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1.

견고하게 쌓았다고 생각한 벽에 틈이 있었나보다.

조금씩 조금씩 흔들리고, 무너지고, 기울고 있다.

우려했던 것과는 반대로 나의 벽이 먼저 무너져내렸다.

약간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무너져도 괜찮다는 결론이 나왔다.

괜찮아. 

벽은 다시 쌓아올리면 그만이니까.

얼마나 튼튼하게 쌓아올리냐의 문제니까.

오래걸려도 괜찮다.

괜찮아.


2.

내 등 뒤에 많은 공간이 있는 것보다 내 눈 앞에 많은 공간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 날도 자연스럽게 벽을 등지고 앉았다.

내 앞에는 내 귀를 행복하게 하는 소리들과 약간은 정신없지만 나름 질서있게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존재만 느꼈을 뿐 다른 모든 것들도 새로웠기에 그리 비중있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떤 눈길이 나에게 닿았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시간들.

그 곳에 가지 않았어도 내겐 약간은 아쉬웠을테지만 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곳에 꼭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생소한 길을 걸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3.

나는 너의 마음의 벽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뭐, 벽 뿐만이 아니라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그런 마음을 접었다.

천천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기로했다.

네가 나를 보았던 것처럼.


4.

예전에 아는 언니에게 들었던 소개팅 일화가 있다.

여자이며 30대 초반이였던 언니의 직장동료는 어느 호텔 로비에서 소개팅을 했다.

상대는 의사였으며 나이도 30대 중반으로, 생김새도 호감형.

언니의 직장동료와 그 소개팅남은 바에서 어느정도 이야기도 통했고, 얼큰하게 취하자 바로 호텔방으로 올라갔다.

소개팅남은 언니의 직장동료에게 먼저 씻으라고 권했고, 언니의 직장동료가 씻고 나오자 자신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소개팅남은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고, 씻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무언가 이상했던 언니의 직장동료는 화장실 문을 두드렸으나 별 기척이 없었고, 호기심에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언니의 직장동료는 소리를 지르며 대충 옷을 들고 호텔방에서 뛰쳐나왔다고 한다.

소개팅남은 화장실 벽에 자신의 똥을 칠하고 있었다고 했다.

소개팅남은 무슨 생각에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 행동은 소개팅남의 단순한 주사였을까, 아니면 또다른 희열이였을까.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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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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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2011.04.14 17:25




핸드폰 배경으로 쓸것.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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