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1. 숨겨져 있던 복선들
맞다. 기대했다. 헛된 기대에 실제의 너를 빗대어 비교했다. 그 기대를 믿고 너를 만났고, 네 존재에 의지도 했고, 네 말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생각해보면 너와 나는 사고의 뿌리부터 너무나도 달라 서로를 원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였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복선이 하나하나 깔렸을 지도 모른다. 알아채지 못하거나, 알아도 모르는척 외면한 복선들은 쌓이고 쌓여만 가고, 그렇게 너와 나는 멀어졌다.  

2. 1시간을 사이에 두고
넌 내게 장문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너와 나의 모든 대화들은 농담일 수 없었다. 가식일 수 없었고, 내숭일 수 없었고, 서로를 밀고 당기는 일도 상상할 수 없는 상태였다. 오직 현명하게 생각하고, 냉정하게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였다. 현명하지 못하면, 나도 너도, 모두가 상처만 남게 되어버린다는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 더욱 이성적인 생각만 했어야 했다. 난 너에게 되물었다. 모든 것이 억지인거냐고.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거냐고. 모든 것이 억지라면, 그런거라면 그만두자고. 넌 아니라고 했다. 그런건 아니라고. 솔직히 안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맞다고 인정해버리면 그냥 정말 안녕일텐데. 난 더이상 너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을 뻔 했을텐데. 다행히도 나는 너에게 앞으로도 더 이야기를 걸 수 있고, 하고 싶은 말을 계속 할 수 있게 되었다. 너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다 안다고 말 할 수 없었다.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불안하고, 얼마나 초조한지, 감히 가늠만 할 뿐이지, 그 현실을 가지고, 그 상황을 가지고 가타부타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다 괜찮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내가 괜찮지 않으면 안되니까. 그러면 모든 것이 더이상 괜찮아지지 않으니까. 나라도 괜찮아야 한다. 그래야 너도 괜찮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러길 바랐다. 그냥 조금의 실낱같은 희망 비스무리 한 것이라고 믿으며, 그렇게 지내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그냥 어떻게 될대로 되라,라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지는 않을까, 알아서 나중되면 변하고, 서로 자연스럽게 떨어지겠지, 라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지는 않을까, 어차피 서로 볼 일이 없는 사이니까, 라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지는 않을까, 등등 수 만가지 생각을 해보지만, 그래도 나는 괜찮다. 결국 우리들은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어떤 것도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

3. 아니여야 하지만.
나는 너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 너는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 우리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는 것인지. 
사실은 바라는 것도, 기대하는 것조차 겁이나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골똘한 생각을 할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벅차서 힘에 부칠지도 모른다. 그저 조금은 더 나은 미래가 있길 바라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날을 기다리며, 그 날만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어쩌면 마지막을 상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4. 땡볕의 정오
그렇게 더울 수가 없었다. 올해보다 더 더웠던 것 같다. 너와 만나기로 한 시간을 가늠하며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렸다. 드라이기 바람조차 견딜 수 없는 더위였다. 샤워는 말짱 도루묵이 되었고, 유일하게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안방을 오아시스삼아 그렇게 방과 방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고, 립스틱을 발랐다. 그 와중에 너에게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핸드백을 집어들고, 안방에 에어컨과 불을 껐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구두를 신었다. 밖에 나와보니 길가에 네가 차를 세우고 마중나와 있었다. 나갈 준비를 하면서 느낀 더위에 지쳐있던 나였지만, 말은 너무 덥다고 응석을 부렸지만, 표정은 괜히 좋아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런 함박웃음을 다시 지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상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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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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