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1. 생채기
아무 생각없이, 어떠한 의욕의 한 줄기 없이 아침에 눈을 떴던 적이 있었다.
눈을 뜰 때마다 싫고, 좋고의 감정에서 더 많이 나아가
조금 더 무뎌진 마음으로 현실을 애써 회피하며,
지금보다 더 마음이 다치지 않게 꽁꽁 무뎌짐으로 동여매며,
하루를 시작한 적이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런 시간들도 결국 끝이라는 것이 정승같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무뎌짐으로 꽁꽁 쌓인 마음은 더이상 풀리지 않은 채 그렇게 그런 시절을 맺었다.
시간들이 묵묵히 쌓여갈수록 마음의 앙금도 더 단단해져만 갔다.
그런 앙금들이 혹여나 지금도 남아있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이 스쳐가지만
굳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그 앙금들을 들여다보지 않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앙금이길 바라며.

2. 만성
눈을 떠보니 지하철 플랫폼에 있는 의자 위에 누워 있었다.
저혈압으로 인해 쓰러진 나를 누군가들이 의자로 데려다 준 것이다.
나는 사람이 많은 전철(이 가장 적합한 예다) 등 환기가 되지 않는 곳에 장시간 서 있으면,
피가 머리 끝까지 돌지 않아 저혈압으로 인해 쓰러지는 만성적인 병이 있다.
그래서 일부러 예전부터 사람이 많은 전철 시간 대는 피하고,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맞추어 훨씬 일찍 나가거나, 늦게 나가는 버릇이 있다.
그 날은 어쩔 수 없이 급행을 타느냐고 사람이 많은 전철을 탔는데,
어김없이 저혈압이 왔다.
순간적으로 만약 전철에서 쓰러지면 어김없이 용산까지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참고 참아 수원역에 도착하여 전철문이 열리자마자 한 발을 밖으로 내딛고 바로 의식을 잃었다.
그렇게 그 날 오전을 날리고, 너무 화가나 정신차리고 내과를 찾아갔다.
심전도 검사 등 여러 검사를 한 끝에 나온 결론은,
순간적으로 심장이 펌프질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약해서 머리 끝까지 피가 안가는 것이라고.
예방법은 없냐고 물어보니, 예방하는 방법이나 약은 없고, 그냥 만약 그런 저혈압증세가 일어나면
무조건 어디든 드러누워서 머리끝까지 피가 통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한다.
그 후로 나는 드러눕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조심하여 몸을 사리며 다니고 있다.
사람 많은 전철은 정말 싫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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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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