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1. 울렁거렸던 하루
엄마가 소개시켜 준 보험설계사 아줌마를 만나는 날이 되었다. 보험에 무지한 나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보험에 대해서 열심히 캐물었다. 도대체 보험은 왜 드는 것이며, 내가 들고자 하는 연금보험은 어떤 것이며, 무슨 혜택이 있는 건지, 언제부터 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손해를 본다면 그 손해는 무엇인지. 이렇게 캐 묻다보니, 문득, 도대체 왜 이렇게 수 백 가지, 수 천 가지가 되는 보험 종류가 생겨난 것이며, 사람들은 왜 보험사에 매달 열심히 돈을 내고 있는 것이며, 보험사는 왜 망하지 않는 것이며, (또는 왜 망하는 것이며), 보험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며,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이 보험을 20년 만기로 들면, 나는 80세까지 살게 되면, 내가 만약 암에 걸리게 되면, 내가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등등의 갖가지 가정들이 기분나쁘게 다가왔다. 백세시대라고 외치는 세상에서 지금 나는 80세 이상 살게 되면? 매달 십 만원씩 십여년 보험료를 지급했다가 80세 넘어서 보험료를 못 받게 되면? 못 고치는 암에 걸렸는데 치료할 돈이 없다면? 자식들이 있는데 내가 죽는다면? 보험들은 내게 별별 질문들을 던졌다. 딱히 상큼한 질문들은 아닌, 퀘퀘묵은 질문들. 하지만 퀘퀘묵었다고만 치부하기엔 너무나 일반적인 불안감들이 똘똘 뭉쳐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질문들. 난, 당장 내일 걱정, 당장 한 달 뒤 걱정, 당장 일 년 뒤 걱정, 당장 지금의 걱정도 하기 벅찬데. 내가 지금 20년 뒤, 30년 뒤, 60년 뒤를 걱정하고 있는 꼴이 우스꽝스러웠다. 이런 상황들이 엄청 이질적으로 다가왔고, 내 자신이 한 층 더 초라해졌다. 뗄레야 뗄 수 없는 불안감들이 날 비웃고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2. -
접촉이 되었다, 말았다 하는 마치 고장난 충전기처럼, 
왜 그 영화에서 보면, 좀비에게 물리고 난 직 후에 좀비가 되려다 말았다가 하는 것처럼,
나 자신을 찾았다가, 잃었다가. 

3. 그 날의 공포
'왜 여태껏 손톱이 이렇게 자라는 걸 못 느끼고 있었나. 자르자.'
(될 수 있으면 손톱과 발톱은 샤워 후에 자르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이땐 다급하여 집에 들어오자마자 손톱깎기를 찾아들었다.)

4. 바닥
넌 조금이라도 너의 가치관과 다른 것들이 보일 때마다 어김없이 인상을 썼고, 때론 그것들에 대해 쓴소리를 했어. 나는 그런 너를 보면서 마음이 평온하지 않았지. 난 누군가가 그렇게 진지하게 인상을 쓰는 모습을 그렇게 많이 본 적이 없었어.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이 위태롭게 느껴졌고, 내 마음은 심란해져만 갔어. 너는 내게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이 아니였어. 나는 괜히 불안할 때가 많았어. 그리고 나는 느꼈어. 나는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오히려 심란해진 내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한거야. 사실 난 너를 달랠 방법을 몰랐어. 더 솔직히 말하면 내 존재만으로 널 달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그것만으론 부족했어. 어쩌면 나는 너의 바닥을 너무 빨리 보았는지도 몰라. 허하게도.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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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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