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

1. 초밥의 신세계
처음으로 맛있는 초밥을 먹었던 게 언제였더라.
어릴 적엔 굳이 초밥이라는 건 대형마트에서 300원, 500원, 700원에 파는 이름모를 생선들의 잔재가 초간을 한 밥알 위에 투박하게 올려져 꼬깃꼬깃 비닐로 쌓여져 있는 걸로만 알았던 나였는데. 그 맛있는 초밥을 만나게 된 연유는, 21살 여름이였을 적이였나. 그 때의 나는 겨우 귀 뒤로 머리를 넘길 수 있었던 숏컷이였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 하얀 바탕에 검정 체크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실크 소재로 된 그 블라우스는 여름에만 입었기 때문에 그 때가 여름이였다고 짐작하며, 20살 여름에는 함께 갔던 스타트업 대표님을 알지도 못했으며, 21살 여름방학에는 그 대표님을 따라 춘천에 있었고, 22살 여름에는 몇 지역을 방황하던 시절이였기에. 21살 여름, 춘천가기 전 2학년 1학기를 다니고 있었을 때도 추정된다. 그 때 리쿠드로 찍었던 내 초밥먹는 동영상이 생각나서 일주일만에 Path를 켜서 정말 1년 전, 2년 전, 3년 전, 4년 전, 5년 전까지 내려가보았지만, 리쿠드에만 올렸을 뿐 Path에는 올리지 않았나보다.
그 대표님을 합정역에서 만나서 무작정 따라간 초밥집에서 맛있는 초밥을 난생 처음으로 먹었었다. 합정이란 곳이 그 당시 내게는 낯선 동네였기에, (그나마 홍대 부근은 낯익었으나, 합정 쪽은 매번 올 때마다 길이 어려웠다) 쫄랑쫄랑 대표님과 이야기하며 따라가기 바빴다. 어느 새 도착했다며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간 대표님 말에 의하면 아주 맛있다는 초밥집은 생각보다 작았다. 테이블도 몇 개 없으며, 초밥집이 한 눈에 다 들어왔다. 창가 쪽에 앉아서 땀을 식히며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있는데, 대표님이 모듬초밥 두 개를 주문했다. 여긴 모듬초밥이 싼데 아주 퀄리티가 좋다는 말을 곁들이면서. 초밥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맛있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먼저 나오는 우동을 후루룩 먹었다. 곧이어 초밥이 나왔다. 이럴수가. 내가 항상 보던 마트에서 팔던 초밥이랑은 차원이 달랐다. 밥 위에 올려진 생선의 크기와 두께하며, 보기만해도 군침이 도는 빛깔하며. 완전 싱싱해보였다. 초밥 하나를 젓가락으로 조심스레 잡아 대충 밥에 간장을 찍고, (이 땐 초밥의 어느 부분을 간장에 찍어 먹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입에 한가득 넣었다. 우와. 초밥이 살살 녹는다. 정말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맞다. 이런 초밥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초밥은 도대체 뭔가. 그냥 시큼한 밥 위에 생선조각 하나 폼으로 얹어둔 초밥이지 않았는가. 초밥을 허겁지겁 먹자, 대표님은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그 당시 런칭한 동영상앱으로 내 모습을 담아주었다. 초밥을 다 먹고 그 영상을 보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아마 온라인 어디엔가 그 영상이 남아있긴 할텐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그 후 나는 그 초밥집이 도대체 어디였을까, 왜 그때 이름조차 제대로 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에 포털사이트에서서 '합정역 초밥집'으로 검색을 해 보았다. 그리고 찾아낸 그 초밥집의 이름은 '김뿌라'. 
웃기게도 그 후 그 초밥집을 다시 방문한 적은 없었다. '김뿌라'가 체인점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는 참치집을 더 많이 갔었고, 초밥집은 '은행골'이라는 곳을 더 많이 갔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생활하는 반경에서 가까운 곳이라서겠지만. 올해는 '김뿌라'를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2. 의외로
초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확히 말하면 초밥보다는 날 것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나의 가까운 사람들은 초밥을 전부 좋아한다. 다행이야. 다음에 만나면 초밥을 먹으러 가자고 이야기해야겠다.

3. 별의별
누군가의 말을 빌려 '이십대의 최고 어른'의 나이가 되었고, 차곡차곡 한 해를 넘기다보니 별의별 사람들이 내 눈 앞을 스쳐지나갔고, 때론 조금은 긴 시간 머물기도 했다. 입에 올리기도 싫은 악연도 있었고, 고마운 인연도 있었으며, 아쉬운 인연도 있었고, 지금도 보고싶은 인연이 있다. 좋아하지만 결코 오래 어울리지 못하는 인연도 있었으며,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쩌다보니 오랜 인연이 되어있기도 했다. 뭔가 내가 이용 당한 느낌이 드는 인연도 있었으며, 안타깝고, 그리운 마음에 다시 붙잡은 인연도 있었으며, 그립지만 마음 속에 고이 묻어두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인연도 있었다.  아직 남은 일생이 훨씬 더 많으니, 더 요란한 인연들이 다가올 수도, 담백한 인연들이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아무쪼록 상처받는 순간이 덜 했으면 좋겠다는 나만의 방어기재가 발동한다. 

4. 수원역 어느 초밥 뷔페
널 다시 만났던 적이 이제는 꽤 된다. 그 중 어느 추운 겨울에 수원역에서 만나 나란히 초밥뷔페에 들어갔다. 나도 너도 초밥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들어갔더니 크게 돌아가는 트레일러 위에 색색의 접시들이 초밥을 품고 있었고, 사람들이 나란하게 닷지에 앉아 초밥을 먹고 있었다. 너와 나도 사람들 틈에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술 한 병을 시키고, 초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잘 지냈니부터 시작해서 너는 지금 어느 회사를 다니고,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있다, 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나도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고, 이런 걸 하고 싶으며, 학교를 잘 다니고 있고, 등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담이지만 그 뒤에 너와 나는 그 초밥뷔페가 너무 맛이 없었지만, 그 땐 이야기를 못했다며 나중에 그 초밥뷔페를 다시 회상했었다) 약간의 어색함이 풀린 너와 나는 2차로 배가 부르니 칵테일을 마시자며 로데오 거리를 주욱 들어갔다. 'BAR'라는 간판을 무작정 보고 들어간 지하 1층의 어두컴컴하며, 퀘퀘한 공기가 온통 애워쌓고 있던 바에서 우리는 칵테일을 주문했다. 약간 술 기운이 오른 너와 나는 서로의 마음을 비출듯 말듯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했으며, 점점 차오르는 반가움과 설레는 감정에 나는 살며시 너에게 마음을 열고 있었다. 수원역에서 우리는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며 각자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고, 그 날 이후로 너와 나는 다시 만났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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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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