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1.
완벽한 계획이랍시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계획 속에 날 제멋대로 넣어두고,
왜 자신의 계획대로 하지 않느냐며,
되려 뭐라고 하는 그런 멋없는 사람들.
나와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이야기 해 본 적은 있는지.
내게 제대로 물어본 적이나 있는지.
(사실 어차피 나한테 물어봤자 내가 거절할 것은 뻔했겠지만..)
이상하게, 
누군가의 계획 속 나는 낯설다.
꼭,
이 책 다 읽고 방청소 하려고 하는데 
엄마가 들어와서 방청소하라고 잔소리하면 하기 싫은 것처럼.

2.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하기.
누군가 떠오른다면 바로 연락해보기.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꼭 초콜릿 사가기.
이번 주말에는 로컬 친구들과 저녁 먹기.
눈여겨봤던 카페 가기.
새벽에 일어나서 세수와 양치만 한 후 머리 질끈 묶고 러닝하기.
다음날엔 회사에 한라봉차 가져가기.
뭐 그냥 이런 소소한 것들만 잘 지켜도 충분하다.
크고 길게 보면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으니 말이다.
오늘 누가 내 곁을 떠날지도 모르고
누군가가 숨을 놓아버릴지도 모르고
하루아침에 님에서 남이될지도 모르고
혹은 내가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3.
내년 봄엔 뉴욕에 갈 수 있을까.
겹벚꽃이 가득한 뉴욕을 보고싶다.

4.
꼭 다 온 것처럼 보여도
새 길이 생겨.
재밌다고 이해할래.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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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1.
시간 참.
내가 아는 언니는 벌써 40대가 되어서 40대 기념으로 여행을 갔다 왔고
아직도 중학생 같은 동생은 30대가 되었어
30대가 된 동생은 벌써(는 사실 아니지) 결혼(해도 무방한 나이긴 하지) 얘길 꺼내고
가족들은 애지중지 생각하는 동생을 보내기 싫어해
과거에 날 붙잡기 위해 먼 길을 쫓아왔던 한 남자친구는 벌써 애가 둘이고
함께 강의실에서 웃던 귀여운 후배는 브라이덜샤워를 하고 있네
반 년 전 뉴욕에 같이 간 친구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코로나로 얼룩진 뉴욕을 그리워하고 있고
추억은 힘이 없다는 너의 말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들은 잊혀지고
시간이 지나도 그 상처는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네
남는 건 사진 뿐이라는 말은 해가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휘해
저 멀리 메트로폴리탄에서 건너건너 말레이시아까지 온 달력은 힘없이 넘겨지고
그나마 위로가 되는 사실은
앞 날이 지나온 날보다 망망대해 같다는 거야

2.
내 평균 1km당 페이스는 5분하고도 20-50초를 왔다리갔다리하는데
요즘 노래 한 곡에 5분도 되지 않아서 한 곡이 끝나고 두번째 곡이 시작하고도
한참은 들어야 하더라
아침에 출근하면서 듣는 노래는 그렇게 짧을 수가 없고 휙휙 넘어가는데
러닝할때 듣는 노래는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곡 길이도 비슷하고 심지어 비트는 더 빠른데 말이야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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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1.
어느날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은 적당히 마실 만큼 마셨고, 자리를 옮겨 술을 더 마시기 싫었던 여자친구는
남자친구를 블랙잭 할 수 있는 펍에 데려갔다.
평소에 심리전에 강한 편이였던 그 남자친구는 딜러와 심리전에 재미붙이며
블랙잭에 눈을 떴고, 매번 따고 잃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빠져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여자친구와 남자친구는 인연이 다해 헤어졌고,
헤어졌지만 잠시동안 서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친구로 지냈던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는
각자 친구와 그 펍에 갔다가 마주친 적이 몇 번 있었고, 같은 테이블에서 게임을 하고 술을 마셨다.
이후 여자친구와 남자친구는 더이상 친구로 지내지 않을 정도로 등을 돌렸고,
남자친구는 헤어진 여자친구가 소개해준 그 블랙잭 펍을 평일에도 퇴근 후 자주 가곤 했다.
하루는 남자친구가 회사에 입고 오지도 않던 정장을 입고 왔고,
남자친구의 회사 동료는 오늘 무슨 날이냐며, 갑자기 왜 멋있게 입고 출근했냐고 물어봤다.
남자친구는 오늘 자기가 자주 가던 블랙잭 펍에서 블랙잭 대회가 열리는데 거기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한테 꽤 중요한 대회라고 하면서.
그 남자친구는 아주 가끔 헤어진 여자친구의 생각에 잠기긴 하지만 
곧 딜러에게 패를 더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정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로 돌아오고 만다.

2.
가끔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될 때
종이를 작게 오린 후 몇 장 그 곳에 깨알같이 메뉴들을 각각 적어서
보이지 않게 두 번 접은 후 바닥에 던지든, 통에 넣든 잘 섞이게 한 후
하나를 뽑아보자.
근데 그걸 나랑 하면 어차피 뽑은 메뉴는 결국 먹지 않는다는 게 함정.

3.
망설이고 고민될 땐 그냥 하고 말지 뭐.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는 나처럼.

4.
도박을 하고도 운명인 줄 착각하는 사람처럼.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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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마늘빵

1.
케이크 먹고 싶다고 지나가는 말로 말했더니,
어느 날 냉장고에 케이크가 있었고
마른 오징어 먹고 싶다고 지나가는 말로 말했더니,
어느 날 냉동실에 마른 오징어가 있었다.

2.
친구랑 삼거리 빵집에서 마늘빵 산 후에
지금은 사라진 전통카페에 가서
전통차와 함께 먹던 마늘빵도 좋았다.

3.
몇 년 만에 마늘빵이 너무 먹고 싶었던 어느 날,
운동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마트에 갔어.
네 생각이 나서 네가 좋아할 만한 다른 빵들도 잔뜩 집었지. 
이것저것 마구 집어 들다 보니 내 두 손으로 겨우 들 정도가 되었고,
너를 만나러 가는데 넌 마중 한 번 안 나오더라.
혹시나 싶어 내가 빵을 먹고 싶다고, 마트에 가고 있다고,
많이 살 거라고, 별의별 말을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눈치가 없었던 건지, 내가 너무 알아듣게 말하지 못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너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고,
네가 밖을 나오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어서
내심 기대했는데.
마중 한 번 안 나오더라.
그게 아직도 기억이 남네.
네가 마중 나오길 바랐던 날들에
마중 한 번 안 나오는 널 보면서
기대를 접어야 했던 내 마음이.
그 날들이.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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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걱정

1.
인스타 프로필에 쓴 글이 너무 와닿아서
팔로우 한 배우(인줄 사실 몰랐다)가 있다.
그 프로필에는 
'완벽한 계획은 필요없어.해 지금.'라고 적혀있었다.

2.
평소에 있던 걱정도 날려버리고도 남았을 난데,
누구한테 '걱정하는 법'을 조금은 배워버려서
요즘엔 나도모르게 걱정을 하긴 한다.
근데 항상 이렇게 걱정해봤자
해결되지도, 좋아지지도, 나아지지도 않을 거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리고 내가 왜 걱정을 하고 있냐며 나를 나무란다.
배우고 싶지 않은 부분을 배워버려서, 잊고 있는 중이다. 

3.
내 기억 어딘가에 숨어있던 
그 당시 찍은 사진이 내 꿈 속에 나왔어.
심지어 네 사진도 나왔지 뭐야.
맥북 포토부스 필터 중 넙죽이처럼 나오는 필터를 이용해서 찍은 그 사진.
난 진짜 까맣게 잊고 있었거든?
근데 그 우스꽝스러운 사진이 꿈에 나왔더라.
앞으론 다신 웃으며 볼 일이 없을 너와 내가.
아무리 다시 되짚어봐도 
너도 나도 서로 어떤 말을 해도 용서되지 않을 것들을
잔뜩 늘어놓은 주제에 말야.

4.
솔직히 잘 못지낼(길 바랬을지도)줄 알았어.
근데 괜한 기우였지.
어쩌면 나보다 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더라고.
평소 좋아하지도 않던 카페도 자주 가질 않나,
커피와 디저트 같은 건 또 뭐람.
괜한 걱정하던 내가 다 무색해지더라고.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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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소주

정말 기분 좋을때만 하나도 쓰지 않은 술.
불광동에 출장갔을때 불광시장에 있던 옛날 순대국 집으로 
(나머진 원래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이라 나만 잘 모르던) 8명정도가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10월 말이라 쌀쌀했지만 순대국집 안에는 솥에서 육수 끓이는 냄새가 솔솔 나서 그런지 공기가 후끈했고,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서 순대국 냄새를 맡으니 자연스럽게 생각나던 술.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 소곱창집에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목청껏 떠들며 홀짝홀짝 마시던 술.
말레이시아에서는 9천원정도 하는 술.
예전에 아는 선배가 평택역 앞 홍콩반점에서 알려주던 칭쏘비율이
지금까지도 인생비율이 되서 항상 그 비율대로 맥주와 섞어 먹는 술.
신입사원때 우리팀만 야근을 했는데 일이 끝나고 대표가 순대국집에서 한 잔씩 돌리던 (맛없던) 술.
기분이 좋지 않으면 진짜 너무 쓰고, 맛이 없어서 한 모금도 마시기 싫은 술.
우정인 줄 알고 만난 사람과 연남동의 어느 바에 앉아서 토닉과 섞어마셨던 25도정도 되었던 증류수 술.
맥주보다 소주를 더 좋아했던, 그리고 정말 잘 마셨던 예쁘고 귀여운 친구가 생각나는 술.
괜히 빨갛고 얼큰한 국물이나 과자랑은 먹기 싫은 술.
이 술을 굳이 안마셨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 저녁에 4-5년 전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친구랑
학교 앞 삼거리끝 술집에서 새우머리버터구이와 마셨던 술. (청하도 소주라고 하긴 좀 그렇나?)
지금 생각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마시자고 하고 싶은 술.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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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소비

햇빛이 쨍하게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 날엔 꽃무늬 블라우스에 그렇게 꽂혔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내 눈이 가는 꽃무늬란 꽃무늬 블라우스는 사고 또 샀다.
처음에는 7일 내내 다른 옷들을 입어도 될 정도여서 웃겼는데,
어느새 정신차려보니 7일은 무슨.
2주를 입어도 더 남을 정도까지 되어버렸다.
그리고 계절이 지났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회사원이 되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국에 있는 모든 시청이나 구청. 관공서, 공사공단들을 돌아다니게 되었는데,
그때 내 복장은 치마정장이였다.
치마정장에는 꼭 하이힐을 신고 싶었던 내 욕심에 하이힐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직장인이 되니 생각보다 내 시간이 많이 사라져버려서
온라인으로 눈으로만 보고 하이힐을 사버렸더니,
이게 뭐야. 버리는 게 반이였다.
보기엔 라인도 잘빠지고, 너무 예쁜데, 발이 너무 아파 한 번 신고 버린 힐도 있었고,
버리기엔 너무 아까울정도로 예뻐서 억지로 두어번은 더 신고 역시나 버린 힐도 있었다.
예쁜 디자인에 플러스로 편안하게(사실 하이힐에서 편안함을 찾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신고 다니던 힐은 역시나 손에 꼽았다.

옷과 구두들의 쇼핑이 이제 질렸을 때쯤
(몇 년을 반복하다보면 디자인이고, 패턴이고 다 비슷비슷한게 보여서 흥미를 잃는다)
귀걸이로 눈길을 돌렸다.
귀걸이는 마치 야금야금 군것질을 하는 것처럼 생각보다 저렴한 것들도 많았고 
온라인으로 쇼핑을 해도 실패할 확률이 적었다.
부모님이 튼튼하게 낳아주신 덕분에 금이고 은이고 그런 귀걸이말고도
정말 아무 귀걸이나 거뜬히 착용할 수 있는 귀를 가진 것도 한 몫 했다.
그래도 나름의 귀걸이 쇼핑기준은 있어야 하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귀걸이들과 똑같은 모양만 아니라면 사보자, 라는 기준을 정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수만가지 종류의 귀걸이가 있지 않은가.
이건 거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그냥 다 사자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옷은 주변 사람들이 봐도 딱 내 스타일이라고 할 정도로 나만의 스타일이 정해져있었고,
그 틀을 깨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에 반해 귀걸이는
내게 어울리고 안어울리고 생각할 필요없이,
새로운 스타일을 쉽게 도전해 볼 수 있던 것이라 그냥 정말 이쁘면, 새로운 것이면 산 것 같았다.

말레이시아에 와서 다시 또 하이힐 욕심이 도졌다.
여긴 항상 여름이라 앞 코가 막힌 하이힐보다 샌들을 매일 신고 다녔는데,
힐이 높은 샌들을 찾던 와중에 우연히도 기가 막히게 편안한 브랜드를 찾아버려서
주말만 되면 신상이 나왔는지, 내가 못 본 샌들이 있는지 방앗간처럼 그 샵을 찾아갔다.
그리고 쇼핑몰마다 그 브랜드의 샵이 있었는데 샵마다 또 가지고 있는 재고가 달라서 
새로운 디자인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제일 최근에 산 분홍색 힐을 한 번 신고 출근하고 난 후
코로나바이러스가 아시아에 심각하게 확산되어 말레이시아 정부는 락다운을 시행했고,
한 달 내내 힐은 신지도 못하고 맨발로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어느새 락다운은 야금야금 3번째 연장이 되었고, 다행인지불행인지 내 쇼핑은 또다시 멈춰졌다.

그리고 조금씩 온라인 쇼핑을 해봤는데, 역시 택배천국 한국과는 다르게
이곳은 해외직구하는 것마냥 잊을만하면 택배가 오고,
그것도 샵마다 천차만별이여서 일주일은 기본이고, 2-3주 걸리기도 한다.
또한 집에 꼭 있어야 택배를 받을 수 있다. 집에 없으면 다시 가져가버린다.
훙. 이런저런 이유로 흥이 지속되지 않는다.
덕분에 적금통장은 하나 더 늘었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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