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함 1. 살면서 올해 내 입에서 신중하라는 말을 최고로 많이 했다. 누군가에게 한 말이지만 사실 그건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 신중했니. 너 신중했니. 나 신중하고 있나. 너 신중하고 있나. 아마 수십 번을 더 물어봐도 대답은 항상 같겠지. 2. 내가 신중한 이유의 8할은 상처받기 싫은 것이다. 좋은 선택을 했냐, 안 했냐는 이미 선택을 했으니 의미 없는 문제고. 3. 늘 신중했던 사람도 뒤통수를 맞는다. 별로 신중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은 그저 행복하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하늘이 돕는 건지.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의 다..
*도망 1. 진짜 어디라도 가능하다면 도망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 작은 코트에서 절대 도망갈 수 없다. 원하는 방향으로 공이 가지 않고, 정타로 공이 맞지 않고, 심지어 네트를 넘기지도 못하는 순간들이 반복되고, 심지어 같은 편에 있는 사람조차 내 파이팅에 호응해 주지 않으니 그냥 홀로 온전히 그걸 이겨내야만 한다. 어떻게든 점수를 얻든, 점수를 내주든 누군가 6점이 될 때까지 포기할 수 없고, 계속 공을 쳐야 하는데. 마치 코트 위에 아무도 없이 나 홀로 서 있는 기분이다. 사실 내가 더 잘하면 되는데. 내가 더 열심히 뛰고, 제대로 공을 치고 받으면 되는데. 안 그래도 작은데 한껏 더 작아져 버린다. 마인드 컨트롤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한가 봐. 2. 이전엔 제도에 대해 회의감을 느..
*돌아오다 지난 시간들을 모두 끌고 가고 싶었다. 혹시나 더 잊혀진 시간들이 있을까, 놓친 시간들이 있을까 싶어 늘 자근자근 살피며 지독하게도 질질 끌고 다녔다. 그러다 끌려다니던 시간들 속 존재했던 곳에 돌아오자 내 손에 오롯이 쥐어진 건 '지금'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기대해도 될 것 같은 '희망'과 함께. 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더 가볍고, 재미있고, 밝아 보이자 미련하게 끌고 다닌 시간들을 하나둘씩 놓아줘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의 다른 글들도 만나보세요. 🔸도란도란 프로젝트 Tumblr 바로가기 🔸도란도란 프로젝트 브..
*선생님 R에게 현실감을 배우고, 또다른 R에게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난 세상의 다양성을 배우고, B에게 베시시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 특유의 유머 감각을 배우고, I에게 독자적인 시각의 필요성을 배우고, 또다른 B에게 확고한 기준을 갖고, 설명하는 법을 배우고, H에게 자신에 대한 우직함을 배우고, 또다른 I에게 어른스러움을 배우고, S에게 살아가면서 센스있는 처세들을 배우고, J에게 정직함의 중요성을 배우고, 또다른 H에게 가장의 모습을 배우고, D에게 건강하게 먹어야 하는 중요성을 배우고, F에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배우고, W에게 특별한 조건 없이 무한하게 사랑을 주고 받는 법을 배운다. -Hee ························································..
*휴양 한국에 온 지 한 달 조금 넘었나. 하루는 동생이 내 일정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난 캘린더에 빼곡히 적혀있는 일정들 중 한 부분을 내밀었더니, '다래끼 나는 거 아니냐', '엄청 피곤하겠다' 등의 걱정을 내비쳤다. 물론 정말 피곤할때 나는 입병부터 나기 때문에 이번에도 혓바늘을 피할 순 없었지만 혓바늘이 대수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듣고 싶은 말을 듣고, 원하는 것을 먹고, 뛰고 싶은 곳을 뛰고, 틈만 나면 테니스도 깨알같이 치는데. 몸은 굉장히 바쁘고,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피곤함을 느끼고, 눕자마자 바로 잠든 하루하루가 많았는데 그것과는 다르게 마음은 점점 단단해진다. 내 몸의 쉼과 마음의 쉼이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진 않은..
*클리셰 1.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느낌이 달라. 이제껏 내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서로 어떤 감정을 느꼈고, 스스로 감정을 느끼는 방법과 생각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싶어. 2. 내가 '그 단어를 듣는 게 난 별로야.'라고 하면서 이러이러한 것 때문에 싫다고 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말하면, '그게 왜 싫은지 이해가 안 간다', '다들 그렇게 말하는데 왜 싫지' 등등 내게 그 단어가 왜 싫은지 난색을 먼저 표하고, 그래도 내가 싫다고 하면 조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 싫을 수 있지. 그럼 안 할게. 대단한 것도 아니니까'라고 하며 곧바로 내 말과 생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Hee ·············································..
*설움 그동안 쌓아 올린 시간들이 마냥 걱정만 할 정도로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실망스러웠다. 그렇게 신뢰가 없나. 정말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날이었는데 그날 이후로 모든 게 바뀌어버렸다. 사형수가 사형을 기다리는 시간만큼이나 초조하고, 절망스러웠던 시간들이 지나갔다. 아니, 그렇다고 난 사형수처럼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감정들을 거치고 거쳐 결국 서러움까지 밀려오게 되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분일초가 마음 편치 않았던 그 시간들이 고통스러웠다. 그런 시간들이 꼭 필요했던 걸까. 난 잘 모르겠던데. -Hee ··················································································..
*2023년 상반기에 가장 잘한 일 1.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방콕 집 앞 골목길에서 서성였던 일,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천장 위로 뻗어 나가는 카페에서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했던 일, 반신반의했지만 내 마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마음이 가는대로 이야기하고 행동했던 일, 한국에 돌아가기로 결정한 일, 코창을 목적지로 정했던 일, 오래되지 않은 친구지만 웬지 모르게 오래 알던 것처럼 편안함과 듬직함을 느껴 그 친구의 집에 두 손 가득 빵을 들고 찾아간 일, 그리고 무엇보다 생전 별로 사용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초록 하트에게 의미를 부여한 일. 2. 사실 너도 그렇지만 나도 걱정이 많고, 때론 두렵기도 해. 그래도 잘 해낼 거고 잘 할 거야. 지금껏 그래왔듯이. -Hee ················..
*최선 최선을 다했냐고?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묻는다면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상황들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내 다짐을 꺾지 않으려고 수많은 것들을 외면했고, 내 안에서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것들을 애써 눌렀지. 근데 최선을 다해도 변하지 않는 것, 바뀌지 않는 것,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었어. 늘 후회 없는 선택을 한다고 믿었는데, 아무렴 난 사람인지라 벌리고 나서 후회되는 순간이 아예 없었다곤 말하진 못하겠다. 아등바등하는 시간들이 있었어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이 다 놓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어도, 아득바득한 밤을 지새울 때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우의 수와 앞날들을 생각해 선택할 때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저녁 노을에 비친 긴다란 그림자처럼 미련과 후..
*관심 1. 소소한 것들에 관심을 가져보면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지기 마련이다. 2. 날 제대로 관통해 보는 친구가 있다. 내 성향과 에너지의 양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쌓인 나에 대한, 스스로의 경험에 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내게 정확하고 핵심이 가득한 워딩으로 큰 힘을 실어준다. 정말 든든하고 보물 같은 친구다. 3. 관심이 쌓이면 애정이 되고, 애정이 쌓이면 사랑이 되고. 4. 드라마나 영화보다도 더 재미있는 현실이 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만한 관심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할 것 같다.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