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


1. 어떤 잔상
-아빠가 나 초등학교때 내 방 책상에 앉아서 리아의 눈물을 혼자 들으며 감상에 젖어있던 모습
-동생이 고등학교 1학년때 잠깐 밥 먹으러 집에 들어왔는데, 식탁에서 오리털잠바도 벗지 못한 채로 고추참치 캔 하나 따서 밥을 열심히 먹고 있던 모습(심지어 그때 나도 집에 있었는데, 그 모습이 우스워서 사진을 찍으니까 나를 흘려보면서 찍지말라며 짜증냈던 일까지)
-엄마가 음성인식 기능이 있는 TV셋탑박스로 음악을 틀 줄 알게 되면서, 기타클래스를 다니면서 배운 노래를 틀게하고, 부르면서 설거지를 하던 모습

2.
너의 잔상이 이제 희미해져.
처음엔 장소고, 음악이고, 너무 잔상이 남아서 어지러웠는데,
이제는 너의 잔상이 희미해지고 옅어졌어.
너와 비교하는 것도 완벽하게 사라졌고, 널 추억하는 순간들 또한 이제 내 하루 어디에도 없게 되었어.
나에게 이런 시간도 오다니. 다행이야. 모두에게.

3.
사실 아직 다운힐이 겁이 조금은 난다.
예전 낙차하기 직전 이제 넘어질 것을 알던 그 마음이 아직까지 생생해서
상상할 때마다 심장이 마구 뛴다.
작년에 그나마 다운힐에서 큰 사고없이 잘 다녔는데,
올해도 무사하길 바라며. 겁내지 말고 해야하는 대로 차근차근 해보자.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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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1.
모든 마음이 처음과 같게 유지되긴 어렵다.
하지만 처음보다 더 진하고 끈끈하게 유지될 순 있다.

2.
작년부터 우리 아빠의 카톡상태메세지는 '언제나 처음처럼'.

3.
회사에서 도무지 처음과 같이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다. 나는 현재 이 회사에서 해보지 않은 팀의 일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한데, 제일 최악의 팀장을 만난 것 같아서 마음이 언짢다. 처음에는 몰랐다. 어쩜 사람이 순수하게 바른 말만 하는지. 그 말을 의심할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센터장의 직함을 가진 그 사람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이름만 센터장이였지,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팀원들을 지켜주지도 못하고, 자신마저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있으니. 그래,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센터장이 아직 나이가 많지도 않을 뿐더러, 더 윗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당할 재간이 어디있겠나. 하지만, 더 최악인건, 사소한 것까지 팀원의 탓으로 돌려버린 다는 것과, 자신이 제일 쿵짝이 잘 맞는 팀원과 나와 사이가 틀어지자, 팀장 역시 제대로 상황파악도 하지 않고 그 팀원의 말을 믿어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나를 포함하여 다른 팀원까지 지금의 팀을 만드려고 그 팀장이 엄청나게 노력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자신도 퇴사를 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닌다. 실망 그 자체다. 처음에는 그 팀장의 해맑음이 좋았는데, 이제는 너무 터무니없고, 답답하다. 이렇게 책임감도, 리더쉽도 없고, 융통성도 없고, 이성적이지 않은 팀장은 처음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정말 별로인 사람 넘버3 안에 들어간다. 조만간 회사에서 또 연봉협상과 함께 조직이동이 있을 예정인데, 아마 우리팀은 사라질 것 같이 보인다. 사실 처음 이 말을 듣고 안심했다. 더이상 나는 지금의 팀장과 소통하기가 싫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 소통이란 것도 없었지만. 하지만 다시 흐름을 보니, 팀이 살아남을 것 같아 괜히 또 언짢다. 처음처럼 일하려고 계속 마인드컨트롤은 하고 있지만, 팀장을 보면 너무 속에서 불이 난다.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버티자. 언젠가 다 지나갈 일이겠지. 여러 상황들을 보며 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이렇게 했어야 할 것들을 구분하여 흡수해버리자.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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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1.
케익도 없고, 찬란한 조명도 없고, 어떠한 술도 없고, 왁자지껄함도 없었지만, 
어느때보다도 더 마음이 편안하고, 차분하고, 안정된 날이였던 2018년 크리스마스 이브.

2.
막상 크리스마스 당일날이 되면 시간 가는게 괜히 아쉽고 아까워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더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3.
작년 크리스마스땐 붉은색 터틀넥 니트를 입었고, 올해 크리스마스땐 붉은색 꽈배기라운드 니트를 입었다.
작년에는 크리스마스 컨셉으로 나온 접시 4개 세트와 머그컵 4개 세트를 사서 올 겨울에 꺼내놓았다.
올해는 이케아에 가서 산타할아버지가 등불을 들고 있는 귀여운 장식품을 사왔고, 티비 옆에 두었다. 그리고 모던하우스에 가서 산타할아버지 티스푼과 눈사람 티스푼, 그리고 산타할아버지 수저받침을 샀다. 
내년에는 집에 자그마한 트리를 살 예정이다.
커다란 양말을 문에 달고 싶었는데, 원하는 모양을 찾지 못해서 결국 달지 못했다. 아쉬워.

4.
커가면서 크리스마스가 사실 별 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냥 또 하나의 쉬는 날일뿐.
그래도 사라져가는 감정들을 붙잡아가며 빈자리를 대신할 크리스마스 용품들을 사모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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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

1.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내가 좋아하던 남자애가 있었다. 초등학교때는 남녀구분없이 같이 모여 놀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그 남자애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지금보다 훨씬 부끄러움이 많았고, 새침했다. 그래서 고백은 커녕, 그냥 같이 놀던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그러다 마침 뉴스에서 며칠 뒤 몇 십년에 한 번이랬나, 유성우가 비오듯 쏟아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유성우를 그 남자애와 보고싶어서, 그 뒤 학교에 가서 친구들한테, 얘들아 유성우가 떨어진대! 라며 운을 띄웠다. 사실 난 그 남자애하고만 보고싶었는데, 내가 만약 그 남자애한테 같이 보자고 했다가, '그럼 애들이랑 다같이 보자', 또는 '난 졸리니 안볼래' 따위의 대답을 들을까봐 괜히 두려웠다. 그렇게 거절을 당하면 내가 너무 챙피해서 다신 그 남자애를 더이상 좋아할 수 없게 되버릴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 유성우가 떨어진다는 새벽에, 그 남자애를 포함한 친구들이 다같이 운동장에 모여서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래, 차라리 그게 행복했고 내 감정을 지키는 안전한 방법이였다.

2.
톤다운된 립스틱들이 옹기종기 각을 맞추어 각기의 색들을 뽐내는 것을 보면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진다. 새빨간 립스틱, 샛분홍 립스틱도 아니고, 베이지, 진한 베이지, 연한 브라운, 연한 당근색 등 이런 어울리지도 않는 색들에 항상 시선을 빼앗긴다. 하지만 막상 바르고보면 딱히 어울리지 않아 보여 항상 실망한다.

3.
어떤 이는 내게 밥이든, 술이든, 커피든 뭐라도 좋으니 일단 만나자고 했었다. 그 순간 나는, 도대체 이 사람은 나의 어딜 보고 저렇게 말하는 걸까, 의아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했던 적이 단 한 번이였고, 단 둘이 이야기 해 본 시간은 더더욱 짧았기 때문이다. 

4.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생얼에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무거우면서도 달콤한 향수를 칙칙 뿌린 여자는 짧은 치마에 높은 하이힐을 신고, 아주 당당하게 집을 나섰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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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나는 안그럴줄 알았는데, 어느새 내 기준은 엄마가 되어있었다. 
엄마와 함께 살았을 적엔 항상 냉장고에 치즈와 두유, 요플레를 채워놨던 것,
냄비들을 설거지하고 싱크대 맨 바닥에 엎어 놓는 것,
집 안에서 항상 덧신을 신고 다니는 것,
집 안이 꿉꿉하면 보일러를 켜는 것,
쇼파 앞에 얇은 이불을 항상 깔아놓는 것(전기장판까지),
항상 냉장고를 열면 생수대신 둥굴레차나 보리차가 물통에 가득했던 것,
설거지를 하고나서 바로 건조대가 아닌 큰 볼에 담아 물기가 빠지게 하는 것,
과일이 항상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
겨울이 되면 식탁 위에 대추청이 놓여져 있던 것,
빨래가 다 되면 커다란 통돌이세탁기에서 발 뒷꿈치를 들어 빨래를 꺼내는 것,
생일이 되면 미역국에 감자와 소고기가 들어있던 것(엄마 미역국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생각해보면 엄마와 나는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래서 지금도 혼자 집에 있을 땐, 집안일을 할 땐, 엄마가 (했던 것들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
모든 집안일의 기준은 자연스럽게 엄마가 되어버렸다.
엄마, 보고싶다.
빨리 시간이 지나서 다음주에 부모님 집에 가야지! 
곧 크리스마스니까 맛있는거 한 가득 들고 가야지!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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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1.
S야,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추운 겨울이 돌아왔어.
너와 연락을 하지 않은 지 어언 2년이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
언제는, 누군가가 왜 너랑 연락을 하지 않냐고 묻더라.
난 너에 대한 미움 한 톨 없는데 말이야. 
좋은 것만 보이면, 공유하고 알려주고 싶은 깨알같은 것이 생기면 너에게 연락을 하고,
너도 마찬가지로 내게 연락을 했는데. 우린 어느순간 남보다도 멀어져버린 것 같아.
핑계를 대자면, 너와의 가까운 사람과 나의 관계가 흩어져 버린 것도 있었고,
(사실 너무 아쉽더라. 우리가 꿈꾸던 대로 그렇게 되었으면 하길 바라고 있었지만, 그런 관계는 절대 바란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과 사람사이에 쉬운 건 없더라구. 너무 아쉬워서, 그리고 너도 너무 아쉬워 할 것을 알기에, 그 마음이 내게 다시 그대로 투영된다는 것을 알기에 너에게 어떠한 말도 건넬 수 없었어.)
그리고 언젠가 그랬지. 계속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면, 답장을 해야하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고. 
더구나 넌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시기인데 말이야. 
난 사실 시시콜콜 너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괜한 이야기들로 너에게 스트레스를 받게 하긴 싫었어.
(사실 너에게 연락이 먼저 왔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네가 내게 연락을 해줬으면, 하는 어린 마음이였어.)
다 이해한다고, 나의 결정에 대해 존중한다고. 
하지만 우리 사이엔 전혀 연락이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버렸네.
소중한 나의 친구야. 나는 가끔 네가 그리워.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너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 때때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건네볼까, 싶기도 하면서 다시 용기가 사그러들고 그냥 말더라.
너는 내게 큰 용기를 주는 친구였어. 나를 자랑스러워했고, 나를 믿고 있었고, 내가 하는 것들에 대해 너무나도 응원을 해줬기 때문에 너의 응원만으로도 내가 바른길로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
그리고 나이와 관계없이 생각하는 코드가 맞고, 또한 서로 생각이 달라도 존중해주고, 오히려 새로운 생각이고 시각이라며 눈을 반짝였지.
돌이켜보면, 아직도 삭제하지 않고, 나가지도 않은 너와의 카톡방이라던지, 추운 겨울에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만나 서촌까지 걸어갔던 순간이라던지, 이제는 사라진 너의 집 앞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한강에 간다던지, 하는 추억들이 참 많다. 그것들이 내 20대 중 일부를 차지하고 있어줘서 너무 따뜻했어.
S야, 나는 언젠가 너에게 연락을 꼭 할거야. 그때까지 건강하게 있어줘. 

2.
세상에 쉽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연은 없다.
몇 년이 더 지났을까, 그 당시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꼭 친구에게 털어놓아야지, 라고 했던 그 사연은
그냥 다시 창고 한 구석에 묵혀두었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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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난생처음으로 부츠를 샀다.
사실 산 건 한 달도 더 전인 10월 말에 샀다.
자라에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부츠를 갑자기 신어보고 싶어서 신었는데 
부츠,라고 하면 평소에 우려했던 통이 커서 공간이 남는 느낌이 없이 딱 맞았다.
그리고 스웨이드라서 흘러내리거나 하면 어쩌지, 했지만 그럴 염려는 없어 보였다.
왜냐면 너무 딱 맞았기 때문이다.
이 부츠는 꼭 사야만 할 것 같았다.
(아, 이 말투는 뭔가 아까 읽은 쇼퍼홀릭 원서에도 나온 말인데.... Involuntarily, I clutch at it. I'll have it, I gasp. )
결국 이 날 내 손에는 하루종일 커다란 자라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그런데, 부츠를 산다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였다. 이제부터 시작이였다.
부츠 계산할때 안에 부츠키퍼는 주지 못한다고 했다. 방침이라나 뭐라나. 그땐 그냥 흘려넘겼는데,
막상 집에와서 부츠를 꺼내보니 이 부츠를 방 한가운데에 주욱 길게 뉘일 수도 없고, (그냥 롱부츠도 아닌 니하이부츠였다) 가죽이 아닌 스웨이드라서 힘을 받지 못해서 부츠를 세울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부츠를 자라쇼핑백 그대로 신발장 한 켠에 놓았다.
10월이 끝나고 11월이 시작됐고, 점점 날씨가 추워지자 부츠생각이 났다.
부츠를 빨리 신고는 싶은데, 저 쇼핑백에서 꺼내는 즉시 쇼핑백은 이제 버려야 할 것 같았고, 내 부츠를 잘 보관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스웨이드 부츠를 힐끗 검색해서 찾아봤는데 관리방법이 어렵다고 다들 난리였다.
아, 난 그다지 엄청 꼼꼼하거나 물건을 고이고이 잘 쓰지 못하는 성격인데, 내가 어마어마한 것을 집안에 들여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제 차근차근 부츠키퍼부터 사자. 라고 생각하여 부츠키퍼를 고르기 시작했다.
키퍼라기보단 거치대형식의 것들이 싸고 많아서 집게처럼 생긴 거치대들을 보았다.
보통 그 거치대들도 사실 니하이부츠보다는 그냥 롱부츠에 맞게 나온것이 많아서 생각보다 고르기가 어려웠다.
어찌어찌 길이를 따져본 후 거치대를 주문했다.
거치대가 오고, 난 기쁜 마음으로 자라쇼핑백을 버린 후 거치대에 부츠를 거치하려고 했다.
거치대에서 부츠를 고정하는 것은 집게인데, 집게에 부츠를 집었더니 흘러내렸다. 거치대 집게의 힘은 약하고, 스웨이드는 얇으니 흘러내릴 수 밖에.
설명서대로 부츠 한 쪽씩 집게를 집어놓으면 흘러내렸기 때문에 그냥 부츠 양 쪽 모두 한 집게에 집어놨다. 나름 스웨이드 겹겹이 쌓이니 두꺼워서 집게에 집히긴 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막상 한 쪽 집게에 부츠를 다 집어놨기 때문에 중심이 흐트러져 거치대가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신발장에 매직후크를 달아 거치대 끝을 후크에 걸어놓았다. 물론 임시방편이였다.
또 다시 부츠거치대를 검색했다. 하루종일 검색한 끝에 잘 세워놓을 수 있는 거치대가 있었다.
물론 이것도 집게형식이긴 했지만, 전에꺼 보단 튼튼해보였다. 후크 따윈 필요없이 혼자 잘 서 있을 수 있으면 그걸로 된거다. 며칠 뒤 주문한 새 거치대가 도착했다.
신나는 마음으로 매직후크까지 벽에서 다 떼어내고, 새 거치대를 꺼내서 집게로 부츠를 집어 보았다.
하하. 부츠는 여전히 흘러내렸다. 스웨이드는 너무하다. 정말로.
결국 집게에 힘을 받고 공간이 많이 뜨지 않도록 절연테이프 등으로 칭칭 감았다.
그러니 겨우 부츠가 잡히긴 했다. 그리고 신발장 한 켠에 잘 세워놓으니 그나마 잘 서긴 했다. (하지만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어려워. 부츠 어렵다. 겨울에 대충 신고 다니고 싶은데, 신는 행위보다 보관하는게 신경이 많이 쓰인다. 
또 겨울이 다 지나도 문제다. 여름에는 부츠를 신지 않을 텐데 이땐 어디에 어떻게 보관해야 하나. 지금처럼 신발장 한 켠에 사계절 내내 세워놓을 수는 없는 노릇인데.
해외직구로 자라에서 봤던 것 처럼 플라스틱 재질의 안에 구부려서 넣을 수 있는 키퍼를 찾긴 찾았는데 생각보다 비쌌다. 저 플라스틱 조각을 이런 돈을 주고 산다고 생각하니 아찔했지만, 결국 언젠간 그 것을 살 것 같다.
기다란 상자도 겨울내내 검색해서 언젠가 우리집에 들여놓을 것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스웨이드 부츠 덕분에 난 올해 눈이 달갑지 않다.
확실히 부츠를 신고 나가면 허벅지까지 가려줘서 따뜻하긴 한데, 그만큼 밖에 노출되는 부츠의 면이 많아서 어디서 뭐가 묻을지 두렵다. 비와 눈에 젖어도 안된다. 이러다가 스웨이드 전용 클리너도 사야할 판이다. 
첫눈이 왔고, 올해 눈이 많이 온다는 소리가 있던데, 나는 올해 겨울엔 빨리 눈이 길에서 녹았으면 좋겠다. 
부츠는 내게 아주 고생스러운 물건이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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