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인연이네요

그시간 2013.07.15 23:26




우리들은 사실 그렇게 생겨먹었다. 인연읜 시작은, 그토록 어리숙하고 애매하게 첫 단추를 꿴다.

마치 첫 여행이 그런 것처럼.


별 기억이 아닌데도 한 사람의 기억으로 웃음이 날 때가 있다. 돌아보면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닌데도 배를 잡고 뒹굴면서까지 웃게 되는 적이. 하지만 우리를 붙드는 건 그 웃음의 근원과 크기가 아니라, 그 세세한 기억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차곡차곡 남아 주변을 깊이 채우고 있는 그 평화롭고 화사한 기운이다. 인연의 성분은 그토록 구체적이지도 선명하지도 않은 것으로 묶여 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좋아지면 왜 그러는지도 모르면서 저녁이 되면 어렵고, 밤이 되면 저리고, 그렇게 한 계절을, 한 사람을 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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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떄는 소호였다. 사무치게 살고 싶은 곳. 그곳에 가면 내가 살면서 앓던 모든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지내고 속해 있던 고만고만한 세계가 흠씬 두들겨 맞는 느낌이랄까. 

오래전 한때의 소호는 그런 설렘과 긴장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동네였다.

그때 당신과 나는 소호에 있었다. 당신과 처음으로 향한 먼 곳이었다. 어떤 도망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혼자 소호에 있다. 그때 당신과 내가 머물던 호텔의 건너편이다.

새벽녘 저 창문을 열고 창밖으로 머리를 내고 담배를 피우던 기억. 

담배를 피우는데 어디선가 커피향이 몰려와서 주방에 전화를 걸어 아침을 시켜먹던 기억.

그때는 바깥으로 이 거리가 있는 줄 몰랐다. 그때는 그 작은 방 안에 당신과 나의 모든 것이 엉켜 있었다.

당신이 나에게 신발을 사주었었다.

당신 혼자 며칠 더 머물러야 했다. 내가 며칠 먼저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나에게, 신던 신발을 버리고 갈 거냐고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너무 오래 신어서 버려야 마땅한 신발이었다.

아주 어려웠던 때 사신은 신발이라 버리기 뭐했지만 버리겠다고 했다.

뭐든 다 끌어안고 살지 말고 조금씩 버리고 살라는 당신의 말을 듣고 싶어서였겠다. 아마도.

가방을 싸면서 낡은 신발을 휴지통에 버리려 하는데 당신이 말했다. 


"거기 한쪽에 두고 가. 그냥 내가 바라보게."


어쩌면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 말이 생각나는 걸까.

그 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걸까.

단지 우리가 며칠 머물던 호텔의 건너편 쪽에 앉아 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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