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1.

할아버지 장례식장이 내 생애 첫 장례식장이다.

하얀 국화에 폭 쌓인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니,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이 피부로 와닿았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고, 처음 느끼는 기분이라 마음속으로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큰손녀라고 상복을 입고 조문하러 오는 친척들을 맞이했고, 

불행 중 다행히도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라 모두들 침착했다.

늦은 밤이 되자 손님들의 발길은 뜸해졌고, 엄마도 이제 좀 쉬자고 했다.

하루종일 밥을 먹지는 않았다. 그냥, 입맛이 없었다.

땅콩 몇 알정도만 먹은게 전부다.

할머니와 엄마는 할아버지가 주시는 음식이니 먹으라고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후에도 장례식장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

그 죽음과 애도의 분위기에서 나는 아직까지도 적응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삼육두유 파우치형태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항상 할아버지네 갈때면 삼육두유 한 박스씩 들고 갔다.

나도 그때부터 두유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뵈었던 할아버지는 평소에도 마르셨지만 더더욱 마르셨다.

거의 뼈와 그 위를 에워싼 가죽만 남아있는 인간의 모습이였다.

그때가 대학교에 합격한 직후였는데, 

그 마른 팔로 내 손바닥을 힘겹게 붙잡으시곤, 

앙상한 손가락으로 내 손바닥에 'ㅊㅜㄱ'이라고 쓰셨다.

목에 이어진 호스때문에 말을 못하셨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우리집 거실장 유리 아래에는 할아버지 사진이 끼워져 있다.

항상 거실장 서랍에서 손톱깎기를 꺼낼때마다 할아버지를 본다.

엄마도 시아버지를 존경했기에 항상 간직하고, 생각하려고 하신다.

그래서 가끔 엄마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난 시아버지지만 너네 할아버지 존경하고, 좋아했어' 라고.


2.

어떤 할아버지가 엄청나게 귀여운, 마치 이름이 아롱이라 불릴 것만 같은 요크셔테리어와 함께

길을 걷는게 보였다.

그 모습이 엄청나게 귀여워서 뚫어지게 쳐다봤다.

왜 난 이렇게 안어울릴 것만 같은 조화가 귀엽지.

그 모습이 무지하게 귀여웠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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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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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그때 2012.12.20 20:45

서점에서 종종 할아버지가 손주들을 데리고 와서 책을 사주는 모습을 본다.

요즘 책들은 만화로 된 책들도 많고, 겉 표지가 화려한 책들이 (특히 아동책일수록) 많아서

손주들이 '할아버지 나 이거 사주세요'라고 책을 가지고 오면,

되레 할아버지는 '이거 불량서적아니야?'라며 껄껄 웃으며 반문하신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서 짠-함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나 역시 우리 할아버지에겐 첫 손주였다.

내가 어릴 적일이여서 기억이 잘 안나지만, 가족들 말로는 할아버지가 나를 땅도 못밟게

동네 방네 업고다니고 하셨단다.

할아버지가 젊은시절에 무얼 하셨는지는 잘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그나마 젊은시절의 할아버지는 군복을 입고 계셨다.

상사라고 하는데.. 군대에 많이 무지한 나는 그게 얼마나 높은지 모른다.

월남전에도 참전하셔서 지금은 국립묘지에 계신다. 


할아버지는 글을 잘 쓰셨다. 글을 읽어보려 했으나 온통 한자로 도배되어 있어서 도통

무슨말인지 모를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에게 가서 '맨날 할아버지는 공부만해-_-'라고 했다.


태어날때부터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할아버지랑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면 미약하게 담배냄새가 났다.

그게 나는 할아버지 냄새인줄 알았다.

 

연필깎기가 집에 없었을 적, 할아버지에게 연필을 깎아달라고 맨날 가져갔다.

그럼 할아버지는 재털이에 뚜껑을 열고 거기다가 대고 연필을 깎아 주셨다.

재털이가 꽉 차 있을 때에는 전단지를 가져와 네 면을 조금씩 접고 접시모양으로 만들어서

그 안에다가 연필을 대고 깎아 주셨다. 

(아직도 나는 그게 생각나서 손톱을 깎을 때 전단지의 네 면을 접고 거기다가 깎아 버린다.)


할아버지는 경상도 분이셨다. 본적이 경북.

그래서 엄청 무뚝뚝하셨다. 

3형제를 둔 할머니도 복작복작한 남자형제들과 할아버지 덕분에

같이 무뚝뚝해지셨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엄마는 살가운 시어머니가 그리웠다고 한다.)

이런 집안 분위기 덕분에 어릴 적 나도 굉장히 차가웠고 무뚝뚝했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에게 애교한번 떨어보지 못했다.

그게 쑥쓰러웠다.

물론 지금은 많이 유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런 면이 남아있다.


점점 시간이 지나고, 나도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갔을 무렵,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불러서 가봤더니, 손수 당신이 입을 수의를 이미 구해놓으셨고,

산소보다는 요즘은 납골당이 좋으니 화장을 해달라고 하셨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굉장히 찡했다. 죽음을 준비하시고 계신 할아버지.

물론 그 이후로도 오래 사셨지만, 자식들에게 짐 안지게 할려고 당신이 하실 몫이라 생각하고,

준비하셨던 것이다.


5년 전, 할아버지는 병원에 몇번 갔었다.

후두쪽이 안좋으셔서 치료를 받으셨다.

그 이후로 반평생(언제부터 인지는 모르나) 피우던 담배도 딱 끊으셨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고 할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가셨다.

노환으로 인해.


그리고 내가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들어가서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저 대학교 합격했어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목에 호스를 끼고 계셨던 할아버지는 말을 제대로 못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내 손바닥을 피시곤 손가락으로 '축'라고 손바닥에 쓰셨다.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몇달 뒤, 할아버지의 임종소식을 들었다.

새벽에 엄마아빠가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가셨고, 나와 동생은 다음날 아침에 부랴부랴 장례식장으로 갔다.

내 주변에서 처음 있는 상이여서 실감이 안났다.

장례식장으로 가서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는데도 멍-했다.

제일 큰 손주이기 때문에 상복으로 갈아입고, 3일동안 열심히 문상객을 맞이했다.

그리고 마지막 발인하던 날.

관을 영구차에 옮기려고 운반하던 그때, 할아버지가 누워계신 관을 처음 봤다.

그때서야 '죽음'이라는게 실감이 났다.

그때서야 '아, 할아버지를 다시는 볼 수 없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라는게 실감이 났다.

땅에 주저 앉아서 울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너무 슬프고, 또 슬펐다.

눈에 맺힌 눈물을 닦고 계셨던 할머니, 그 외 친척들이 모두 놀랄 정도로 땅을 치고 울었다.

영구차에 타고 할아버지댁을 한바퀴 돌 때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실신하지 않은게 다행일 정도로.

그 뒤 화장하는 곳에 도착해서 할아버지를 정말 떠나 보내고,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났다. 정말 문득, 종종,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어린 시절, 길지도 않고 생생하지도 않지만, 할아버지의 모습을 추억한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을 때다. 

그 뒤로, 그리고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르면서 장례식장에 갈 상황이 없지는 않겠지만,

언제나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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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육두유.

yummy! 2012.11.28 01:19




삼육두유는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가 좋아하셨다.

예전에 할아버지댁에 갈때마다 삼육두유 팩을 한박스씩 무겁게 들고 갔었는데.

어릴적에 할아버지의 두유를 뺏어먹으면서 '그리 맛있지도 않은데-'라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입맛도 변한 나는 이제 두유가 좋다.

오늘 다시 느낀건데, 베지밀B보다 삼육두유가 더 맛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생각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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