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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126.고요

puresmile 2016. 6. 5. 13:22

*고요


1.

지금까지의 나는 감정의 선을 잘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드는 감정이 지나치게 선을 넘어버리면,

넘은 선을 쉽게 잊을 수 없고, 쉽게 그 선을 넘어버릴 수 있기에.

최근에 지금까지 살면서 잘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꼈다.

특히 똑같은 '화'가 나더라도,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실로 다양했다.

동시에 내가 지금껏 '화'라는 감정을 다채롭게 느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대한 '화'를 내지 않으려고 했고,

'화'가 내 자신을 감싸지 않게 노력했었다.

하지만 '화'를 영원히 피할 수는 없었기에.

다양한 '화'들이 나를 지나칠 때마다, 그 '화'를 표출하지 못했다.

그냥 당황스러웠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내 자신에게 당황했다.

어떻게 이야기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하나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과거에 동일한 감정이 들었을 때가 없었기에,

과거에 행동했던 것들을 참고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당황만 한 채 '화'를 떠나보냈다.

오히려 뒤돌아보면 이렇게 '화'를 떠나보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내게 지금껏 느끼지 못한 어떤 감정들이 또 다가올까.

그 감정들을 맞닥뜨리며 당황하는 내 자신의 모습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이런 새로운 감정들을 하나하나 받아들이면서 성숙해지는 걸까.

감정의 선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이 때론 내게 독으로 다가올 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시발점을 내가 스스로 막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느낀 건,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들이, 어휘들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나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유쾌하진 않지만 흥미로운 숙제다.


2.

버스에 올랐고, 자리에 앉았다.

아이폰을 꺼냈고, 잠금화면에서 음악 앱의 정지 버튼을 눌렀다.

혼자 밖에서 있을 때는 무조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데,

듣기 싫어졌다. 

이어폰에서 내가 싫어하는 노래가 나와서도 아니며,

장시간 이어폰을 낀 내 귀가 아파서도 아니였다.

이것은 그냥 권태였다.

당연한 것에 대한 권태.

그렇게 나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이어폰을 끼고,

시선의 초점을 흐렸다.


3.

'영원한 상냥함과 다정함의 태도'라니.

엄청난 문장이다.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너무나도 이상적이며, 환상적인 표현이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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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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