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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353.그날의 분위기

puresmile 2020. 10. 11. 21:04

*그날의 분위기

1.
입김이 호호 나오는 날에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짧은 치마에 기모도 아닌 얇디얇은 스타킹 하나 겨우 신고
그래도 배는 시렵다고 끈나시 덧대입고
그 위엔 (치마 속에 넣어 입기 위해 절대 두껍지 않은) 목티를 입고
울 몇 프로가 섞였는지도 잘 모르겠는 자켓 입고
이제는 하도 신어서 아픈 줄도 모르는 높은 힐을 신고
깔깔거리면서 누굴 만나는 지도 모르는 채 밤거리를 돌아다니던 겨울이 있었다.

2.
밤 9시 정도였으려나. 
홍대역에서 내려서 밖으로 나왔는데 눈과 비가 섞여서 내리고 있었다.
미리 준비한 우산을 폈고 약속장소를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내 우산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
놀라서 옆을 보니 어떤 남자애였다.
죄송하다며 능청스럽게 우산이 없다고 떠들던 남자애는
나보고 자기 약속장소를 말하며 거기까지만 데려다달라고 했다.
우산이 없다면서.
걔가 말했던 약속장소는 내가 가는 길이긴 해서
내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일단 걷자고 말하며 우산을 같이 쓰고 걸었다.
정말 5~7분도 안되는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 몇 마디를 나눴는데
알고보니 걘 나랑 동갑이였고, 자기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었다. 
걷다보니 걔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잘가라고 인사해줬다. 
그러자 걔가 나중에 고맙다고 커피를 산다며 번호를 물어봤다.
근데 웃긴게, 내가 전혀 호감있던 모습은 아니여서 그랬는지,
(하얗고 마른 남자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리고 동갑이라서 뭔가 대학동기느낌이 있어서 그랬는진 몰라도
진짜 친구처럼 호탕하게 웃으며 별 생각없이 번호를 알려주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 이후 걘 나랑 정말 따로 만나서 커피를 샀고 몇 년 가진 못했지만 정말 친구가 되었었다.
걘 지금은 결혼을 한 것 같다. (어느날 본 메신저 프사가 신부랑 찍은 결혼사진이였다)

3.
난 너에게 너무 생각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한다고 말했고,
또 그런 네 모습에 너무 답답했었는데.
그런 모습을 짧지 않게 보다보니 어느새 내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더라고.
예전 같으면 그냥 별 생각 없이 했었던 일들도
괜히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어버렸더라고.
근데 이젠 조금은 다시 내려놓으려고해.
나는 너처럼 그렇게 답답하게 살지 않을꺼야.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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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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