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능한

생각보다 별로 의미를 두지 않거나 아끼지 않았던 것들이 의외로 내 곁에 오래 남아있다. 4년 전에 가산에서 산 러닝화가 그중 하나다. 디자인 면에선 전혀 생각하지 않고 가볍고 발이 편하고, 말 그대로 러닝에만 초점을 두고 샀다. 심지어 나이키 아울렛이라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5만 원도 안 했던 것 같아. 모든 신발이 그렇듯 막상 처음 살 때 샵에서 사이즈가 잘 마나 신어보는 것과 직접 신고 걷고 뛸 때와는 확연히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제발 잘 맞길 바라는 마음으로 처음 러닝 하러 나왔었다. 특히 나는 여름에도 겨울에도 10cm 이상 되는 하이힐을 신어서 늘 발톱이 성하지 않을 때가 많아서 더 걱정이 됐다. 근데 이 운동화는 아무리 뛰어도 발톱이 아프지 않고, 발의 어떤 부분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이 운동화를 신고 친구와 함께 매주 수요일 밤마다 안양천을 뛰었고, 뚝섬에서 열린 나이트 레이스에 나가서 당시 늘 자전거 탈 때 팔당가면서 지나쳤던 천호대교 아래를 뛰었고, 처음으로 동생과 같이 참여한 상암 마라톤에서도 무사히 완주했고, 심지어 이 운동화를 뉴욕까지 가져가서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마라톤에서도 신고 뛰었다. 작년에 말레이시아 올 때도 들고 왔다. 캐리어에 큰 부분을 차지하더라도 이 운동화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막상 말레이시아 와보니 동남아라고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굉장히 선선하고 항상 여름 날씨라 비만 오지 않는다면 러닝하기 최적화된 동네였다. 물론 아직 한국보단 도로 같은 인프라가 부족하긴 해서 갑자기 인도가 끊긴다거나, 비포장도로나 도로가 깨져있는 곳도 많이 보이는데, 운 좋게도 내가 사는 동네는 평지이고, 아침 저녁으로 사람들이 러닝 하는 코스가 있어서 마음 놓고 러닝 할 수 있다. 

여기선 1년 내내 진짜 마음껏 뛸 수 있겠다 싶어서 지난번에 큰 맘먹고 나이키에서 내 생애 가장 비싼 러닝화를 사봤는데, 역시 구관이 명관이다. 아무리 신고 뛰어도 원래 내 오래된 러닝화 만한 게 없네. 아직 내가 가지고 있는 운동화 중 이 러닝화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없지만 혹시나 이 러닝화가 달리다가 찢어지거나, 오래돼서 닳아버릴까 봐 이 운동화처럼 편한 또 다른 러닝화를 찾고 싶은 마음은 있다. 말레이시아 MCO만 풀리면 브룩스를 가장 먼저 가봐야지.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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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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