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1. 사실 난 아예 소파를 들일 생각이 없었다. 보통 떠올리는 집의 구조를 깨버리고 싶었기 때문에 소파 자리엔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티비자리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있고 싶은(편안하게 반쯤은 누워앉을 수 있는 그) 숨은 니즈가 사람을 침대로 향하게 했고, 외로운 테이블은 주인 없이 홀로 어둠 속에 놓여져 있을 때가 많았다. 소파가 없으니 사람이 침대로 가는구나. 테이블도 테이블 나름의 쓰임새가 있었지만 소파를 대신할 수는 없구나. 그 뒤 레이스 문양이 있었던 남색 소파가 들어왔고, 어느 순간 하얀 무광 책상이 생기면서 자리가 무색한 테이블은 시골 어딘가로 보내졌다. 난 남색 소파에 모서리 자리에 몸을 반쯤 뉘여 책을 읽었고, 남색 소파 끝 손잡이 부분을 베개삼아 티비를 ..
*화 1. 아무리 누구 탓이라고 돌려봐도 결국 내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파트너가 일을 못하는 것도, 결국 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불어 의사소통 또한 문제 중 하나라는 느낌이 들어서 스스로 답답했다. 내가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했다면 이것보다 잘했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만약 저 사람이 한국인이라면 더 결과물이 나아졌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그 생각 끝엔 내가 결국 원인을 다른 것으로 돌리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더욱 자괴감이 들었다. 그냥 내가 다 잘하면 될 일이였잖아. 누구 탓할 필요 없잖아. 그렇게 결론을 내 버리니 흥이 떨어졌다. 재미가 없었다. 흥미롭지 않았다. 주변은 모두 그대로인데, 마음을 엇나가게 먹어버리니 모든 게..
*거울 1. 립스틱을 자주 덧바르는 내게 거울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소지품이다. 주로 가지고 다니는 가방 두세 개에 거울을 각각 미리 넣어두니 가방을 옮길 때마다 거울까지 모조리 옮기지 않아도 되어서 편하다. 예전에 친구가 자기는 가방마다 립스틱 하나씩 넣고 다닌다는 소리에 나도 응용해봤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해. 2. 내가 좋아하는 류의 캐릭터들이 있다. 딱히 뭐라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나와 꽤 오래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어떤 캐릭터가 나오면(특히 스티커나 이모티콘) '저건 딱 네 스타일'이라고 딱 말할 수 있을 만큼 취향이 확고하다. 하지만 내 취향이 아닌 스티커를 동생이 줬다. 동생은 나름 큰마음 먹고 준건데, (나와 동생은 언제부턴가-아마 20대 후반? 스티커를 애정한다) 사실 내 타입의 캐..
*사이즈 1. 요즘 거의 매주 나이키에 얼굴도장을 찍는다. 나이키(를 내가 제일 좋아하기 때문에)에서 테니스화를 사려고 보니 내가 가는 매장마다 전부 테니스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테니스에 관련한 나이키 의류, 신발은 다 온라인으로만 구매할 수 있다는 맥 빠지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처음엔 테니스화와 일반 운동화 차이가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어서 검색도 해보고 코치님한테도 물어봤었다. 결론은 (사실 옷보다) 더 테니스화가 필요할 것 같아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는데 찾는 것도 쉽지 않고, 실제로 보는 것도 쉽지 않고, 신어보는 것은 더더욱 하늘의 별따기다. 마지막 보루는 서울 낙원상가처럼 말레이시아에도 테니스 낙원상가 느낌의 쇼핑센터가 있다고 해서 나중에 시간되면 그 곳에 가볼 예정이다...
*병아리 1. 나의 병아리(1) 어언 12년 전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이것저것 관심있어하고, 넘치는 에너지를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모든 것들을 흥미로워 하는 내게, 하루는 친구Y가 하나의 사진을 보내줬다. 바로 병아리 뒷모습. 그냥 뒷모습도 아니다. 병아리가 열심히 뛰어다니는 뒷모습이다. 마치 나라고. 그냥 그 병아리를 보면 나같다고 했다. 작은데 걸음은 꽤 빠르고 여기저기 잘 쏘다니는게 꼭 나같다고 하면서 말이다. 쫑쫑거리며 돌아다니는 그 에너지를 요즘은 그 친구에게 주고싶다.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그 에너지가 양분이 되어 친구가 활짝 필 수 있도록 말이다. 여전히 어여쁘게. 앞으로도 어여쁘게. 2. 나의 병아리(2) 내 가방 속에는 항상 병아리가 들어있다. ..
*자격 1. 그놈의 자격. 내게 뭐라고 할 자격이 있다면 곧이 곧대로 듣지 않을 자격도 있다. 2. 마음대로 연락할 자격이 있다면 마음대로 대답하지 않을 자격도 있다. 3. 그 신발은 싫다고 몇번을 말해도 눈치를 못채고 있는 건지, 눈치가 없는 척을 하는 건지. 말하다보면 말하면서 기분이 나쁜 내가 싫어서 이내 입을 다문다.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doranproject http://..
*얼룩 1.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벽증이다. 내 블라우스 소매가 책상에 닿는 것. 내 하루에 대부분은 키보드를 칠 일이 많은데, 그때 내 옷 팔 소매가 책상에 닿는 것이 너무 싫다. 닿지 않게 하려는 강박이 있다. 그래서 위에 무조건 사무실용 긴 소매 겉옷을 입거나 팔만 끼우고 키보드를 친다. 손목을 아예 들고 칠 수는 없으니. 그 향수를 뿌린 팔목 안쪽이 어딘가에 닿는 게 너무 싫다. 소매가 짧은 옷을 입어서 팔목이 그대로 드러나 차가운 책상에 닿는 것이 싫고, 긴 소매 옷을 입더라도, 그 긴 옷조차 닿는게 싫다. 그렇다고 내 책상은 항상 닦아서 먼지 한 톨 없을 텐데, 그래도 싫다. 에어컨이 추워 가져다놓은 사무실용 옷은 내 팔목과 그날 입은 내 긴 옷소매를 지켜주는 데에도 쓰인다. 언제부터 생겼는지 ..
*구겨지다 1. 다림질을 못하겠다. 어떤 블라우스를 세탁기에 빨면 매우 쉽게 구겨지는 원단을 가졌던데. 다림질 그게 뭐 어렵냐 하겠지만 내겐 어려워.. 그래서 구겨진 블라우스 3-4개를 집 앞 세탁소에 맡겼다. 세탁도 필요 없고 그냥 다려달라고만 했는데 다행히 다려준다고 했다. 세탁소 직원이 나보고 옷걸이가 필요하냐고 묻길래 집에 옷걸이 많으니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게 큰 실수였다. 약속한 날 블라우스들을 찾으러 가보니 곱게 다려진 블라우스들이 큰 세탁 봉투 안에 접혀져서 (^^) 밀봉이 되어있었다. 집에 와서 밀봉된 봉투를 뜯어 블라우스를 꺼내었더니 역시.. 몸통 부분은 접혀진 모양대로, 팔 부분들은 또 다른 모양대로 구겨져있었다. 헤헤. 난 왜 세탁소에 다림질을 맡긴 걸까. 쉽게 구겨지는 원단을 가진..
*침대 1. 사실 그 침대에 누워본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부모님은 내 침대를 정돈하신다. 철마다 이불을 바꾸고, 동생 전기장판 바꿀 때 내 침대에 있는 전기장판도 덩달아 바뀐다. 2.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만 사실 모르는 것이 약일 때가 훨씬 쉽기도 하고, 많기도 하다. 아는 것이 힘이 될 땐 정말 엄청 많은 것을 알아야 힘이 되는데, 모르는 것이 약이 될 땐 조금만 몰라도, 저것만 몰라도, 이 사실만 몰라도 약이 될 때가 많다. 3. 침대의 사이즈가 어떻든 내 몸 하나 뉘일 수 있으면 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싱글이면 충분) 근데 퀸사이즈, 킹사이즈를 쓰다보니 큰 사이즈가 좋긴 좋네.. 4. 어느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미처 묶은 머리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누워버려서 머리가 배겼다지. 그래서..
*자취 20대가 되면 한 번 쯤은 자취에 대한 로망,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로망, 독립에 대한 로망이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내겐 그런 로망이 전혀 없었다. 학창시절 내내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나 처음 밖에서 살 게 된 건, 21살때 여름학기가 끝나자마자 춘천에 가서 디자이너언니랑 같이 살게 되었을 때였다. 작은 원룸이나 투룸이 아닌 일반 아파트에서 살았고, 온전하게 혼자만 사는 게 아니였기 때문에, 딱히 자취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집이 아닌 곳에서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공간 정도로만 생각되었던 그 곳은 어떤 가구를 사다 들여놓거나, 집을 꾸미고 싶다는 욕구가 조금도 없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서 직장 주변에 처음으로 원룸을 얻었을 때도, 정말 실용적인 용도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