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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143.남겨진 것들

puresmile 2016. 9. 28. 21:01

*남겨진 것들

1. 우스운 행로
아이폰으로 지도를 켰다. 목적지를 설정하고, 현재 위치와 아이폰을 사방으로 돌리며 가야 할 방향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몇 걸음 간 후 확인, 서너 군데 가게를 지나서 또 확인. 커브길이 많은데 왼쪽으로 꺾어야 하는지, 오른쪽으로 꺾어야 하는지 정말 여러 번 확인하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습게도 목적지에 도착하자 괜히 정이 가지 않았다. 사실 굳이 목적지는 그 곳이 아니여도 상관이 없었고, 가장 중요한 건 변덕을 부린 내 마음이였다. 그래서 원래 정이 붙어있는 목적지로 발길을 돌렸다. 몇 십번은 가던 곳인데, 출발지가 항상 출발하던 곳과는 반대방향이였다. 감으로 그 목적지를 향했다. 두 블럭쯤 갔을까.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머릿 속 지도가 뒤엉켰다. 바보. 다시 아이폰을 꺼내들고 목적지를 설정했다. 아이폰을 사방으로 돌리며 방향을 재확인했다. 완벽하게 반대방향이였다. 정말 바보. 아이폰을 나침반삼아 반대방향(사실은 맞는 방향)으로 다시 걸었다. 처음 목적지보다 3배는 걸어야 했다. 지도를 보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믿기질 않았다. 지도는 1000% 확실한데, 왜 나는 믿지 못하는 것일까. 그냥 아이폰을 보면서 걸어갔다. 계속 걸었다. 그렇게 걷고 있다가 갑자기 웃음이 났다. 13센치되는 힐을 신고 발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그냥 웃었다. 한 번 웃으니 더 웃음이 났다. 웃으면서 걸어갔다. 한 손에는 토트백이, 한 손에는 노트북이 무거워서 활기차게 손을 흔들진 못했는데, 마냥 웃으니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2. 인지의 필요성
놓치고 있는 시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사실 냉정하게 말하면 놓치고 있는 시간들이 맞다. 외면하고 있는 시간들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 이런 외면하고 있는 회색빛의 시간들이 한 색, 한 색, 달라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든 시간들이 예쁜 색으로 채색되려면 아직은 멀었다. 아직도 멀었다. 그건 어누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내 마음가짐일 뿐이다.

3. 기억의 조각
오후 다섯시였나. 갑자기 생각나지 않길 바라는 음악이 생각났다. 얄밉게도 옵저버로 미니맵을 밝히듯 한 마디, 한 마디가 밝아졌다. 그 곡을 듣고 싶어하는 무의식이 뺀질대고 있다. 뺀질뺀질 너무 심하게도 뺀질댄다. 그만 뺀질대도 되는데. 뺀질대지 말아야 하는데. 어찌 할 수 없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아는 한숨만 깊게 내쉴 뿐이다.

4. 어느 시점들에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구나, 라는 이해심과 그럴 수도 있었구나, 라는 놀라움과 그건 정말 아닌 것 같았어, 라는 조소와 그래서 이제 맞는 걸까, 하는 회의감과 왜 그러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와,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 라는 합리화와 그렇게 밖에 못했던 걸까, 하는 서운함과 삶에 대한 더 깊어진 딜레마와 혼란스러움만이.

5. 타성
정확히 무엇인지 형용하기 힘든 찌꺼기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이 되고, 그대로 굳어져 버리고. 

6. 넌 왜
넌 나를 보면 왜 환하게 웃으려고 노력하는 걸까. 그리고 너는 왜 나를 보고 그런 무표정을 짓는 걸까. '굳이'라는 말은 왜 싫어하는 걸까. '해준다'라는 말은 왜 또 싫어하는 걸까. 나는 너에게 어떤 사람인걸까. 넌 왜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했을까. 왜 그렇게 붙잡고, 또 붙잡았을까. 너는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나는 너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7. 시간의 속성
항상 시작이다. 늘 시작이다. 매 순간이 시작이다.
도중도, 끝도 없는, 언제나 시작일 뿐이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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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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