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증 궁금했다. 마음이 궁금했다.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힘을 얻고 싶었다. 우린 계속 함께하고 싶어하고, 그러려고 노력하는 와중이니, 과정에 있어 더 많은 동기를 부여하고 싶었다. 듣고 싶었다. 너의 인생에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삶에 있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냥 너의 진심을. 좋아하다, 사랑한다, 따위의 말들 말고, 네가 생각하는 나를. 삭막한 세상에서, 숨이 막히는 세상에서, 사랑을 받고 있구나, 애정어린 시선이 있구나,를 느끼고 싶었다. 반가운 마음에 , 그 마음들이 반가워서, 먼저 그 마음들을 아는 체 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기뻐하며 했던 이야기는, 영문모를 비꼬음으로 다가갔고, 그렇게 들렸다는 너는 내게 바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고, 네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바닥 1. - 사랑은 너무나도 현실인 것이라, 무얼 바라기도, 무얼 요구하기도, 무얼 원할 수도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내뱉기에는 무색해진 단어이고, 사랑이라는 것은, 표현하기에는 내게 서먹한 감정이고, 사랑이라는 것은, 이제 표현받기엔 이리저리 겉을 떠도는 마음갈피들을 잡을 힘조차 부족한 감정이다. 자존심은 사랑을 무심하게 스치고, 자존심은 사랑이라는 것을 마치 까맣게 잊은 것마냥 거리낌없이 내세워지고, 자존심은 사랑에게 한 톨의 배려도 용납하지 못하고, 이기심은 사랑을 비웃듯 무시하고, 현실은 사랑이 존재하고 있는지, 그조차 모르게 한다. 그 어느 곳에도 로맨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2. - 그는 쿨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였다. 그는 그냥 내게 무심했던 것이였다. 그는 내게 관심..
*택배 1. 죄책감 집 앞 복도 끝에 있는 보일러실 문을 열었다. 그곳은 타칭 택배함으로 이 건물 택배는 층마다 있는 보일러실에 배달된다. 우리집 호수가 매직으로 크게 쓰여져 있는 택배상자가 두 개 있었다. 두 상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하나는 저번주에 주문한 블라우스였고, 또 하나는.... 피크닉 세트? 난 피크닉 세트를 시킨 적이 없다. 오늘따라 택배 상자를 바로 칼로 뜯지 않고 무심코 택배 상자 겉에 쓰여져 있는 내용물을 읽어본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소를 확인해봤다. 옆옆집 택배였다. 어떻게 된건가 생각해보니, 택배 아저씨가 깨알같이 작은 폰트 사이즈로 붙어있는 주소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배달하기 위해 매직으로 호수를 크게 써 놓은 곳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주소 스티커에는 옆옆집이였는데, ..
*잊지말아요 1. 나의 과거 그 때의 나는 무엇이 옳은건지, 그른건지 판단하는 것을 하지 않았다. 지금 현재 내가 숨쉬며 살고 있는 것이 제일 중요했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곧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누굴 만나고 재미있었고, 어떤 것들을 해도 즐거웠으며, 추운 겨울 밤에 밖에 나가 낯선 동네를 달리는 일조차 흥겨웠다. 그 당시의 우리들은 거의 24시간 중 자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들을 함께 하였고, 이런 것이 바로 최고의 팀웍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 잘 맞았다. 서로 이해관계를 절대 따지지 않았으며, 거의 세 명의 돈이 공공재였으며, 누군가 무엇을 제안하면, 호불호와는 별개로 모두들 기뻐하며 함께했다. 모두가 바라보는 그림은 하나였(겠지)으며, 그렇게 될 것이라고 반드시 믿었다. 하루하루 나쁜 일이 없..
*문턱 1. 슈퍼 안으로 날아들어간 사람 조금 더 싼 가격을 찾아 헤매던 한 여자애는 길가에서 허름하지만 작은 두 가게정도를 합쳐놓은 것만 같은 슈퍼를 찾았고, 저 슈퍼에는 마치 찾던 물건이 합리적인 가격에 있을 것만 같아 씩씩한 발걸음으로 슈퍼에 도착했고, 미처 보지 못한 슈퍼 입구의 높은 문턱에 걸려 슈퍼 안으로 거의 날아들어가게 되었다. 슈퍼입구를 기준으로 오른쪽 카운터에는 주인 할아버지가 앉아있었고, 슈퍼입구를 기준으로 왼쪽 난로가에는 주인 할아버지 친구가 앉아있었다. 정확히 두 할아버지의 중간에 갑자기 어떤 여자애가 날아서 비련의 여주인공마냥 착지했으며, 그 두 할아버지는 너무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며 벌떡 일어났다. 그 여자애는 사실 많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두 할아버지의 리액션에 덩달아 놀라..
*먼지 1. 달리기 요 근래 5km 달리기를 종종 하고 있는데 미세먼지가 사라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미세먼지가 많았을 적에 항상 아침마다 일기예보를 보고, 미세먼지 지수를 확인하며, 아쉬움에 통탄을 금치 못했는데. 달릴 때 아이폰 기본 이어폰을 꽂고 달리는데, 팔을 흔들면서 달리면 이어폰 줄이 당겨져서 귀에서 자꾸 빠졌다. 그게 엄청 신경쓰여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샀다. 완전 신세계다! 진작에 안사고 뭐했지. 암밴드도 사고 싶은데, 직접 끼워보고 사고 싶어서 아직 안샀다. 하루는 달리는데, 3km정도 뛰었나. 근데 갑자기 오른쪽 옆구리가 땡겼다. '분명 저녁먹고 한 시간 30분정도 지나고 나왔는데, 아직 소화가 덜 되서 그런가?' '이대로 가다간 속도가 떨어질 것 같은데 그냥 그만 뛸까?' '그래도..
*아이 1. 올 여름엔 옥동자 3년 전 여름엔 쿠앤크를 너무 좋아해서 하루에도 2~3개씩 먹었다. 2년 전 여름엔 와일드바디를 너무 좋아해서 하루에도 2~3개씩 먹었다. 올해 여름에는 우리집 냉동실에 옥동자가 항상 구비되어 있다. 집 근처 마트에서 마침 아이스크림을 엄청 싸게 팔고 있어서 냉동실에 아이스크림이 떨어지기 무섭게 마트에서 한가득 사온다. 어떤 주말에는 눈을 뜨면 물 대신 아이스크림을 먼저 꺼내 먹는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적에도 그랬었는데, 잠에서 채 깨지 않아 눈도 반쯤 감겨 있는 상태에서 쇼파에 기대어 아이스크림을 먹는 내 모습을 보고 아빠는 애들같다며, 아침부터 눈뜨자마자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어딨냐며, 나를 놀렸다. 이상하게도 작년 여름에는 아이스크림 생각이 잘 나진 않았다. 이유는..
*잘한걸까 1. 사이 속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것이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었는데, 갈등의 불씨를 더 크게 만드는 기름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속마음의 표현은 행복함과 동시에 불만을 낳았다. 드디어 우리는 서로 잘 지내는 법을 터득했다. 속마음이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10번 중 9번은 으르렁대며 날카로운 송곳니와 사나운 발톱을 드러내고 할퀴기 바빴던 우리는, 적당한 거리와 서로에 대한 적당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는 평정한 시간들을 찾았다. 약간인지는 모를 아쉬움과 서운함이 전제가 깔리기는 했지만, 썩 나쁘진 않은 전제였다. 서로 바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냉랭하지도 않는 관계를 만들었고, 관계가 되었고, 관계가 되어버렸다. 2. 겹벚꽃 누군가 내게 모든 사람에게는 결이 있다고 말했다. 누..
*거리 1. 숙제 종종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마치 '패잔병 같은 감정'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기분을 처음 느껴 본 시점이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수 천 가지 감정들을 겪어 본 것 같지만, 아직 내게는 겪어보지 않은 많은 감정들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근래에 느낀 감정들은 대부분은 부정적인 감정들이였으며, 뭔가 해야 할 일을 안한 것 같은 그런 찝찝함과, 습기가 빠지지 않고, 서늘하고, 눅눅한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의 감정들이였다. 그 중 '패잔병 같은 감정'은 아무리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뛰어도 거대한 무언가가, 또는 너무 많은 무언가가 내 앞에 우뚝 서 있어 숨이 막히는 듯 하면서도, 이제 그만해도 괜찮다고 하지만, 아직도 내가 해야 할 당위적인 성격을..
*그늘 1. 순간의 고충 5월, 집에 꺼두었던 보일러를 한 달 만에 다시 켰다. 우리집은 알고보니 (2월에 이사를 왔는데, 그 당시엔 추워서 햇볕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2층에다가 일단 창문은 벽 한 면의 3/5는 차지할 정도로 크게 있기에 환기는 할 수 있겠거니 하며 그냥 계약했다) 볕이 직접적으로 들지 않는 집이였다. 3월, 4월을 지나 5월이 되었는데, 빨래가 뽀송뽀송하게 마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겨울에는 보일러를 항상 켜 두어서 빨래가 어떻게 마르든 빳빳하게 마르긴 했었고, 4월이 되자 보일러를 껐지만 따땃한 날씨에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 그럭저럭 빨래가 말랐다. 하지만 5월이 되고 미세먼지가 거세져서 창문을 꼭꼭 닫고 있으니, 방 안에 습기가 높아지고, 빨래는 뽀송뽀송해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