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1.

그땐 그 곳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저 아는 커플을 따라갔을 뿐이였다.

아직 해가 지지않은 늦은 오후의 그 곳은 아늑했다.

나무로 된 테이블과 그리 밝지 않은 은은한 조명. 

장식용으로 소품들을 잔뜩 갖다 놓아 진열해 놓았지만,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큰 책장만큼이나 더 멋진건 없었다.

그나마 궁서체로 진지하게 써있는 '마음'이라는 글자를 담은 프레임만이 선명했다.

그 곳에서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맛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함께 갔던 커플 집에서 빌렸던 (정확히 말하면 커플 중 언니의 것) 수 권의 책 들이 내 옆을 차지하고 있었고,

오빠와 언니는 기타와 악보를 보며 이야기를 했다.

그 곳엔 음악을 만들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온다고 했다.

그 곳은 예전에 있었던 곳에서 이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었고,

이사 오기 전 예전의 그 곳은 어두컴컴한 지하였고, 크기가 조금은 더 작았다고 한다.

이제는 1층에 햇볕이 잘 드는 위치에 자리잡은 그 곳은 크기가 살짝 커졌고, 밝아져, 어두운 그 곳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곳의 역사를 대강 듣고 난 후 얼마지나지 않아 카페에 사람이 80%는 찼는데,

그 중 대부분이 기타를 들고 있었고, 삼삼오오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담배를 피며 웃고 있었다.

기타를 들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였고, 가져온 노트북 화면에 눈을 응시하거나, 커다란 A4크기의 연습장을 펴

연필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냥 대화의 목적이 아닌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은, 그리고 어쩌면 독특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그 곳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곳을 자주 갈 수가 없었다.

그 커플을 더 이상 만날 수 없었고, 방향감각이 제대로 없던 나는 그저 그 곳이 존재하는 사실만 인지하고 있을 뿐이였다.

나 역시 머지않아 그 동네를 떠났다.

사정상 내가 혼자 살고 있는 집을 자주 옮겨야 했다. 그것도 전방위적으로. 

또한 여러 장소에 적응해야 했고, 여러 사람들에게 적응해야 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갑자기 그 곳이 문득 떠올랐다.

그 곳에 같이 갔었던 사람들도 떠올랐고, 그 곳에 갔을 적에 내가 살고 있던 동네도 떠올랐다.

그 곳의 위치가 어디 쯤인지 내 머릿 속에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도뷰로 열심히 마우스 휠을 돌리며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그 동네의 온 골목을 마우스와 함께 투어한 결과, 그 곳을 찾을 수 있었고, 오히려 3년전 사진을 담은 지도뷰여서 100% 확신이 들었다.

그 이후 나는 그 곳을 가기 시작했다.

그 곳을 가니, 그 당시 생각이 절절했다.

그 당시 내 모습이 떠올랐고, 그 당시 살던 집, 그 당시 만나던 사람, 그 당시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사실 그 당시의 기억들은 그리 쉽고 마음 편하게 떠올릴 수 없는 기억들이 많아 일부러 고이 마음 한 켠에 묻어두었었다.

그리고 그 곳에만 가면 그 마음 한 켠의 기억들을 꺼내어 나 홀로 추억했다.

나 혼자면 충분했다.

누굴 데려갈 엄두도, 생각도, 전혀 나지 않았다.

그냥 온전히 나만의 그 곳으로 남기고 싶었고, 그 당시의 기억 말고는 더 이상의 그 곳과 얽힌 추억을 앞으로도 만들기 싫었다.

그냥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년간 나홀로 그 곳을 찾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그 곳은 안 변한 것 같으면서 변한 부분들이 많았다.

전체가 흡연이 가능했던 그 곳은, 시대를 따라 비흡연구역으로 바뀌었고, 덕분에 그 곳은 독서실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그 곳에 갔다, 하면 느꼈던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이젠 사람들이 조용한 장소라고 생각하며 그 곳을 찾을 때도 많았다.

그 변화들을 지켜보며 나도 변했다.

이제는 그 곳을 나만의 장소, 그 당시의 추억으로만 남겨두기 싫었다.

충분히 그 당시를 곱씹었으며, 충분히 추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으며, 나 홀로 그 곳에서 과거의 시간을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묻지도 않은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그 곳에 대해 실토했다.

내가 사실 정말 좋아하는 곳이 있어, 라면서.

고맙게도 나의 그런 작디 작은 이기심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이해해주었고,

선뜻 그 곳에 함께 가자고, 나와 그 곳을 반겼다.

이제는 아끼고 아껴두었던 그 곳의 존재를 이야기했고, 그 곳을 함께 가자며 추천한다.

이제 그 곳은 과거의 나의 장소가 아닌, 현재 내가 존재하는 장소이고,

미래의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장소이기에.


2.

나는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을 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추천을 할 때 무슨 심리가 깔려있을까.

저 사람과 취향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짙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추천한 어떤 것에 대해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는 것도 같다.

무엇보다 분명한 건, 

나에게 있어 추천을 한다는 자체는, 내 방 책장 한 공간을 차지하는 추억상자에서 그 추억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고

그 추억들을 공유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쉽게 추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도 나에게,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추천해주었으면 좋겠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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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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