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1.

내 자신을 잃지 않는 것. 내 자신을 잊지 않는 것.

난 이것에서부터 낭만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오롯한 '내'가 존재해야 '내가 느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고,

오롯한 '내'가 실재해야 '내가 느끼는 감정'이 실재하는 것이다.

오롯한 '내'가 존재하면 '내가 보고, 들은 것'이 존재하는 것이고,

오롯한 '내'가 실재하면 '내가 만나는 사람'이 실재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없다면, 모든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아무것도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2.

아직 나는 잠에서 덜 깬 아침. 아이폰에 푸시가 왔다.

누구지, 하고 봤더니 내가 좋아하는 친구.

요즘 만나면 기분좋고, 항상 자신에게 보고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는 친구다.

아침부터 무슨 일일까, 하며 비몽사몽 답장을 보냈다.

전날 늦게 잔 탓에 피곤해서 내 답장에 온 답장을 보지도 않은 채 다시 눈이 감겼는데,

갑자기 벨이 울렸다.

그래 차라리 전화가 낫겠다, 싶은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 친구는 지금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되는건지, 아닌건지, 

하지만 그 사람과 대화하면 행복하고, 좋은 감정이 자꾸자꾸만 피어올라 계속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주절주절 연신 떠들어대는 친구의 어조는 이미 엄청 설레있었고,

그 사람이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그 사람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일거란 짐작을,

내게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나 역시 그 친구가 행복하면 좋은거라고 생각하여 잘됐다고, 괜찮은 사람같다고 호응해줬다.

친구는 자신의 연애이야기를 마무리 짓고는, 

뜬금없이 자신에게 나는 정말 애정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곤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가 들었던 나에 대한 말이 '애정하는 사람'이라니.

그 말을 몇 번이고 머릿속에 되뇌이며 굉장히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애인이 있어도 아침부터 애정표현 같은 것을 안하던, 안듣던 나인데.

역시 애정표현이란, 표현이란, 좋은 것이구나. 정말로.


3.

집에 가는 길에 같은 전철을 타자고 약속했던 친구에게 

노트 한 장을 깔끔하게 칼로 잘라 라인들 사이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편지를 받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보고싶으면 보고싶다고 이야기 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이 새삼 좋다고 느껴지면 좋아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

건전한 비판을 건전하게 듣는 것,

건전한 비판을 건전하게 하는 것,

네가 행복했으면 모든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네가 행복했으면 모든 다 괜찮다는 말을 듣는 것,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해줄 소소한 선물을 고르고 골라 주문하는 것,

그리 대단하거나 값어치가 있진 않은 것이지만 마음에 드는 포장지에 포장하는 것,

아끼고 아끼는 음악을 같이 듣고 싶은 것,

잡은 손이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워서 손에 힘을 주어 더 꽈악 잡는 것,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

즉흥적으로 시간과 거리따윈 상관없이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것,

지난 일들을 피식 웃으면서 다른 생각없이 담담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누가 들어도 이상한 상황극을 서로 맞받아치며 하하호호 웃음이 쉴새없이 터져나오는 것,

내 옷을 눈여겨보고 은근슬쩍 비슷하게 맞춰 입는 것,

눈 앞에 펼쳐진 단풍잎과 은행잎을 보고 예쁘다고 말하는 것,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다이어리의 첫 장을 펼쳐보는 것,

찬 물이 아닌 실온에 둔 물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존중해주어 식당에서도 미지근한 물을 만들어 주는 것,

오늘의 나를 인지하고, 오늘의 시간을 밟아가는 것,

먹고 싶다고 생각한 음식이 마침 집에 있는 것,

머리와 마음속에 슬픔이 밀려오면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

힘들면 힘들다고 앓는 소리도 해보고, 아프면 아프다고 투정도 부려보는 것,

소중한 사람이 내 두 눈에 담길 때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

내 약점과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는 것,

눈에 익은 길들을 느리지만 차츰차츰 늘려나가는 것,

다정함을 느끼는 것, 

가식없이 담백하고,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것,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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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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