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1. 2009년,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서 집에서 나와 살던 집은 춘천에 있었다. 운 좋게도 아파트였고, 기억엔 30여평 정도 되었으며, 같은 회사에 다니던 좋은 언니(라고 하기엔 그렇게 터울없이 지냈던건 아니였다)분과 살게 되었다. 처음에 딱 도착했을때, 거실과 내 방 마찬가지로 가구가 전혀 없어서 정말 텅 빈 집이여서 더욱 넓어보였다. 현관 문 바로 옆에 있던 방이 내 방이였는데, 방 안에 짐이라곤 옷이 잔뜩 든 캐리어와 간단한 이불, 그리고 그때 쓰던 넷북이 다였다. 가구가 없어 청소하기는 정말정말 편했다. 그냥 청소기로 한번 밀고, 걸레로 쓱쓱 아무 생각없이 닦으면 되는 집이였다. 내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살진 않았지만, 나름 밥도 해먹고, 반찬도 해먹고, 조금씩 사람냄새가 났던 집이였다. 심지어 방이 하나가 남아서 손님이 오면 빌려주기도 했다. 집 뒤에는 개천이 흐르고 있어서 비가 엄청나게 많이오면 물이 불어 넘치려고 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보통때엔 그 개천 주변을 밤에 3~4키로 정도 쭉 따라 뛰기도 하였다. 두번째로 내가 살던 집은 염리동이였다. 전에 살던 집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열악했다. 약간 반지하였고, 여자 3명이 함께 살았으며, 공동주방과 화장실이 거실에 있었고, 각자 방 세 개에 각각 세를 들어서 사는 방식이였다. 반지하는 처음 살게되어 뭔가 신기하고 매력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1월 달이였는데 주인 아줌마가 무슨 공사한다며 뜨거운 물이 안나올거라는 비보를 전했다.. 후. 아침 저녁마다 씻는데 정말 무슨 던전 들어가는 것 마냥 각오 단단히 하고 이 악물고 후다다닥 씻기 바빴다. 뭐, 그렇게 억지로라도 찬물로 씻으니 정신이 번쩍번쩍 들었다. 또 하루는, 밤에 잠이 안와서 이불 속에서 약간 뒤척였는데, 갑자기 창 밖에서 이상하고도 괴로운듯한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진짜 엄청나게 무서워서 이불 속에서 얼음이 되어 숨소리마저 죽이고 조용히 쥐죽은듯 있었다. 그런데 그 소리는 알고보니 바로 내가 살던 집 담 하나두고 옆에 있는 집에 나이든 어머니와 40대 정도로 보이는 지체장애인 아들이 살고 있었다. 그 아들이 내는 소리였다. 또 하루는 하나뿐인 조그만 넷북으로 그나마 인터넷도 하고, 메신저도 하고, 그러려고 했는데 와이파이가 아예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마구 껴입고 넷북을 켠 채로 집 밖에 들고 나왔다. 무슨 확신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골목길을 걷다걷다보니 어느 고시원 근처에서 와이파이가 잡히는 것이였다! 속으로 환호를 지르며 그 고시원 옆에 놓인 계단에 앉아서 넷북을 하던 기억이 난다. 또 하루는 저녁에 화장실에서 씻고 거실로 나와서 내 방에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무슨 남자 목소리가 났다. 속으로, 어떤 여자가 남자친구를 몰래 데려왔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니 영어로 대화하는 소리였다. 알고보니 옆 방 여자가 영어로 화상대화를 하고 있었다. 괜히 혼자 피식하며 웃으며 내 방에 들어왔다. 그 다음 살던 집은 송내역 근처 상동이였다. 그땐 내가 좋아하는 친구 밍과 함께 살았었다. 빌라는 아니였고, 상가 맨 꼭대기에 위치한 레지던스였다.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오는 길은 휘황찬란했다. 유흥가 가운데에 있어서 술에 취한 사람들도 많았고, 번쩍번쩍한 건물들도 많았다. 물론 먹을거리도 많아서 밤에 야식을 정말 많이 먹었다. 아, 그때 집에서도 음식을 해먹었었는데, 진짜 유일하게 실패한 음식이 콩나물국이였다. 엄마가 해줬던 콩나물국을 기억하며, 언뜻 보기엔 정말 쉬워보였으나, 막상 내가 해보니 이건 무슨 콩나물 맛 따로, 다진 마늘 맛 따로.. 아무리 간장을 넣고, 소금을 넣고, 설탕을 넣고, 온갖 양념을 다 해봐도 살릴 수가 없어서 몇 숟가락 떠먹고 바로 다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좁은 집이였고, 침대로 1인용이여서 친구랑 같이 한 침대에서 잤는데, 서로 배려를 잘 했던 터라 싸움 한 번 없이, 재미있게 살았던 것 같다. 그 친구랑 무려 세 군데의 집에서 함께 살았었는데, 송내 다음 집은 인천 논현동이였다. 한창 소래포구, 남동구 쪽이 개발되면서 논현동도 나름의 신도시로 떠올랐었는데, (지금은 안가본지 오래되서 잘 모르겠다) 그때 신축빌라가 많이 지어져서 그쪽으로 집을 이사했다. 역시 신축빌라라서 그런지 월세는 비쌌지만, 집다운 집이였고, 1.5룸이지만 넓기도 넓어서 되게 편하게 살았다. 부엌도 따로 있어서 역시 음식도 이것저것 많이 해먹었으며, 빌라촌이여서 동네도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근처에 공원도 있어서 운동하기도 좋았다. 그때 4층에 살았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하이힐을 신고 4층까지 올라가야 했는데, 술마시거나, 많이 걸었거나, 피곤할땐 낑낑대면서 올라갔었다. 논현동 다음엔 천안 성정동이였는데, 그땐 상대적으로 정말 짧은 기간이여서 별 추억이 없었다. 뭐 그때도 먹자골목 쪽에 있던 집이여서 먹는 거에 대해선 굉장히 선택의 폭이 넓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며칠 살다보니 메뉴가 다 거기서 거기고, 고깃집, 술집, 치킨집 이게 거의 끝이여서 정이 가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개의 집들이 나를 조금 더 넓고, 넓게, 조금 더 깊고, 깊게 만들었다.


2. 어느 날은 친구가 살던 옥탑방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옥탑방은 처음이였다. 솔직히 생각보다 그리 낭만적이진 않았다. 그 친구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으며, 그렇다고 원룸은 아니였다. 하지만 약간 컨테이너로 지어진 집이여서 안정감은 크게 없었다. 그리고 인상깊었던 것은 그 친구 방에 따로 또 문이 있다는 점이였다. 거실을 통해 현관문으로 굳이 나갈 필요 없이, 그 친구 방에서 바로 밖으로 나가는 쪽문이 있어서 뭔가 되게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두번째로 놀러간 옥탑방은 아는 오빠가 그 당시 만나던 언니와 같이 동거하던 집이였다. 예전에 가보았던 옥탑방이라는 다르게 원룸이였으며, 그 집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그 작은 원룸의 78%정도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퀸 사이즈 침대였다. 그 침대 덕분에 바닥엔 거의 앉을 곳이 없어서 그냥 그 침대에 모두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해야 했다. 뭔가 색달랐다. 하지만 그 커플이 살던 옥탑방엔 두 번 다시 놀러갈 수 없었다. 헤어졌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언니와 오빠 두 분다 경상도 쪽 사람이였는데.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3. 

햇볕이 들지 않는 북향

키울 수 있는 화초는 산세베리아뿐

왼쪽은 철학관 맞은편은 기러기아빠

일곱 평짜리 오피스텔 9층

나는 밤새 전자파와 이산화탄소를 방출하고

산세베리아는 오염 물질을 흡수했다.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데우다가 문득

그때 내가 애달파했던 것이 더이상

상스러워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따라 들어온 길의 한 끝이

접이식 침대에 앉아 있다 오래되었다.

라디오에서 1960년대 홍콩을 무대로 한 영화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야곱이 걸었던 순례자의 길을

걷고 싶어했다 스페인을 횡단해

산티아고까지 가는 2천 년이 넘은 옛길

걷는 사람들만 걷는다는 8백 킬로미터 옛길

생수가 떨어져 1층 편의점에 다녀왔더니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ㅡ만해 한용운."

위층에는 머리를 길게 땋은 후리후리한 흑인 여자

아래층에는 24시간 스포츠마사지 일식집

혼자 산다는 것은 일인용 일회용과 더불어 사는 것

게으른 것이 얼마나 바쁜 것인지 아느냐라고

답신을 하려다 말고 햇반을 생수에 말아 먹었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빳빳한

산세베리아가 플라스틱 조화 같았다.

걸터앉아 있는 길의 끝을 치우고

접이식 침대를 펴고 텔레비전을 켜고

나는 나를 껐다.


<산세베리아>,이문재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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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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