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중학교때부터 지금까지 쭉 해온 나만의 공부방법이 있다. 물론 엄청 흔한 방법이다.
만약 국사 시험범위가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라고 치자.
우 선 첫번째로 자료 흡수하기다. 아, 수집한다는 게 맞겠다. 교과서, 내가 가지고 있는 국사 문제집들, 그 외 관련 자료들을 모을 만큼 모은다. 정독도 하지 않고 일단 자료를 무조건 모은다. 문제집 같은 경우도 친구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문제집을 가지고 있을 경우, 잠시 빌려달라고 해서 자료를 모을 수 있을 만큼 모은다.
그리고 두번째는 정리. 삼국시대에서부터 정리를 시작한다. 예를 들어 신라를 정리한다고 하자. 각 책마다 내용과 강조한 것들이 조금씩 다르다. 이 책에는 A부분이 있는데, 저 책에는 B부분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내게 있는 자료에서 신라를 쭈욱 끄집어내어 내 공책에 정리하고 또 정리한다. 이런식으로 조선시대까지 쭉 정리하다보면 나만의 방식으로 내 공책에 정리가 되어있다. 그렇게 내 공책에는 국사, 영어, 사회 등 이번에 시험 볼 과목들이 쭉 정리되어 있었다. 정리를 하면서 이해한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무조건 이해하고 정리를 한다. 이렇게 정리를 한 후, 시험 전까지 계속 읽고 또 읽는다. 이게 나의 공부방법이다.
물론 단점은, 애초부터 나에게 있던 자료들 중 C내용이 없을 경우, 그 내용은 내가 숙지하지 못하고 시험을 본다. 그래서 C내용은 시험에 나오면, ‘어.. 이건 내가 공부하지 않았던 부분이다’라고 생각하며 미련없이 틀려버린다. 이 단점을 보안하기 위해 친구가 공부한 공책과 내 공책을 한번쯤 돌려볼 때도 있다. 하지마나 근본적으로는 자료를 모을때 정말 꼼꼼하게 모아야 된다는 점.
중학교때는 시험기간 일주일 전에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 비록 과목수는 많았지만 시험범위들이 적었고, 난이도도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대체로 하루안에 끝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는 난이도가 높아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걸려서 정리하는 데도 조금 시간이 오래 걸렸다. 대학교 때는 거의 한달 전부터 찬찬히 시험준비를 했다. 양도 양이지만, 난이도도 어려운 것들이 많아서 내 방식대로 공부하려면, 정리하려면 한달 전부터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해야한다. 한 번은 여유부리고 놀다가 시험은 코 앞인데 엄청 공부를 안 한 적이 있다. 일단 내 방식대로 정리를 시작하는데, 손으로 일일이 다 써야되기 때문에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수단을 위한 수단이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아, 진짜 정리는 미리미리 해야한다’라는 것을 정말 절실히 깨닫고 시간을 많이 두어 정리를 시작한다.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왜 이런 방법으로 공부를 하는 걸까. 물론 내가 공부하는 방법이 정답이 아닐수도 있고,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왜 나는 굳이 글을 쓰면서 정리하지? 왜 나는 굳이 손으로 일일이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적어가며 (또 그냥 막 적지 않는다. 엄청 예쁜 글씨로 또박또박 적는다) 시간을 소모하는 걸까? 이 정답은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알고 싶어하는, 내가 인지하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이 내 손 안에 있어야 하는 그런 버릇이 있다. 내 손 안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정말 내 손바닥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 중학교때부터 한 학기에 두 개씩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 공책이 생겼다. 이 시험 공책이 내 손에 들릴 수 있고, 내가 항상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그래야 안심이 됐다. 조금 더 나아가서 다이어리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IT서비스를 만들고, 때로는 얼리어답터라는 소리도 들어보고, 아이폰에 깔린 앱이 수백개가 되어도 절대 다이어리는 종이 다이어리를 쓴다. 해마다 종이다이어리를 써왔고, 그 다이어리에 스케줄 정리부터 그 날 느꼈던 느낌, 그 날 했던 생각들, 그 날 있었던 에피소드 등을 적었다. 또 유별난 건, 종이다이어리에 절대 숫자가 써져 있으면 안된다. 검정색, 빨간색 색연필로 1년의 날짜를 다 쓰면서 계획을 짠다. 1년 365일의 날짜가 다 적히는대는 20분정도. 그 20분 내에 1년이 내 손에 다 적힌다는 이야기다. 뭐 별건 아니지만 이렇게 내 손에서 다이어리가 쓰여야 하고, 달력도 그렇게 보아야하고. 그래야 정리가 된다. 물론 웹이나 앱에서 연동도 되게 쓸 수 있는 다이어리 서비스 중 훌륭한 것들도 많다. 그렇지만 난 그들의 고객이 되진 못한다. 한 번쯤은 써보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 아, 여기서 더 나아가면 전자책도 아직 나에겐 맞지 않는다. 앞으로 전자책이 많아진다는 전망을 수도없이 봤지만, 책도 역시 내 손에서, 내가 직접 종이를 넘겨가며 읽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야 내용이 들어온다. 전자책도 읽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끝까지 못 읽고 실패. 책의 내용은 둘째치고 그냥 많이 불편했다.

이렇듯 항상 디지털과 아날로그사이에서 괴리가 온다. 하는 일은 이런 디지털기기들이 없으면 절대 할 수가 없는 것들인데, 나는 아날로그를 좇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떻게 하면 아날로그를 디지털에 녹일 수 있을까, 하는 궁리는 오늘도 계속된다.

-Hee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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