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였더라,

가방 속에 손을 넣어보면 조용하게 자리를 차지하던 편지가 있었고,

지갑을 열어보아도 꼬깃꼬깃 접은 편지가 있었다.

어릴 때 보물찾기를 하다가 상품이 적힌 쪽지를 발견하듯이,

서랍 깊숙이 잠자고 있던, 그동안 잊고 지냈던 귀걸이를 발견하듯이,

의도치 않게 편지를 발견할 때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엄청 기쁘고 설레는 마음을 꾹꾹 참아내며,

편지를 발견한 짜릿함을 조금 더 느끼고자 몇 초 전, 몇 분 전, 

편지를 발견한 순간을 다시금 새기고자,

고이 접혀진 종이를 쉬이 펴보지도 못했었다.

그리고 나서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원래 글을 읽는 속도가 빠르고, 성격이 급하여, 빨리 읽어내려가고 싶은 눈길을

자제하고, 자제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놓칠새라 소중하게 읽어내려갔던,

그런 때가 있었다.


2.

특별한 날에 편지를 쓴다는 것은,

뭔가 뻔한 내용들이 담겨있고 특별한 날에 꼭 행해야 할 것만 같은

의식같은 느낌이라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그냥 일상 속에서 예상치못하게 편지를 쓰는 것(받는 것)을 좋아했고, 좋아한다.

일상 속에서 받아보는 편지는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어여쁜 편지지에 볼펜으로 썼기에 어쩌다 잘못 적은 글자를 지울 수 없어

수줍게 글자 위에 엑스표를 하거나, 실선을 주-욱 그으면서 소중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야무지게 각을 맞추어 구져지지 않게 두어번 꼭 접어서 편지봉투에 꼭 맞게 넣는 그 희열감은 시간이 지나고 사라지지 않을텐데.



3.

하고 싶은 말들을 이제는 스마트폰 메신저로 인해서

상대방에게 1초만에 전송할 수 있게 되었다.

손편지는 이제 정말 귀해졌고,

마음을 담아 쓴 메일 역시 받기가 힘들어졌다.

그래도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소중한 이메일들을 받는다.

그들의 이메일에서 따뜻함을 느낀다.

어쩌다 몇 문장 되지 않는 추신이 반가울 때가 많다.


4.

세상에 내가 직접 만들지 않는 이상,

내게 딱 맞는 맞춤형은 아무것도 없는데,

잠시 돌아만 봐도 그동안 나는 이기적이게

모든 것들을 너무 욕심냈던 것 같다.

마음 속에 조금의 여유와 인내심과 이해심이 있었다면,

충분히 내 안에 품고 지나갈 수 있었던 것들을

너무 쉽게 등돌려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득해지자. 


5.

부치지 못했던 편지를 부쳤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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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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