말했다.나는 나를 뒤덮고 있는 넝쿨들의 뿌리가 얼마나 단단할지 상상해보았다.내가 숲을 헤치고 걸을 때, 너의 넝쿨들의 뿌리가 약해 쉽사리 뽑히게 되면 어쩌지라는 상상도 해보았다.너의 뿌리가 단단하고 무성해서 나의 작은 몸부림에도 나를 잘 잡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너의 숲은 내게 아득하고, 안락함을 주어 그 안에서 내 마음껏 뒹굴고 싶다고 생각했다. -Hee -------------------------------------..
*현실 1.현실을 맞닥뜨리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다.시간이 흐르는대로 등 떠밀려 흘러가는 사람과,어떻게든 시간에 의미를 두려고 하는 사람과,살다보니 시간이 흘러가있는 사람과,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더라. 2.비워야 새로운 이야기가 찾아온다는 짧지만 강한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낡고 쾌쾌하고 내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생각과 마음들은 모두 비워낼 수 있길.신선하고 건강한 새로운 생각과 마음을 얼마든지 받아들여 고여있지 않길. 3.여러모로 심란하고, 여유가 없을 것만 같은 너의 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내가 너에게 어떠한 힘도 되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에 초조했다.네가 조금은 의지했으면 좋겠다고 바랐지만, 너는 너대로 꿋꿋하게 잘 이겨내고 있는 것 같았다.내가 할 수 있는건 ..
*붕어빵 1. 늦은 저녁,다른 사람들이 거의 퇴근할 떄 쯤에 회의가 시작되었다.회사 대표님과 고문이사격인 교수님과 내가 대표님방에서 머리를 맞대로 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회의를 하고 있었다.그때 차장님이 대표님방 문을 두드렸다.차장님은 들어와서 대표님한테 어떤 업무의 결과를 간단하게 보고했다.마침 그 차장님과 관련있는 회의내용이 모니터에 나타나있었다.대표님은 조금만 회의를 같이 하고 가면 어떻겠냐고 차장님한테 제안했다.차장님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제 와이프가 오늘 붕어빵이 먹고 싶다고 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예전 같았으면, 조금만 같이 회의하고 가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하고 말았을텐데,갑자기 그 말이 굉장히 낭만적이게 들렸다.실제로 그 차장님 아내는 임신중이였다.그 아내가, 또는 뱃 속에 있는 ..
*삶의 선택 1.예전부터 내 삶과 늘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그 사람으로 인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주는, 나도 인해 그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주는,그냥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2.매일이 선택의 순간이고날이 가면 갈수록 외면하고 싶지만 선택의 무게는 늘어난다. 3.사실 지금에서야 하는 이야기지만,감상에 젖은 말 한 마디 내게 던지지 않는 널 보며,마음 속이 꽉 막힌 기분이였어.너무나 사무적인 너의 모습에,자존감이 사라질까봐 나조차 입을 다물었고,지금 너는 어떤 감정이 드는지, 물어볼 수 조차 없었어.감정공유에 서툴렀던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다고 머릿 속으로 생각은 하지만결국 그만큼의 무시못할 마음의 간격이 벌어졌을지도 몰라.언제부터였을까,나는 늘 감정..
*영원 1. 막연하게 누군가와 영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감히 하진 않는다.그냥 영원하고 싶다는 생각은, 마치 통 안에 조약돌을 무작위로 쏟아 붓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그렇게 되면 너무 빈틈이 많잖아.그저 누군가와 영원하고 싶다면, 그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자기 자신의 중심을 잘 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내가 어떤 부분을 좋아하고, 왜 싫어하는지 따위의 가장 일차원적인 부분부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의 고차원적인 것에 대한 가치관의 성립.나에 대한 중심도 없이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리기만 한다면, 흐르는대로 휘청거린다면 나도, 옆에 있는 사람도 결국 불행한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끊임없는 질문과 대화, 그리고 공감이 그저 묵묵하게 시간들을 지켜줄 뿐이다. 2.모든 것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