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1.성별에 관계없이 우린 모두 다 똑같은 사람이고, 인간일 뿐이다.인간이라서 사랑하는 것뿐이고, 상처받는 것뿐이고, 기억하는 것뿐이고.우리는 고독하다.어떨땐 너무나도 고독해서 그 마음을 헤아릴수도, 걷잡을수도, 다독일수도 없어 허한 마음을 부여잡고 있을 수 밖에.때로는 이리저리 휘청이고, 흔들리고, 갈피조차 잡을 수 없어 두려움이 생기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우리는 한없이 나약하다. 그래서 사랑한다. 2.처음 본 그 여자는 굉장히 까맣고 팔다리가 길었으며 말랐다.화장을 거의 하지 않은(하지만 무언가 발라져있긴 했다)듯한 얼굴에, 검정색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다.'안녕하세요'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인사에 답하며 굉장히 멋쩍어하면서도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만난 목적에 알맞게 서로 상투적인 이..
*형/오빠 1.너랑 나 사이는 이거밖에 안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표면상으로 좋은 사이로 지내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으나정작 마음을 살펴볼 시도조차 안하는 너의 모습이 난 답답했다.그냥 내가 너에게 계기조차 마련하지 하지 않았다면 너 역시 시도해 볼 생각자체를 하지 않았겠지. 사실 그건 마음을 살펴볼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일수도 있으나, 못해서 안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그렇게 항상 내 자신을 합리화시켰던 것 같다. 2.너랑 나 사이는 항상 잔잔했다.너는 큰 물결이 일지 않았다.혹여나 커다란 돌멩이가 너라는 호수에 퐁당 빠진다면넌 아마 크게 흔들렸겠지.어쩌면 돌멩이가 자의적으로 날아들어왔을지도 모르겠다.잔잔함은 평화로움과 안정감을 줄 지는 모르겠지만,역동적이고 가슴이 뛰는 열정을 직접적으로 주지는 않는다..
*기다림 생각보다 늦게 온 너는 내게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했다. 하지만 나는 사실 너를 기다리지 않았다. 짧지 않은 순간들 동안 나는 내 마음을 살펴보기에 바빴다. 내 손에 들려있던 책의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왕 손에 책이 들려있으니 읽어볼까, 하며 책을 펼쳤지만 전혀 단어와 문장들이 읽히지 않았다. 나는 내게 되묻고 또 되물었다. 물론 100% 객관적이기 힘들지만. 언제나 내 자신을 살펴보듯 잘 하고 있는 지, 정말 괜찮은지.내 선택과 행동에 조금이나마 내가 놓치고 있는 틈은 없는지. 최대한 감정들을 딱딱하게 만들고, 사실들만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홍수같이 밀려드는 감정들이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자꾸만 나를 흔들었고, 내 마음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그 감정들에게 속지 않으려고 애..
*추천 1.그땐 그 곳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그저 아는 커플을 따라갔을 뿐이였다.아직 해가 지지않은 늦은 오후의 그 곳은 아늑했다.나무로 된 테이블과 그리 밝지 않은 은은한 조명. 장식용으로 소품들을 잔뜩 갖다 놓아 진열해 놓았지만,벽 한 면을 가득 채운 큰 책장만큼이나 더 멋진건 없었다.그나마 궁서체로 진지하게 써있는 '마음'이라는 글자를 담은 프레임만이 선명했다.그 곳에서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맛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함께 갔던 커플 집에서 빌렸던 (정확히 말하면 커플 중 언니의 것) 수 권의 책 들이 내 옆을 차지하고 있었고,오빠와 언니는 기타와 악보를 보며 이야기를 했다.그 곳엔 음악을 만들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온다고 했다.그 곳은 예전에 있었던 곳에..
*팔찌 2년 전 여름에도 나는 팔찌를 만들었고, 1년 전 여름에도 나는 팔찌를 만들었었다.사실 팔찌는 내가 즐겨하는 악세서리 축에도 낄 수 없었다. (목걸이도 마찬가지고)악세사리는 귀걸이와 반지만 그나마 내게 전부였는데 지난 2년동안 팔찌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친한 친구가 팔찌 만드는 것에 관심이 생겼고, 그저 '해볼래?' 던진 한 마디를 덥석 물고 그대로 팔찌의 세계로 입문했다.마음을 먹으면 의욕이 생기고, 의욕이 생기면 행동해야 하는 내 성격에 바로 새벽에 일어나 동대문 평화시장으로 향했다.무더운 여름날 약간 헐렁한 반팔에 짧은 치마를 입고, 통로가 좁은 매장 사이사이를 누비려고 미리 발 편한 슬리퍼도 챙겼다.평화시장 입구 앞에서 나는 슬리퍼로 갈아신고 친구들과 함께 꼬깃꼬깃 ..
*산책 1.식사를 하고 배가 부르면 산책을 하자고 100번 중에 99번은 이야기를 하는데,요즘은 배가 부르지도 않고, 부러 산책을 하지도 않는다.단지 무더운 여름날이여서 입맛을 잃은 건 아닐까 생각도 해보고,혹여나 내 입맛에 음식이 맞지 않는 건 아닐까 생각도 해보지만,내 체중과 하루에 쓰이는 에너지의 양을 지탱하기 위한 정도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수저를 내려놓는다.그렇다고 내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대부분 일정한 몸무게였고, 여름이라 조금 더 살이 빠지면 빠졌지 더이상 찌진 않았다.예상하기로는 아마 음식을 먹고 배를 채운다는 생각보다 그 이면에 완전 다른 생각들이 엉켜있어서 그런건 아닌가싶다.음식을 먹으면서도 머릿 속은 이미 다른 생각들로 엉켜있고, 그러니 음식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낚시 1.진심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말.그 순간은 진심이였어도(혹은 거짓이였어도) 시간이 지나야 깨닫는 말.내가 하는 말들 중에도 훗날이 되어 혹여나 거짓이 될지 몰라 더욱더 신중하게 건네는 말.나만 믿고 따라오면 다 잘될꺼야.내가 계획이 있으니 이렇게만 해보자.이 방향으로만 간다면 우리가 생각했던 목표를 이룰 수 있을꺼야.일단 맡은 일에 대해서 잘 하고 있으면 될 것 같아.내가 그때 너에게 그렇게 했던거에 대해 후회하고 있어.너처럼 특별한 사람은 없었어.너한테만큼은 이런 감정이 생겨.나는 너만 사랑할꺼야.또 너에게 연락하고 싶을 것 같아.네가 보고 싶을거야...수많은 말들이 내 귀를 스쳤지만 그 중 진실이 되었던 말은, 2.하지만 계속해서 그들의 삶이 위태롭고 덧없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너의 의미 나는 너의 의미를 정의할 수 없다.너도 나의 의미를 정의할 수 없다.그저 나는 너를 느낄 뿐이고, 너도 나를 느낄 뿐이다. 그저 나는 너의 존재를 느낄 뿐이고, 너도 나의 존재를 느낄 뿐이다.너의 존재에 대해 내가 느끼는 느낌을 인지할 뿐이고, 나의 존재에 대해 네가 느끼는 느낌을 인지할 뿐이다.나를, 또는 너를 알고 싶어 이런저런 질문도 해보고,나를, 또는 너를 알고 싶어 너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나를, 또는 너를 알고 싶어 너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놓칠새라 완전히 집중하고,나를, 또는 너를 알고 싶어 너에게 시덥지 않은 고백도 해보지만,네가 누군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고, 내가 누군지 너는 도무지 알 수 없다.너와 나는, 나와 너는 그저 같이 있는 순간들을 추억할 뿐이고,너와 나는..
*복숭아 처음에 그녀는 마냥 천진난만해보였다.그냥 착하고 밝고 예쁜 아이라고만 느껴졌다.하지만 추운 인사동 거리를 걸으며 그녀의 감성이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천장이 낮은 카페에 앉아 마카롱과 향 좋은 홍차 위로 대화를 하며 그녀의 내면을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어느 해, 겨울 내내 그녀와 매일 만나 누가 들을새라 조곤조곤하게 각자의 머릿 속에 있던 주제들을 하나씩 풀어냈다.하루는 이 주제, 하루는 저 주제, 또 하루는 다른 주제, 또 하루는 또다른 주제.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대화의 양이 쌓이고 쌓여 산더미가 되었고,그녀와 나는 그 산더미같은 내용들을 인지하고 소화시키는 재미를 알아갔다. 그녀는 마치 스펀지와도 같았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모두 남김없이 흡수했다.어떤 주제로 ..
*장마 1.여름, 그때 당시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분과 약속했던 날이기도 했다.밖엔 주룩주룩 비가왔다. 아마 장마라서 비가 왔던 것도 같다. 굉장한 장대비였고, 오래오래 내리던 비였다.내가 밖에 나갈 때 장대비가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항상 하이힐에 치마를 고집했던 나에게 비란 성가신 존재였다.장대비가 바닥에서 튀어 내 발을 온통 점령하고, 내 하이힐을 몽땅 적시고,심지어 종아리까지 모두 빗물이 튀면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내겐 그 흔한 레인부츠 하나 없었다.그 날도 평소와 같은 복장을 하고 밖에 나갔었다. 약속장소는 꽤나 먼 거리였다. 아마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내려 역에서도 조금 더 걸어야 하는 곳이였다.지하철에서 내려 역 밖으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