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사계절 없이 그저 마냥 덥고 따뜻한 나라에 살다 보니 연말 분위기가 별로 나지 않는다. 두 달 전부터 모든 쇼핑몰과 콘도, 그리고 거리엔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 반짝이는 전구, 산타 모자들이 가득하고, 여기저기서 캐롤이 울려 퍼지는데 난 아직 추운 크리스마스가 더 익숙하다. 해마다 꼭 구매하는 다이어리는 11월 발리에서 한국에서 온 친구한테 부탁해서 미리 받았는데, 서랍 속 다이어리가 하나 더 생긴 것 말곤 확실히 계절의 변화가 없으니 해가 바뀌는 것에 대해 감이 잘 안 온다. 그래도 2023년이라는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송년회 기분 내면서 아주 맛있는 케익과 와인을 사서 올해와 작별을 해야지. -Hee ----------------------------------------------..
*부동산 1. 장기하가 밀양강 주변을 러닝 하는 모습을 보니 사방이 탁 트이고 산의 푸르름을 느끼며 달릴 수 있다는 곳임이 확 느껴져서 언젠가 나도 저 길을 뛰어보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었다. 지금까지 내게 밀양이란 곳은 한 톨의 인연도 없던 곳이었는데 장기하의 러닝으로 인해 갑작스러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구글맵을 켜서 밀양이 정확히 어느 위치에 있는지, 저 러닝 코스는 실제로 어디인지 찾아보았고, 해외여행 가기 전 구글맵을 켜면 늘 하던 대로 러닝 코스 주변에 어떤 카페들이 있는지, 어떤 음식점들이 있는지, 또 다른 내가 좋아할 만한 곳이 있는지 뭔가에 홀린 듯 열심히 핀을 꽂았다. 그렇게 밀양의 아름다움을 알아가면서 밀양에서 한 번은 살아봐도 되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신기..
*왜 고민하는가 1. 갑자기 어지러워서 병원에 입원하신 외할머니 소식. 우연히 알게 된 대학교 동기의 암 투병 소식.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처럼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병마와 싸우다 결국 세상을 떠난 유명한 스타의 부고.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부른다는 삶의 끝자락의 손짓. 2.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2021년 5월의 메모 3. 옳고 그름이 뻔하게 보이는 데도 날, 나 자신을 납득시키는 데엔 조금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여전히.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마음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니. 이런 경우엔 시간이 답이겠지.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 -Hee ---------------------------------------------------..
*카페라떼 어느 흐렸던 주말, 목티에 초록색 가디건을 입고 한때 좋아했던 체크무늬 패턴의 코트와 새빨간 목도리를 하고 집에서 나왔다. 여름엔 별로 멀게 느껴지지 않았던 거리인데, 특히 겨울만 되면 그렇게 홍대역에서 멀게 느껴지는 산울림 소극장 쪽까지 열심히 '돌아갔다'. 홍대역에서 경의선 방향으로 먹자골목을 쭉 따라 바로 올라가는 길도 있었지만 까마득한 과거에 홍대 바로 옆 편의점(사라진지 오래다)에서 알바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가고 싶어서 괜히 홍대 앞까지 쭉 걸었다. 그리고 미술학원 거리를 지나 걷다보면 좋아하는 카페가 보이기 시작하고, 은은한 커피향을 맡으며 라떼를 주문하고 창가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기약도 없이 잡은 약속이지만 괜히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 터라 신이 났었다. 얼마 채 ..
*명상 내 생애 '명상'이란 단어는 없었다. 명상을 할 생각도 없었고, 명상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명상의 중요성을 눈곱만큼도 몰랐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명상을 시도해 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유튜브에서 그냥 명상하는 방법들을 검색해 보니 마음에 드는(=6분 이내의 굉장히 짧은) 영상 몇 개가 눈에 띄었다. 아무거나 하나의 영상을 선택한 후 영상에서 시키는 대로 명상을 시작했다. 편하게 앉아서 두 손을 무릎 위에 두고,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기. 들숨날숨에 집중하고, 호흡을 할 때 흉부, 복부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느껴보라는 나레이션에 따라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 순간 여러 상념들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아? 이 상념들은 어쩌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레이션에서 귀신..
*체면 이제 와서 체면 차릴 건 또 뭐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들도 많이 보여주고, 뭐 심지어 꽈당 넘어지는 것도 보여줬는데.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아닌 체, 모르는 체, 알고 싶지 않은 체 하나.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제일 신경 쓰이고, 몰래 들여다보는데. 뭐가 그렇게 궁금하다고. 난 그때 그렇게 마음들도 접힌 줄 알았는데. 나도, 너도. 내 착각인가.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
*가르쳐줘 지금껏 엄마가 늘 가족들 앞에서 강조했던 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는 요즘. 엄마는 늘 가족행사, 아니, 우리 가족이 모두 모인 일요일 어느 평범한 끼니때마다 항상 우리의 건강이 최고라고 강조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늘 엄마가 버릇처럼, 습관처럼 했던 말들이 진짜 엄마의 바람이었다는 것을 새삼 더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어느샌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늘 건강하라고 반복하며 잔소리와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당시 왜 맨날 똑같은 말만 하냐며 당연한 거 아니냐고 대답하며 엄마의 진심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던 나를 보며 엄마는 얼마나 답답해했을까.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참으로 다행이지. 앞으로도 엄마가 계속 나한테 잔소리해 줬으면 좋겠다. 엄마 이야기 계속 듣고 싶다. 조금 이따 ..
*은행 아마 딱 10월 말, 이때쯤이지 않을까 싶다. 정문부터 중앙 도서관, 그리고 경영대까지 죽 이어지던 은행 냄새. 바닥에 떨어진 은행들을 누군가 이미 무심하게 밟고 지나가서 꼬릿한 냄새 때문에 코를 찡긋거리며 혹시라도 그 터진 은행들을 잘못 밟아 고약한 냄새가 내 구두에 묻으면 어쩔까 싶은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수업이 끝난 후엔 이미 추워진 공기에 흐린 날씨가 의외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학교 근처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라떼나 카푸치노를 주문하며 한숨 돌리고 나면 좋아하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인다. 그렇게 수다를 떨고 각자 과제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밤이 되어 한층 더 추워진 날씨에 발을 동동 구르며 버스를 기다리곤 했다. 그 사이 가족 채팅방에는 엄마가 집에 오는 길에..
*환경 천장 낮고 답답한 사무실에서 탈출한 뒤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발리의 땅을 밟았다. 공항에서 한 시간으로 예상했던 짱구까지는 이 차선 도로라곤 볼 수 없는 발리의 골목과 엄청난 교통량으로 인해 거의 2시간 정도 차에 꼼짝없이 갇혀있다가 도착했다. 숙소에 캐리어를 던져두고 나온 짱구의 거리는 여기가 유럽인지, 호주인지 헷갈릴 정도로 로컬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대부분 벌겋게 타서 낮에 바다에서 선탠과 서핑을 즐기고 온 티가 팍팍 났다. 짱구의 메인 거리엔(처음엔 그냥 골목 중 하나인 줄 알았는데 하루에 만 오천 보이상 걷다 보니 내가 처음 걸었던 그곳이 바로 메인이었다) 가로수길에 즐비한, 아니 가로수길보다도 더욱 감각적인 인테리어의 편집샵들이 굉장히 많아서 의외였는데, 심지어 그냥 티셔츠 한 ..
*Originality 0에서 100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해. 특히 몇몇 래퍼들의 곡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는 것들이 정말 많아야 그만큼 쏟아낼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게다가 펀치라인까지 기가 막히게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정말 그들은 천재가 분명하다. 그런 의미로 이번 쇼미더머니도 빨리 보고 싶네.. -Hee --------------------------------------------------------------------------------------- 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brunch.co.kr/@doranproject http://dora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