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어릴 적, 초등학교 3학년, 아니 4학년 때다.

그 당시 단짝 친구였던 Y양과 함께 학교가 끝나고 학교 밖으로 나가는데,

날씨가 꾸물꾸물 하더니 갑자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학교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 문으로 나가면 Y양네 집 쪽이였고, 왼쪽 문으로 나가면 우리집 쪽이였다.

Y양과 나는 운동장 오른쪽 문으로 나가서 보이는 문방구에 500원짜리 악보를 팔아서

그 악보를 사려고 그쪽으로 나가려던 참이였다.

일단 뛰어서 문방구까지 가는 건 성공.

악보를 골라골라 최신곡(이였는데, 정확히 무슨 곡인지 기억이 안난다) 악보를 사들고,

비에 안젖게 가방 속 책 사이에 한번 고이 접어서 넣었다.

그리고 현재 위치와 가까운 Y양네 집으로 가서 비가 그칠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는 집에 가기로 했다.

Y양네 도착. 그 날 처음으로 Y양 어머니를 뵈었다.

Y양네 어머니는 듣던 대로 완전 젊으셨다. 작은 이모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이른 나이에 결혼하셨다고 들었는데, 정말 우리엄마보다 10년은 젊어보였다.

아니다 한, 8년정도?

Y양 어머니께서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라며 뽀송한 수건을 주셨다.

열심히 머리를 털고, 겉옷도 말리려고 벗어서 널어놨다.

그리고 배가 고파서 Y양과 나는 식탁에 앉았다.

Y양 어머니께서 흰 우유를 졸졸졸 컵에 따라주셨다.

다 따른 우유컵을 낼름 집으려고 하니,

잠시만 기다리라며 우유가 가득찬 두 컵을 들고 전자렌지 앞으로 가는게 아닌가!

그때 난 꽤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매일매일 냉장고에서 꺼내어 먹던 찬 우유만 생각했던 나였는데.

우유를 전자렌지에 넣어 따뜻하게 데울 수가 있다니..

정말 우유를 데워먹는다고는 상상도 할 수도 없던 일이였는데.

따뜻하게 데운 우유는 괜히 맛도 좋았다.

뭔가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였다.

이 것이 나의 첫 고정관념을 깬 사건이였다.

친구네 집도 우리집과 다를게 없다고 느꼈었는데, 그 사건 이후로 모든게 많이 달라보였다.

이를 테면, 우리집은 바닥에 놓는 흔한 빨래 건조대가 없었다.

어릴때 부터 항상 베란다 천장에 매달린 봉 세개의 건조대에 빨래를 옷걸이에 걸어 차곡차곡 걸었다.

나랑 동생이랑 엄마가 빨래를 옷걸이에 잔뜩 걸어 바닥에 늘어놓으면

아빠는 그 빨래옷 꾸러미들을 전부 들고 베란다로 가서 위에 달린 건조대 봉에 거는게 전부.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옷걸이의 방향을 모두 같은 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바닥에다가 펴 놓는 빨래 건조대가 있었다.

괜히 저기에다가 빨래를 널면 재밌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유 사건 이후로, 아, 내가 살고, 하고있고, 보고있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었다.


-Hee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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