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것들1. 우스운 행로 아이폰으로 지도를 켰다. 목적지를 설정하고, 현재 위치와 아이폰을 사방으로 돌리며 가야 할 방향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몇 걸음 간 후 확인, 서너 군데 가게를 지나서 또 확인. 커브길이 많은데 왼쪽으로 꺾어야 하는지, 오른쪽으로 꺾어야 하는지 정말 여러 번 확인하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습게도 목적지에 도착하자 괜히 정이 가지 않았다. 사실 굳이 목적지는 그 곳이 아니여도 상관이 없었고, 가장 중요한 건 변덕을 부린 내 마음이였다. 그래서 원래 정이 붙어있는 목적지로 발길을 돌렸다. 몇 십번은 가던 곳인데, 출발지가 항상 출발하던 곳과는 반대방향이였다. 감으로 그 목적지를 향했다. 두 블럭쯤 갔을까.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머릿 속 지도가 뒤엉켰다. 바보. 다시 아이폰을 ..
*여유 1.저녁을 먹고 가볍게 산책하는 것,소중한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일주일에 한 번쯤은 좋아하는 장소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것,멋있는 등산복, 등산신발이 없어도 편한 옷을 입고 등산하는 것,휴일아침에 조금 부지런을 떨고 일찍 일어나서 맛있는 브런치를 (해)먹는 것,중고서점을 찾아가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사서 자기 전 시간을 그 책으로 장식하는 것,나와는 다르고 좋아하지 않는 방식의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 그대로를 이해해보려고 하는 것,진심을 다해 응원해주는 것,지난 날을 되돌아 보는 것,딱히 좋은 일은 없어도 무표정을 일관하기 보다는 환하게 웃는 것.꼭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도 부릴 수 있는 여유는 많다. 2.마음의 여유는 결국 자신이 만드는 것. 3.마음이 ..
*빙수 1.그래도 명절이라고,잊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연락이 종종 온다. "우리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열심히 살자" 이번 추석때 내가 받은 메세지다.이런 이야기를 내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2.올 여름, 생각보다 빙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목이 마르다, 이가 시리다, 맛이 없다,그런 이에게 흔쾌히 빙수를 건네보았다가 퇴짜를 맞거나,마지못한 승락을 얻었다.그리고 빙수의 60%이상의 몫을 내가 해치워야 했다.단지 상대보다 빙수를 더 좋아한다는 이유로.단지 상대에게 빙수를 건넸다는 이유로.그 이후엔 먼저 빙수를 먹자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3.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추억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어떤 변명도 할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죄책감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안함이 나를 ..
1.언제였더라,가방 속에 손을 넣어보면 조용하게 자리를 차지하던 편지가 있었고,지갑을 열어보아도 꼬깃꼬깃 접은 편지가 있었다.어릴 때 보물찾기를 하다가 상품이 적힌 쪽지를 발견하듯이,서랍 깊숙이 잠자고 있던, 그동안 잊고 지냈던 귀걸이를 발견하듯이,의도치 않게 편지를 발견할 때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엄청 기쁘고 설레는 마음을 꾹꾹 참아내며,편지를 발견한 짜릿함을 조금 더 느끼고자 몇 초 전, 몇 분 전, 편지를 발견한 순간을 다시금 새기고자,고이 접혀진 종이를 쉬이 펴보지도 못했었다.그리고 나서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편지를 읽어내려갔다.원래 글을 읽는 속도가 빠르고, 성격이 급하여, 빨리 읽어내려가고 싶은 눈길을자제하고, 자제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놓칠새라 소중하게 읽어내려갔던,그런 때가 있었다. ..
*가을냄새 1.커피를 주문한 뒤 책을 펼쳤다.한 장, 한 장, 꼼꼼하게 읽어나갔다.책에는 작가의 삶에 대한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었다.반 정도 읽었을까,점점 읽어나가기가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그렇다고 작가의 삶의 시간들이 불편했던 건 절대 아니다.어떤 이의 파란만장한 삶을 내가 마주칠 때,내가 겪었던, (혹은 겪고 있는) 시간들이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되는 것 같이 느껴졌다.나는 나의 힘든 시간들이 솔직히 아직까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나의 힘듬이 어색하며, 내가 아닌 것 처럼 얼떨떨하며,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 같이 메타자아 속에 항상 있고 싶어 했다.당연한 시간들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데,이 책을 읽으니, 나의 시간들도 당연한 삶의 일부분이라고 느껴지는게,불편했다.그렇게 나는 그 책을 더이..
*열대야 1.올 여름 밤에는 마음놓고 밤거리를 터덜터덜 걸어본 적이 얼마나 되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을 편하게 놓을 수 있었던 날 조차 손에 꼽힌다. 이렇게 올해 여름이 가고 찬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가을이 성큼 왔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여름이 가는게 아쉽다고 매번 지겹도록 이야기를 했다. 좋아하는 계절인 여름이 가면, 높은 하늘의 가을이 야속하리만큼 빨리 지나간다. 그런 사실을 아니까, 더더욱 아쉽다. 선선한 가을 바람을 느끼며 걷다 보니, 내게 오는 계절들을 조금만 더 즐기고 아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솔직히 말하면, 두렵다.상냥함에 두렵고,설렘에 두렵고,두근거림에 두렵고,달콤한 말이 두렵고,익숙함에 두렵고,변함에 두렵다. 3.하늘을 보았다. 양..
*애정 1."난 이미 그때 그 생각은 끝났어"그녀가 말했다.너무나도 정당하고 건전한 그녀의 비판에서운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솔직한 그녀의 모습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으며,당당하게 비판할 줄 아는 그녀의 행동에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그래도, 그래도, 합리화를 하자면,그녀는 내게 애정이 있기에 그런 말을 했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그랬기에 날이 없이 예리한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2.지금까지 살면서,나만의 애정이 가득 담긴 공간들이 몇 있다.애정어린 공간들을,내가 애정하는 사람과 누릴 수 있는 시간들을나는 또 애정한다.반대로 애정하는 사람과 어떤 공간에 가면그 공간에도 애정이 서려 나만의 애정어린 공간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3.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지는 순간이 잦아지고,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있..
*믿음 1.만약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생각하는 코드가 비슷할수록 더 행복하지 않을까.서로에게 하는 애정표현의 방식이 다르더라도,그 애정표현을 듣는 상대방이 애정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마음을 다해 표현하는 그런 애정표현들이 상대방에겐 애정표현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면,참으로 서글픈 대화들이 아닐까. 2."일단 전화올테니 기다려봐."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마음이 울렁거리긴 했지만,사실 진짜 전화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전화 자체가 쉽지 않을 뿐더러,내용 자체도 쉽게 내뱉을 수 없는 내용이기에.아니면, 뭐.냉정하게 내 앞 길을 위해서만 전화를 걸어줄 수도 있을 사람이기에.그래도, 쉽게 할 수는 없을 것이기에 전화따윈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1이 사라지면 다행인 마당에. 3.조마조마하게 날을..
*이사 1.가득한 빛.갈라진 바닥.쌓이지 않은 듯 쌓인듯한 먼지.틈이 있는 방충망.텅 비어있는 것.낯선 길, 동네, 사람들, 가게.공간에 대한 노력.안도감과 혼란스러움의 공존.그리고 마음, 마음, 엇갈린 마음들. 2.낯선 곳은 하루빨리 익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그 낯선 곳이 내가 자주가야하는 곳이라면 더더욱.낯선 곳에 가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혼잡해진다.그래서 방향치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가게, 도로들 등등한 장면이라도 더 내 머릿 속에 넣으려고 애쓴다.나중에 다시 그 곳에 갔을때 기억 속에 한 장면이라도 매치되는 곳이 있다면 마음이 안정된다.그렇게 여러 곳을 눈에 담았다. 3.갈피를 잃었고,갈피를 다시 잡고 싶었다. 4.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할일을 하며,때로는 시시콜콜한 농담도 던..
*어느새 1.야, 죽을래?아 왜~! 전화 받자마자 죽을래라니! 왜 이렇게 연락이 안되는거야, 전화통화하기 참 힘드네미안해 아까 전화하기 힘든 상황이였어. 잘 지내?나야 뭐 그럭저럭 잘 지내지. 원래 얼마 전까지만해도 힘든게 조금 있었는데 이젠 뭐 괜찮아.그래? 왜 힘들었는데! 힘든건 다 해결된거야?아니 뭐 해결된 건 아닌데, 이제 그려러니 하고 있지 뭐. 넌 잘 하고 있냐. 얼마나 성장했는지 궁금해서.나 그냥, 그럭저럭 하고있어. 하하. 다른 무슨 일은 없고? 응 나도 그냥저냥. 요즘 카페하고 싶어서 다시 구상중이야. 너나 나나 머리가 그쪽으로는 핑핑 돌아가잖아. 흐흐. 맞아. 그렇지. 요즘 생각하고 있는 컨셉이 있는데.뭔데뭔데?그냥 보통 카페간다고 하면 엄마가 되게 비싼데를 왜 가냐고 하잖아. 응응.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