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함

1.
아직은 코끝이 찬 계절에, 버스를 세 번이나 타고 와서 내게 "오늘 네가 정말 많이 보고싶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시간을 두고 우리는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알게 되었고, 덧붙여 서로의 단점을 감싸고 극복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후자를 알게 되는 과정은 굴곡이 많았지만.) 모든 것을 대부분 여기저기 (어쩌면 심하게) 재보는 그는, 내 자신에 대해선 거의 재지 않았다. 그에게 왜 나에 대해 재지 않았냐고 물었고, 그 대답을 들었지만 그 대답이 사실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다. 얼떨떨했다. 그는 손이 건조했다. 평소에는 잘 모르겠는데, 특히 운전대를 잡은 손은 너무 건조함이 눈에 보일 정도로 건조했다. 나는 가방에서 핸드크림을 꺼내어 그에게 주욱 짜주었다. 나는 그런 그와 아주 재미있는 도전을 하고 싶어졌다.

2.
화를 냈다. 누군가는 내 정곡을 찔렀고, 나는 화가 났다. 화가난 이유는, 정곡을 찌른 누군가가 미워서일수도 있겠지만, 그 정곡을 가지고 있는 내 자신이 더 미웠고, 찔려서 움찔한 내 자신에게 더 화가났다. 물론 그 누군가의 표현방식에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였고, 그것에 화를 덜고 싶었으나, 아주 솔직한 나의 마음은, 그냥 내 자신이 그러지 않았다면, 차라리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좋았을껄,이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겐 지랄맞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어쩌면 감정의 기복이 더 다채로워지고, 조금은 사람냄새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연신 되물었다. 원래 이래도 되는건가? 원래 이런거지? 원래 이런것도 있는거지? 원래 싸우기도 하는거지? 원래 화도 내는거지? 다행스럽게도 '그렇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 다행이였다.

3.
제작년(이다 벌써)에 회사사무실이 너무 건조해서 목에 염증이 생겼다. 그 염증이 심해져서 발열까지 일으켜 반차를 쓰고 집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사무실 내 가습기의 필요성을 깨닫고, 가습기를 골라 경영관리팀에 구매요청을 했다. 혹시 몰라 온습도계도 같이 주문했다. 사무실용 가습기가 사무실에 배달되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가습기에 물을 담아 작동을 시켰지만, 우습게도 습도는 전혀 높아지지 않았다. 가습기의 성능이 문제였는지, 사무실에 비해 가습기의 크기가 문제였는지, (하지만 온습도계는 바로 가습기 옆에 놓았는데..) 모르겠지만 그 가습기로 건조함을 버티진 못했다. 근데 2년이 지나 문득 든 생각은 온습도계가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가습기는 아주 멀쩡하고 작동을 잘 했을 지도 모르겠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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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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