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1. 전의역에 갔었다. 물론 목적지는 다른 곳이였지만, 전의역을 경유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우와! 우와!! 생각지도 못한 정말 평화롭고 잔잔한 풍경들이 언제나 든든한 어깨넓은 남자친구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하늘은 파랗고, 산은 푸르고. 전의역 건물은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역처럼 아담 그 자체였다. 누군가가 마을에 벽화사업을 진행했었나보다. 귀여운 벽화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었고, 벽화들과 아담한 건물들이 제법 어울리지 않는 듯하며 어울렸다. 1-2.전의역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역 주변에 정말 사람 손길이 물씬 느껴지는 화단들. 선반에도 화분이 아기자기하게 놓여있었고, 땅에도 예쁜 모종들이 심어져 있었다. 그런 손길들이 담긴 식물들을 보니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
*만약 내가 그였다면,추운 겨울 밤, 함께 택시를 타고 가자고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 내가 그였다면,가까이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굳이 챙기지 않아도 되었던 날을챙길 수 있었을까. 내가 그였다면,누가 들어도 시덥지 않은 소리를 하고있는 상대방을집중할 수 있었을까. 내가 그였다면,미처 생각하지 못한 차이를 맞닥뜨렸을 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까. 내가 그였다면,상대방이 떡볶이를 먹다가 실수로 입 안에서 떡볶이의 잔재가 수직으로 식탁 위에 떨어졌을때 정색하지 않고, 또는 모른 척 하지 않고, 그냥 낄낄대며 웃을 수 있었을까. 내가 그였다면,정말 그냥 자신만을 생각해서 뒤돌아보지 않고 가고 싶었을 때가지 않고 한번 더, 다시 한번 더 볼 수 있었을까. 내가 그였다면, 다른일로 짜증내는 상대..
*30분 시간이 되었다.입고있던 편한 반팔과 반바지를 벗고,위엔 예전 에너자이저 나이트마라톤대회에 나가 사은품으로 받은 티셔츠를 입는다. 아래엔 그냥 엄청 부드럽고 가벼운 편한 검정색 트레이닝복을 입는다.앉아서 양말을 꺼내 쓱쓱 양 발에 신는다.일어나서 살짝 옷장 앞에서 고민한다. 얇디 얇은 바람막이를 입을 것인가.아니면 그냥 바람막이 생략하고 두꺼운 패딩을 입을 것인가.살짝 어제를 떠올려본다.어제는 반팔 위에 바람막이를 입고, 두꺼운 패딩을 입었다.그런데 막상 바람막이는 나중에 돌아올때 왼손에 들고 왔다.안되겠다. 그냥 바람막이는 생략하자.패딩을 단단히 입고, 아이폰과 이어폰을 왼쪽 주머니에, 현관 카드키를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 거실로 나왔다. 타이어 두개를 쌓고, 그 위에 천을 깔고, 유리를 얹어 만..
*콩 1.예전에는 완두콩을 제외하고 콩밥은 무조건 싫어했다. 특히 우리집 밥상에 까만 검정콩이 들어있는 콩밥과 강낭콩이 콩밥이 많이 올라왔었다. 일단 색감 자체부터 내 식욕을 떨어뜨렸다. 밥을 다 먹고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나와 달리 아직 내 밥그릇에는 남긴 콩들만 수북해서 엄마가 숟가락으로 푸욱 떠 가셨다. 그냥 제대로 콩을 먹어보지도 않고, 콩이 들어있으면 안 먹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나보고 '친할머니가 콩밥을 안드시는데, 너가 그대로 닮았나보다'라고 하셨고, 나는 그런줄로만 알고 있었다. '아, 나는 콩을 못 먹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다지 콩밥을 먹을 일이 많이 없어서 그냥저냥 넘어갔다. 물론 식당을 가거나, 집 밥상에 콩밥이 ..
*겨울 아직 겨울이 완전히 오지도 않았는데, 내 마음 속은 조금 시리다.나는 잘하고 싶었다. 정말 잘하고 싶었다.내가 예전보다 얼마나 컸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어떤 성격이 형성되었는지,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을 하고 있는지,조금이나마 전하고 싶었다.그렇다고 큰 욕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였다. 나의 약한 부분과 힘든 부분까지 공유하며 위로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 부분들은 굳이 위로를 안해줘도 좋았다. 굳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았다. 난 충분히 괜찮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괜찮을거니까.하지만 몇 년간의 갭은 역시 쉽게 메워질 수 없었다. 고작 몇 주간의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였다.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진 모르겠다. 다만 몇 군데 짐작만 ..
*물방울 커피향과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주로 카페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카페 테이블 위엔 쬐끔 오래된 맥북, 이면지 한뭉치, 잉크펜,(예전에는 잉크펜보다 볼펜을 선호했는데, 언제부턴가 그냥 이면지에 자유롭게 쓰기엔 잉크펜이 훨씬 가볍고 부드럽고 편하다. 볼펜은 깨알같이 필기할 때, 시험 등 내가 공부한 내용을 정리할 때 등 또박또박 글씨를 꾹꾹 눌러쓸 때만 사용한다), 그리고 진동벨. 드륵 드르륵. 진동벨이 울린다. 주문한 아이스 커피가 나왔다. 신선한 원두인가보다. 얼음들 위로 크레마가 아직 남아있다. 빨대를 물고 커피를 한 입 쭉- 들이킨다. 유리컵 중간에 크레마 자국이 남는다. 대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수증기를 포함한 공기가 얼음과 커피가 가득 든 차가운 유리잔 주변에 다가온다. 찬 기운에 놀..
*집 1. 2009년,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서 집에서 나와 살던 집은 춘천에 있었다. 운 좋게도 아파트였고, 기억엔 30여평 정도 되었으며, 같은 회사에 다니던 좋은 언니(라고 하기엔 그렇게 터울없이 지냈던건 아니였다)분과 살게 되었다. 처음에 딱 도착했을때, 거실과 내 방 마찬가지로 가구가 전혀 없어서 정말 텅 빈 집이여서 더욱 넓어보였다. 현관 문 바로 옆에 있던 방이 내 방이였는데, 방 안에 짐이라곤 옷이 잔뜩 든 캐리어와 간단한 이불, 그리고 그때 쓰던 넷북이 다였다. 가구가 없어 청소하기는 정말정말 편했다. 그냥 청소기로 한번 밀고, 걸레로 쓱쓱 아무 생각없이 닦으면 되는 집이였다. 내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살진 않았지만, 나름 밥도 해먹고, 반찬도 해먹고, 조금씩 사람냄새가 났던 ..
*달력 1. 나는 작은 달력을 선호한다. 그래서 내 방엔 큰 달력이 벽에 걸려있지 않다. (아마도 큰 달력을 걸었을 해엔 그 달력안에 인쇄된 프린팅이 굉장히 멋졌기 때문일것이다) 어릴 적에 할머니네가면 얇은 종이에 엄청 큰 폰트사이즈로 하루하루가 적혀 있던 달력이 걸려있었다. 하루에 한장씩 뜯어서 사용하던. 그 달력이 나에겐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나는 '시간'이라는 것이 주는 위압감을 싫어한다. 물론 '시간'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순 없다. 우리 모두 같은 '시간' 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최대한 '시간'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으려고, '시간'에 대한 위압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스스로 노력한다. 그냥 '시간'이라는 것은 모두가 그나마 지니고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지 않을까. 할머니네 거실에 ..
*안개 1.우리는 지금 인생이라는 안개 속을 서서히 나아간다. 때로는 마치 술을 왕창 마신 후 집에 가는 귀가길처럼 비틀거리며 헤매기도 하고, 델마와 루이스가 달리던 도로처럼 탄탄대로를 달리기도 하며, 잔뜩 낀 안개로 인해 앞에 장애물을 채 피하지 못하고 충돌해 상처를 입기도 하고, 이제는 앞에 장애물이 없을 것이라고 방심하다가 안개 속을 뚫고 달려오는 사슴과 부딪쳐 주저앉기도 하며, 예전 사슴과 부딪쳤던 기억때문에 마음을 졸이며 평소보다도 소심하게 보폭을 줄여 조금씩 조금씩 걸어가기도 한다. 세상에 있는 어느 누구도 안개가 걷힌 세상을 볼 수 없다. 물론 안개가 이제 모두 사라졌다고, 나는 세상을 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 안개 속에서 헤어날 수 없다. 아마 절벽에 떨어져 죽는 날까..
*감기 1. 감기에 좋은 음식 ㅡ 생강차, 모과차, 도라지, 유자차, 귤, 매실차, 파인애플, 생강, 무탕, 부추죽, 파죽, 파스프, 구운 매실, 칡차, 버섯, 보리차, 보리밥, 파꿀탕, 배, 마늘, 무, 배추, 양파, 콩나물, 연근, 은행, 호박 등등.. 감기에 좋은 음식은 많고도 많다. 감기에 걸렸을 때 이런 음식들 중에 하나만 먹어도 괜찮다. 아니 아예 먹지 않아도 좋다. 가장 절대적이며 필수적인건 충분한 휴식과 따뜻한 이불 속이 아닐까. 여기에 감기에 걸려있어 노랗게 뜬 얼굴을 보며 같이 키득키득 웃어줄 누군가가 있으면 더욱더 좋을 것이다. 2. 이기찬 노래 중에 '감기'라는 곡이 있다. 아마 지금은 사람들에게 많이 잊혀졌을 법한 노래. 이기찬의 목소리는 약간 상남자다우면서 츤데레한 구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