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 1. '소각하.'판사가 드디어 입술을 떼어 이야기를 했다.판사의 말을 기다리며 판사의 입만 쳐다보았던 나는 순간 저 판사의 입술이 되게 조그맣다는 생각이 들었다.여자판사여서 그런가. 진한 립스틱을 바르진 않았지만, 연한 핑크색의 틴트를 바른듯 입술에서 광이 났다.결국엔 그 판사의 입에서 원하는 단어가 나오게 되었다. 2. 이야기를 할까, 말까,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어렵게 굳게 다운 입술을 떼어 이야기를 했다.하지만 몇 분 뒤, 역시나 힘든걸까, 라는 생각이 들며 다시 입술을 닫았다. 3. 뽀뽀할 때에는 입술을 내밀어 '쪽'하는 소리가 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Hee *우산 1.우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순간, 내 두 손엔 우산이 없었다. 예전에 내 생애 두번째 마라톤을 나가던 그 순간..
*비행기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내 사랑하는 소중한 친구가 먼 나라로 떠난다.평생 떠나는건 아니지만, 같은 한국에 없다니 굉장히 허전할 것만 같다.항상 만나면 즐겁고, 별일이 없어도 재미있고, 소소한 담소를 나누며 행복을 논하고, 때론 서로 잔소리도 해주며, 그렇게 한 해, 한 해 지내왔는데.곧 있으면 찬 바람이 슝 부는 온전한 가을이 100% 첨가된 밤을 느껴, 바로 카톡으로 지금 가을이 100%라고 이야기 하면 동감해 줄 수 없겠지.첫 눈이 어설프게 오면 왜 눈이 이렇게 어설프게 오냐며, 또는 왜 지금 이 상황에 첫눈이 내리냐며, 불평불만을 이야기해도 바로바로 대답해주지 않겠지.때론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선물을 받아, 나 지금 이런 선물을 받았는데, 이런 뜻이 담겨져 있어서 엄청 지금 좋은 내 기분을..
*잠 1. 지난 일주일이 나의 2014년 중에 잠을 가장 많이 잤던 한 주가 아니였나 싶다.자고 또 자고, 머리가 아파도 그냥 자고, 졸려도 자고, 안졸려도 자고, 밤에도 자고, 낮에도 자고, 계속 자고.잠은 잠을 낳고, 또 잠은 잠을 낳는다. 하지만 나의 한계치에 다다르자 머리는 지끈지끈 너무나도 아프고, 더이상 잠다운 잠을 자지 못했고,괴랄한 꿈만 꾸었다. 나의 무의식 안에서 뛰어놀던 사람들이 내 꿈으로 튀어나와 내게 그들의 존재를 인식시켰고,나 역시 꿈인 줄 알고 있으면서도 진지하게 그들을 대했다. 꿈에서도 고민을 하며 이야기를 했고, 생각을 하며 행동했다.갑작스레 내 안에서 늘어난 잠 때문인지, 아니면 무의식에서 뻗어나온 스트레스 때문인지, 마주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신경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편..
*야망 그와 함께 있으면 내 꿈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야망은 얼마나 있는지, 내가 어떠어떠한 사람인지 굳이 설명하거나 어필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냥 온전하게 내 자신의 안위를 먼저 물어보고, 걱정해주었고, 어떤 옷을 입던지, 어떤 머리모양을 하던지, 심지어 어떤 표정을 짓던 상관없이 그냥 전부 예쁘게만 보인다고 했고, 전부 좋다고 했다. 그는 내게 마치 거대하게 우뚝 서 있는 칠레의 이스터섬에 있는 모아이와 같이 느껴졌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묵묵하게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아이. 하지만 사람은 절대 석상이 될 수 없었다. 그와 나는 서로 건드리지 말았어야 하는 감정선을 건드렸고, 서로가 좋아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했다. 그와 나 전부 절대 익숙하지 않은 감정선이였기에 어찌할 줄 몰랐다. 나 역시 이..
*얼음 일주일 내내 술을 마셨다.달리 기분이 좋아서도, 나빠서도 아니였다.그렇다고 밤낮을 가린것도 아니였다.'얼음물 한 잔 주세요'항상 술 마시기 전에 내가 하는 말이였는데, 요 일주일동안은 얼음물도 필요없었다.안주가 무엇이 되었던 상관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정신이 더욱 또렷해졌다.엉클어지려고 해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그럴수가 없었던 건가. -Hee *단발머리 지난 6년동안 귀밑 1cm부터 시작해서 5cm를 거의 넘지않는 단발머리를 유지했었다.나도 모르게 어느새 항상 머리가 조금 길었다하는 느낌이 들면 주변에 미용실이 있는지 두리번거리기 일쑤였다.자르고 또 자르고를 반복하며 나는 평생 머리를 못기를거라고 생각했다.그 귀 밑에서 찰랑거리는 짧은 단발머리의 이미지는 곧 내 자신이라고 생각..
*위선 한때는 모든 사람들이 날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하지만 내가 어떤 이에게 알게모르게 피해를 끼치던, 전혀 피해를 끼치지 않던 간에, 그 생각은 정말 부질없다고 느꼈다. 그 때부터 나는 날 위해서 살기 시작했고, 앞으로도 날 위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헤어지기 싫은 사람이라도, 모든 마음을 다 해서 좋아했더라도, 떠날 사람은 떠나기 마련이고, 그냥 보기에 밍숭맹숭한 사람이라도, 정신차려보면 어느덧 내 옆에 자리잡아 큰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물론 사람이 스쳐 지나가는 시기엔 언제나 외롭고, 모든것이 헛되보이고, 아무 소용이 없다고 느껴지지만 그런 시기를 지나보내고, 또 지나보내고나면 미련도, 원망도 아닌 그냥 순수한 웃음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보다 더욱더 나 ..
*가로등 환한 가로등 밑에서1"안녕?""안녕!""왜 이런데서 자고있는거야~""아니.. 내가 자려고 했던건 아니고..... 너무 피곤해서 잠깐 있어야지, 했는데 ....""큭... 아무튼 찾아서 다행이다 난 또 설마설마했네""프하하 그러게""잘 지냈어?""잘 지냈지이! 어떻게 지냈어!""나 그냥 뭐 놀면서 지냈지. 지금 자격증 준비중이야""아~ 그렇구나 공부하느냐 힘들겠다""뭐 그냥 힘들게 뭐있어""흐흐흐흐흐 그런가".. 환한 가로등 밑에서2"내가 생각할 때 우린 진짜 징한 것 같애""응?""어떻게 이렇게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이렇게 만나고 있을 거라고 생각이나 해봤겠어?""내말이 그말이라구!""진짜 좀 대단한거 같애""정말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는데. 그건 공감하는데 그게 너라니""그치 인생..
*맥주 1.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오늘은 참 덥다고 이야기했고,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눈을 마주치며 활짝 웃었다.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시원하다며 계속해서 마셨고,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그까짓꺼 다 잊어버리라 했다.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오늘은 기분이 무지 좋다고 했고,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참 피곤하다고 이야기 했다.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이제야 살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이 맥주는 엄청 맛있다고 이야기 했고,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이 자리는 정말 재미없다고 생각했다.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빨리 맥주를 목에서 넘긴 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고,맥주 한 모금 마시고 난 뒤웃..
*밤 나는 수 많은 밤 중에서도 특히 여름밤이 좋다. 여름밤이 좋은 이유 하나.내가 굉장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그 말은 내 몸의 온도가 체감상으로는 더 따뜻할 수 있기 때문이다.겨울밤은 왜 그렇지 않냐고?난 저혈압이고 손발이 매우 차기 때문에 겨울 밤에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다.밖에 나가는 것도 추워서 힘들고, 전기장판이 깔려있는 침대 속에 들어가게 되면 쉽게 그 온기를 뿌리치지 못한다. 그리고 또 발은 어찌나 시려운지 수면양말도 꼭 챙겨 신는다. 젠장. 또한 체감온도가 한번 내려가면 쉽게 올라올 생각을 안한다. 내가 있는 공간의 기온들이 오르고 또 올라야덩달아 내 몸의 온도도 올라가기 때문에 겨울밤은 힘들다. 여름밤이 좋은 이유 둘.여름밤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걷고 싶은 만큼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