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1.
함께 했던 그 길은 이제 희미해져만 가네.
하지만 다른 길들이 나타났고, 또다시 새로운 길이 나타나겠지.
길은 끝이 없으니까.

2.
정처없이 떠돌아다녀도 새로운 길이 나왔고,
그 길에서 시간들을 보았고, 사람들과 사랑들을 만났다.
그 길엔 누군가의 추억이 묻어있었고, 누군가의 슬픔이 아려있었다.

3.
나는 새로운 길을 낯설어하고, 낯선 길은 무섭기도 했기에
항상 두 눈을 크게 뜨고 어느 한 구석이라도 놓치기 싫어서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눈에 익길 바라는 마음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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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3

도란도란 프로젝트 2019.10.02 16:38

*3

1.
"子曰(자왈) 三人行(삼인행)에 必有我師焉 (필유아사언)이니
擇其善者而從之(택기선자이종지오) 其不善者而改之(기불선자이개지)니라."
누구든 한 번쯤은 들어봤을 논어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으니,
좋은 것은 본 받고, 나쁜 것은 그것 또한 스승이므로 살펴 스스로 고쳐야 한다는 의미다.
시간이 갈 수록 본 받고 싶은 부분들이 주변에서 보이지 않고, 
닮기 싫은 부분들만 보이는데, 내 마음 문제인지, 아니면 주변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아, 저렇게 되고싶다.' 보다는 '아, 난 저러지 말아야지.'가 되었으니.
논어에 따르면 그것도 스승이면 스승이니 이렇게 배워간다고 생각해봐야지.

2.
오겹살보다 삼겹살을 더 많이 좋아하는 나에게,
껍데기를 잘라 오겹살을 삼겹살로 만들어주는 이가 있다.
돼지 껍데기는 아무리 먹어도 아직까지 참 맛을 모르겠다.

3.
도란도란 프로젝트의 300번째 글을 쓰게 되는 순간도 오는구나.
처음 시작할 때는 천진난만한 대학생이 패기 넘치게 시작했는데,
300번째의 글을 쓰는 지금 나는 4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누군가는 이게 뭔데 그렇게 중요하냐며 비난하는 이도 있었고,
누군가는 벌써 300번째냐며, 놀라워하는 이도 있었다.
(아마 지속력에 놀라워했던 것도 같았다)
누군가는 '도란도란'이 들어가는 간판을 공유해주기도 하였으며,
누군가는 이 글들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것만 같아서 읽기 싫다는 말을 했었다.
우리의 일기 같기도 하면서, 소설 같기도 한 글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 글들이 어쩌면 우리의 역사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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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태풍이 몇 차례 지나갔고, 강한 태풍이든, 약한 태풍이든 간에 태풍이 끝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그 즈음에 늘 내 존재가 너무 작아 보이는 공허함을 느낀다. 이게 느낄 수 있는 스트레스도 다가오거나, 예민함으로 다가오거나, 매우 짜증스러움으로 다가올 때도 있어 더욱더 나 자신이 나약해 보인다. 올해 초 누군가 그랬다. 올해는 짜증이 아주 많은 한 해가 될 거라고. 다른 모든 말들은 모두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 말만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비논리적인 인과관계를 만든다. 태풍의 시발점이 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무 뜻 없는 내가 태풍을 맞자니 억울하기도 하여 이리저리 발버둥도 쳐본다. 앞으로도 태풍이 오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을뿐더러, 미처 경험하지 못한 거센 태풍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날아가지 않도록 단단하게 대비하고, 안전한 곳을 만들고, 나름대로의 대처 방법을 만들어 두는 것일 뿐. 태풍을 피할 방법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영영.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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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1.
만나고 이야기했던 기간이 얼마나 되든
한결같은 스탠스는 도대체 뭐야.
그냥, 어쩌다 기회가 되서 그런거겠지.
그냥, 만나면 괜찮고 아니면 말고 그런거겠지.
순간 기대하게 되고 콩닥거리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말이 되지 않고,
그러기엔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고.
매번 반복되는 순간들에 생각과 감정 또한 반복된다.
눈치없이 일렁이는 마음들도.

2.
식물을 키우는 일들은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 집에는 스파티필름과 행운목, 그리고 높게 뻗은 선인장이 있는데
모두가 나 몰래 짠 듯, 하나같이 어렵다.
스파티필름은 잘 자라는 듯 싶더니, 해를 보지 못하는 쪽은 금새 고개를 숙여서
종종 화분의 위치를 앞뒤로 바꾸어줘야 하고,
행운목은 비교적 잘 자란다고 했지만 물을 엄청 먹지 않아서
내가 주는 물 족족 아래 화분 받침이 넘실거리고 심지어 넘쳐흐르기까지 한다.
그리고 높게 뻗은 선인장은 한 번에 3~4개의 잎이 나는데, 
하루하루 길게 뻗다가 금새 끝이 안으로 구부러지고, 까맣게 말라죽는다.
그래도 아직 포기하긴 일러서 물의 양과 물 주는 기간을 조절해가며 고군분투 키우고 있다.
집에서 엄마가 키우는 식물들은 너무 많이 자라 바닥에 끌리고, 잎이 엄청나게 무성하기 바쁜데.
보기엔 쉬워보여도 직접 키워보니 쉬운게 아니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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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담

당장 내일의 일도 어떻게 될는지 사람일은 모르는거라 장담하는 것들의 많은 부분들이 의미없어질 때가 많다.
함께 가자고 장담했던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 지도 모른 채 뿔뿔이 흩어졌고,
꼭 책임지겠다고 장담했던 그들은 자신의 앞가림도 겨우하기 바빠 어느새 잊혀졌다.
장담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예전에는 엄청나게 결연해보였지만 이제는 속없는 껍데기인 것들만 잔뜩 남아있는 것 같아서 꽤 석연찮다. 장담하는 사람들보다 조용히 행동하는 사람에게 더 눈길이 간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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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엄마는 무지외반증이 심하다. 젊었을 적에 직업상 힐을 많이 신고 다니셔서 엄마의 발모양은 기형적으로 변해버렸다.
(나도 요즘 무서워서 힐과 운동화와 로퍼를 골고루 번갈아 신는다. 아직 높은 굽을 완전히 포기할 순 없다...)
그래서 항상 오래 걸으실 때마다 불편하고, 또 무지외반증때문에 튀어나온 부분이 빨개져있다.
그런 엄마에게 처음으로 가격은 생각하지말고 이것저것 신어보고 편하게 신발을 고르라고 했던 올해 어버이날. 

엄마는 몇 년 전, 구두상품권이 생겼다며, 아빠에게 구두를 사줬다. 아빠는 그 구두를 밑창이 떨어지고, 뒷 가죽이 헤질때까지 신고 다니셨다. 그 비싼 구두가 못 신게 될 즈음 인터넷쇼핑에 익숙해진 아빠는 (냉장고도 온라인으로 사셨다지. 최저가로 샀다고 좋아하셨다)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일명 브랜드없는 구두를 신으셨다. 내가 집에가면 이 구두 싸게 샀는데 이쁘지 않냐며, 자랑을 늘어놓으신 아빠. 그런 아빠에게도 비싸진 않지만 꽤 괜찮은 구두를 선물해드렸다.
우리 아빠도 꽤나 취향이 있기 때문에, (그냥 아무 구두나 괜찮다고 신지는 않으신다. 나름 아빠 기준에서 예뻐야 한다.)
직접 아빠를 모시고 가서, 아빠가 직접 신어보고, 걸어도 보고. 그래서 고른 구두라서 더 뜻깊다. 

나 역시 지난 10년을 힐을 고집했었다. 덕분에 수차례 구두 때문에 굳은살도 생기고, 발톱도 빠져보고, 발가락도 그리 예쁘지 않다. 이제는 조금씩 힐에서 내려오는 시간이 많아졌다. 제일 큰 계기는 일주일에 한 번 자세교정 PT를 받고 있는데, 내 발과 발목이 힐 때문에 많이 약해지고,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이 온 몸으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신발장에 높은 굽의 구두들이 많지만, 언젠가는 적어지는 날이 올 것 같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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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1.
올 여름에는 딱복, 물복이라는 단어를 새로 알았는데,
그 단어들의 생김새가 괴상하지만 뜻은 귀여워서 뭔가 밸런스가 맞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내가 2019년까지 살면서, 올 여름에는 감사하게도 정말 향긋하고 맛있는 물복을 많이 먹을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지금도 냉장고에 투명한 비닐과 검정색 비닐을 뚫고 나오는 달콤한 향을 지닌 복숭아들이 잔뜩 날 기다리고 있다. 
복숭아가 이렇게 맛있는 계절은 처음이야.
내 사랑 복숭아!

2.
맛있는 건 꼭 나 먼저 주는 너의 모습이 
티는 안냈지만 은근히 많이 좋다.
그런 모습을 항상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매번 새삼스럽고, 두근거린다.

3.
요즘 떡볶이가 엄청 땡기는데, 집 주변엔 맛있는 곳이 없다.
포장마차에서부터, 오래된 분식집, 그리고 배달음식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떡볶이를 집에 사와서 먹어보지만,
아직 최애 떡볶이는 찾지 못했다.
평일에 집 골목 아래 새로 생긴 분식집을 가 볼 예정이다.
집이랑 무지 가까워서 그 곳 떡볶이가 맛있었으면 좋으련만.
찾으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가야지.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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