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 나는 작은 달력을 선호한다. 그래서 내 방엔 큰 달력이 벽에 걸려있지 않다. (아마도 큰 달력을 걸었을 해엔 그 달력안에 인쇄된 프린팅이 굉장히 멋졌기 때문일것이다) 어릴 적에 할머니네가면 얇은 종이에 엄청 큰 폰트사이즈로 하루하루가 적혀 있던 달력이 걸려있었다. 하루에 한장씩 뜯어서 사용하던. 그 달력이 나에겐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나는 '시간'이라는 것이 주는 위압감을 싫어한다. 물론 '시간'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순 없다. 우리 모두 같은 '시간' 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최대한 '시간'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으려고, '시간'에 대한 위압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스스로 노력한다. 그냥 '시간'이라는 것은 모두가 그나마 지니고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지 않을까. 할머니네 거실에 버젓이 걸려있는 그 달력만 보면, '오늘은 23일이야!! 너 23일인 것을 꼭 기억해!!!', '오늘이 지났는데? 왜 한장 안뜯어? 이제 24일이라고!!', '너 오늘이 23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겠지?' 라고 나에게 엄청 큰 소리로 외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냥 내가 원래 지니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페이스대로 나의 인생을 살고 싶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달력에 쓰여진 큰 숫자들이 자꾸 내게 종용하는 것만 같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란, 사이즈도 정해지지 않은 커다랗고 깨끗한 도화지라고 생각한다. 그 도화지의 사이즈를 내가 얼만큼 가지고 갈지, 그리고 그 하얀 도화지에 어떤 색의 색연필로, 또는 크레파스로, 혹은 물감으로, 무슨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지, 그 누구가 정해줄 순 없는 것이니. 고작 달력에 쓰여진 글자들이 무슨 의미가 크게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만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요소들이 하나씩 하나씩 쌓이면서 그 한 사람을 만들어 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2. 여러 종류의 달력이 있다. 한 해를 다 보여주는 연간 달력, 한 달을 보여주는 월간 달력, 일주일을 보여주는 주간 달력, 하루만 잘게 쪼개서 보여주는 일간 달력. 나는 월간 달력이 제일 좋다. 그래서 항상 연말 즈음에 다음 해의 다이어리를 고를 떄에도 월간 달력이 가장 심플하고 내가 보기 좋은 디자인의 기준으로 고른다. 그만큼 월간 달력을 엄청나게 많이 본다. 어떨떈 이런 생각을 한다. 월간 달력 12장이 다 넘어가면 나의 한 해가 다 끝나버리는 구나. 이 12장이 뭐라고. 무겁지도 않으며, 넘기기 어렵지도 않은데. 일년이 정말 쉽게 끝나버릴 것 같은 생각. 또 어떨땐 이런 생각도 한다. 이번 한 달이 끝나고 다음 달로 달력 한 장을 넘기면서, 이 다음 달엔 나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아니면 어떤 인연이 찾아올까. 예상치 못한 일들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며 설렐 때도 많다. 


3. 하루하루가 달의 모양으로만 되어있는 달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4. 

생일 아침

미역국 받아놓고 생각느니

1959년 이래 쉰 세 해

쉰세번째 가을


그러고 보니

오늘 나와 함께 태어난

내 죽음도 쉰세 살

내 죽음도 쉰세번째 가을

어서 드시게


오늘은 

꾹 참고 나를 보살펴준

내 죽음과

오붓하게 겸상하는 날

일 년 내내 잊고 지내

미안해하는 날

고마워하는 날.


<생일>, 이문재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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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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