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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249.홀릭

puresmile 2018. 10. 14. 21:42

*홀릭

그래 어쩌면 너같이 변하지 않는 물건들에게 빠져버린다면 오히려 덜 상처 받겠다.
물론 생명이 아닌 것들과는 비교할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여전히 생각은 들지만.


난 사실 물건에게 그다지 미련이 없어.
뭐, 받은 편지, 선물, 의미있는 책 등은 물론 내게 소중하지만 말야.
언제부터 미련이 없어졌나 생각해보면,
고등학교때, 그것도 대학교 첫 수시를 보러가는 아주 중요한 날 아침에,
잠깐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누가 교실에 들어와서 내 가방 안에서 지갑을 훔쳐갔던 것 같아.
내가 학교에 오려고 버스에서 내렸던 그 사이까지만해도 지갑이 있었으니 말이야.
내가 교문에서 교실로 걸어오는 중간에 떨어트렸을 가능성은 엄청 낮은 것 같고.
더구나 그 지갑은 내가 처음으로 가졌던 명품지갑이였다?
엄마가 해외여행 다녀오면서 사준 지갑이였어.
사실 우리 엄마가 명품을 딸에게 덥썩 내미는 사람은 아니지만,
동남아 길거리에서 SSS급으로 사왔을지도 모르지만,
엄마가 명품이라고 하며 자신있게 내미는 지갑이였지.
그 안에 카드들이나, 현금 3만원이나, 뭐 그 따위들은 다 훔쳐가도 좋았어.
근데 그 지갑이 괜히 너무 아쉽고 아쉬운거야.
근데 어쩌겠어.
내가 엄청 아쉬워해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속으로는 '제발 안에 내용물은 모두 없어도 좋으니 지갑만큼은 다시 돌려줬으면.'이라고 바랐지만,
그게 어디 마음처럼 되는 것도 아니고.
그때부터였던것 같아.
물건에 정을 붙여도, 그 물건은 닳기 마련이고, 어느날 잃어버릴 수도, 고장날 수도 있잖아.
그때마다 내가 내 아쉬움을 견디지 못할 것 같은거야.
그래서 난 별로 물건에 미련이 많이 없는 편이야.

넌 그것들이 너의 인생의 낙이라고 내게 말했지.
그래. 저마다 가치가 다를 수 있으니. 이해해. 
하지만 그 말들이 반복되고, 반복될수록,
나도모르게 조금씩 소외감까진 아니지만 뭔가 비스무리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
솔직히 말하면 너의 낙은 내가 되었으면, 했거든.
내가 너의 삶 어떤 부분의 기폭제가 되었으면 했고, 빛이 되었으면 했고, 기분좋은 산들바람이 되었으면 했거든.
하지만 나와 함께 있을땐 별로 즐거워 보이지 않는 널 보면서,
그다지 내게 큰 미련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널 보면서,
나는 너에게 그다지 소중하고 아끼는 존재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아무 말도 못하고, (그래서 네가 더 좋아할지도) 물건들따위에게 지극한 정성을 주는 마음이 더 소중한 너에게.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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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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