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쁨 1. My Favorite Things 햇살이 쨍하게 비추는 날을 사랑해. 나뭇가지에 올망졸망 붙어, 햇살에 비춰 반짝이며 잔잔하게 흩날리는 나뭇잎들을 사랑해. 사각사각 책 넘기는 소리에 맞춰 은근하게 퍼지는 종이의 향을 사랑해.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을 넘기며 마시는 맥주를 사랑해. 그 어떤 어둠도 지니지 않은 듯한 환한 웃음을 사랑해. 따뜻하게 바라보는 애정어린 눈빛을 사랑해. 2. 나에게 한동안 목표없이, 눈동자는 방황하고, 마음은 휘청이고, 시간은 하릴없고. 다시 하나 둘 쌓아가려 마음을 다독인다. 무너진 초석은 다시 쌓으면 그만이다. 하나하나 다시 토닥이고, 토닥여보자. 흔들리는 눈망울이 쉴 수 있는 초점을 주자. 3. 개인의 취향 이사를 하고, 완전한 내 공간에서 살다보니 내 취향을 더 ..
*환기 1. 마음먹은대로, 그렇게 되었으면. 살짝 창문을 열어보았다. 이삿짐을 조금씩 조금씩 많은 먼지가 나지 않게 청소하며, 살살 옮기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먼지가 있을까봐. 창문을 활짝 열자니, 미세먼지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올 것만 같아서 한 뺨도 안되게끔 열어놓았다. 밖엔 사생활보호창(이라고 부동산 아저씨가 그랬다.)이 달려있어서, 바깥 풍경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리 궁금하진 않았다. 이 공간에서 나는 내일을 맞이할 것이다. 이 공간에서 나는 다음 달을 맞이할 것이다. 언제까지 이 공간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공간을 내 채취로 가득 채우며, 또 다른 나를 바라며, 변할 수 있는 나를 바라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가지고 있어도 아무 소용도 없는, 아무 힘도 없는 것들..
*괴물 시도하려고 하면, 두려움이라는 막에 눈 앞에 가려져 멈칫하게 되고, 두렵다, 두렵다, 하면서도 결국 이미 엎질러진 물 마냥 저질러놓고 있으며, 외롭다는 생각에 공허함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주변을 비워놓고, 자꾸만 관계를 복잡하게 얽히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쉽게 풀지 못할 실뭉텅이처럼 인연의 끈을 엉키게 해놓고, 용기있게, 자신있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이어리 첫 번째 장에 매년 써 놓으면서도, 자존감이 종종 낮아지는 건지, 겁을 먹고 있는 건지, 이유모를 소심함에 몸을 부르르 떨게 되고, 조금만 신중해지자, 신중한 결정을 내리자고 해놓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찰나의 고민 끝에 결정하게 되고, 유해지고, 조금만 온화해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서도, 어느 순간 길에서 서식하는 경계심이 ..
*혐오 1. 울렁거렸던 하루 엄마가 소개시켜 준 보험설계사 아줌마를 만나는 날이 되었다. 보험에 무지한 나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보험에 대해서 열심히 캐물었다. 도대체 보험은 왜 드는 것이며, 내가 들고자 하는 연금보험은 어떤 것이며, 무슨 혜택이 있는 건지, 언제부터 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손해를 본다면 그 손해는 무엇인지. 이렇게 캐 묻다보니, 문득, 도대체 왜 이렇게 수 백 가지, 수 천 가지가 되는 보험 종류가 생겨난 것이며, 사람들은 왜 보험사에 매달 열심히 돈을 내고 있는 것이며, 보험사는 왜 망하지 않는 것이며, (또는 왜 망하는 것이며), 보험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며,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이 보험을 20년 만기로 들면, 나는 80세까지 살게..
*상상 1. 대화 조금만 내게 귀를 기울이면 많은 소리들이 들린다. 내 두 발이 말했다. 하이힐이 그렇게 좋냐고. 내가 소리지르는 건 들리지 않냐고. 그럴수록 나는 더 높은 힐을 찾았다. 내 왼팔이 말했다. 왜 오른팔에는 무거운 가방을 들지 않냐고. 양 팔로 나눠 들면 조금은 더 가볍지 않겠냐고. 왼팔에겐 미안하지만, 오른팔에 무언가를 들고 있어서 못쓰게 되는 상황이 오면, 난 왠지 모르게 불안해. 내 귀가 말했다. 몇 개의 노래들만 듣지 말아달라고. 왜 하루에, 아니 일주일, 어쩌면 한 달 내내 몇 개의 노래들만 몇 년 째 듣고 있는 거냐고. 지겹지도 않냐고. 나는 이제 그나마 조금씩 다른 노래들을 찾기 시작했었고, 그리 성공율이 높진 않았다. 내 손톱이 말했다. 나도 예쁜 매니큐어 한 번 쯤 발라보고..
*안녕하세요 1. 약속시간을 너무나도 어겨버린 처음이자 마지막이였던 그날 "어머, 죄송해요. 많이 늦었죠." 그를 처음 만난 나의 인사는 안녕하세요, 대신 죄송해요, 였다. 약속시간을 거의 한 시간 반 남짓 늦어버리고야 만 나는, 빈 손으로는 갈 수 없어 사과의 의미로 작은 꽃기린 화분을 하나를 내밀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별로 심심하지 않았다며, 괜찮다며 어색하게 나를 위로했다. 이야기의 흐름은 다채로웠다. 근황에서 서비스로, 서비스에서 우주로, 우주에서 사람으로. "전 그 때 그런 모습이 참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라고 말하려던 것을 참고, 그 당시 왜 그러셨냐고 질문했다. 그와 만나기 반 년 전 쯤, 한 아카데미에서 그와 나는 각자 다른 조의 조장이였다. 아카데미에 참여한 모든 사람..
*홍차 1. 그녀의 존재 요즘 읽고 있는 책의 남자주인공은 홍차를 파는 카페 자주 간다. 그 남자주인공은 홍차카페의 예쁜 여자주인이 자신에게, 특히 자신이 여자인 친구들 데려오는 날에는 더더욱 자신을 대하는 표정이 좋지 않다고 느낀다. 남자주인공이 느끼기에 그 카페주인의 자신을 대하는 표정이 너무 티가 많이 나는 것 같아, 언젠가 한번 꼭 나에게만 왜 그러는지 물어보려고 하지만, 곧 자신에게 들이닥친 다른 관계들때문에 그 홍차카페의 여자주인은 금새 머릿 속에서 잊고 만다. 난 사실 남자주인공과 실제 여자주인공의 결말도 궁금했지만, 남자주인공과 홍차카페의 주인사이의 결말이 더 궁금했다. 왜 홍차카페의 주인을 그렇게 묘사했을까. 사실 남자주인공이 그녀의 관심을 내심 받고 싶어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그 ..
*초밥 1. 초밥의 신세계 처음으로 맛있는 초밥을 먹었던 게 언제였더라. 어릴 적엔 굳이 초밥이라는 건 대형마트에서 300원, 500원, 700원에 파는 이름모를 생선들의 잔재가 초간을 한 밥알 위에 투박하게 올려져 꼬깃꼬깃 비닐로 쌓여져 있는 걸로만 알았던 나였는데. 그 맛있는 초밥을 만나게 된 연유는, 21살 여름이였을 적이였나. 그 때의 나는 겨우 귀 뒤로 머리를 넘길 수 있었던 숏컷이였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 하얀 바탕에 검정 체크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실크 소재로 된 그 블라우스는 여름에만 입었기 때문에 그 때가 여름이였다고 짐작하며, 20살 여름에는 함께 갔던 스타트업 대표님을 알지도 못했으며, 21살 여름방학에는 그 대표님을 따라 춘천에 있었고, 22살 여름에는 몇 지역을 방황하던 시..
*변덕 1. 입도 짧으면서 음식에 대한 변덕이 심하다. 뭐, 음식이라기보다는 메뉴선택정도? 내일 만나는 친구와 어디어디를 가자고 다 정해놓고는, 정작 내일이 되어 그 친구를 만나면 딴 소리를 한다. '우리 저기갈래?' 그러면 친구는, '응. 그냥 우리 원래 계획대로 가자' 그럼 나도 '그래!'라고 대답하며, 고분고분 말은 잘 듣는다. 배가 고프면 맨날 먹고 싶은건 많다. '샤브샤브 먹자.', '아니다. 그냥 김밥먹자.' '아냐아냐, 그냥 파스타먹자.', '음, 부대찌개 먹을까?' 내게 익숙해진 친구들은 그냥 얼릉 내가 말한 것 중에 하나를 정하고, 그 뒤에 내가 이야기하는건 한 귀로 흘려듣는다. 그리고 막상 정한 음식을 먹으러 가면, 진짜 콩알만큼만 먹는다고, 아까 그 패기는 어디갔냐고, 아까는 아주 접..
*침묵 1. 여러가지 침묵들 숨막히는 침묵들이 있었다. 가슴떨리는 침묵들이 있었다. 편안한 침묵들이 있었다. 비겁한 침묵들도 있다. 2. 할 수 없는 것 특히 내겐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따금 내 삶을, 내 시간들을, 내 생각들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누가 되었든 예외없이 나를 놔 주어야 한다. 날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가 행복할 수 있다. 그걸 오해하는 상대방은 내 옆에 있을 수 없다. 서로 힘들겠지. 넌 그렇게 할 수 없었고, 때때로 날 얽매고, 날 오해했다. 나는 그런 너에게 계속해서 마음을 열려고 했지만, 노력가지곤 안되는 것이 분명 존재했다. 3. 절대 다리 꼬지 말자 며칠 전 안마를 받으러 갔다. 전에도 몇 번 안마를 받았던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도 그냥 편안하게 잘 누워서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