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

1.
할아버지, 할머니랑 삼촌들이랑 부모님이랑 다 같이 살았던 어릴 땐 30대였던 삼촌들만 봐도 되게 어른같이 보였는데 (같은 30대였던 부모님은 뭐 말도 못 하게 어른이었고) 사실 어른같이 보인다는 게 뭐든 스스로 옳은 결정을 할 수 있고, 뭐든 다 잘 해낼 수 있고, 조카들 피자 사줄 정도로 돈도 많이 벌고, 정말 누구보다도 의젓하고, 올바른 일들만 할 줄 알았는데. 삼촌들이 (부모님을 제외하고) 내가 어렸을 때 가장 가까이했었던 유일한 30대들이었다. 특히 둘째 삼촌은 약간 유오성(얼굴형과 까무잡잡함이 닮았다)의 매우 매우 순한 버전처럼 생겼는데, 항상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먼저 하고, 일도 궂은일을 많이 했었고, 아무리 피곤해도 조카앞에서는 항상 묵묵하게 웃는 얼굴을 많이 보여줬던 기억이 난다. 내가 둘째 삼촌의 인생 첫 조카라서 많이 서툴렀지만 퇴근 후 피곤해도 가끔씩 집 주변 피자집에 데리고 나가서 피자도 사주고, 슈퍼에 데려가서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멋진 어른이였다. 어릴 때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 중 하나는 '나중에 돈벌면 삼촌한테 용돈줄꺼야'라고 했던 것 같다. 그만큼 둘째 삼촌에게 마음이 많이 갔다. 나도 나이가 들면 삼촌처럼 멋진 어른이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30대였던 막내삼촌과 둘째 삼촌이 서로 (매우) 다르듯, 나 포함해서 내 주변 30대들만 봐도 다름이 극명했다. 둘째 삼촌 같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2.
며칠 전 엄마가 가족 채팅방에 사진들을 잔뜩 보냈다.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바로... 아빠가 팩게임을 하는 모습!!!!! 초등학교 때 카세트로 핑클 노래를 들으면서 팩게임기로 테트리스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가끔 박화요비 LIE도 나왔다) 그런 팩게임을 창고에서 아빠가 다시 찾았다! 그 당시 아빠도 아주 가끔씩 방에 들어와선 갤러그를 아주 고수처럼 했었는데, (날파리 같은 우주선들을 한 마리도 놓치지 않겠다는 아빠의 신들린 컨트롤은 절대 잊지 못한다) 약 20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갤러그를 하다니! 아빠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모두 저장했다. 그때보다 눈이 더 나빠져서 돋보기안경 쓰고 하는 아빠의 모습이 아주 예술이다. 엄마는 깨알같이 '예전에 연희가 게임했던거 생각난다..'라며 괜시리 마음 짠하게 만들고. 나중에 한국가면 팩게임 나도 다시 해봐야지!! 여기에 핑클 Special 앨범까지 들으면 진짜 2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 것 같아.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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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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