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니1.하루 종일도 아닌 길어봤자 반나절 정도일까 싶은 결혼식 날이 가까워질수록 모든 신경이 그 날로 몰리기 시작했다. 그 뒤 3주라는 시간 동안의 여행보다 고 몇 시간의 중요성이 더 컸던 것이지. 사실 분하기도 했다. 고작 그 하루가, 그 몇 시간이 나를 이렇게 여러모로 복잡하고 다양하게 신경 쓰게 하는 것이. 심지어 내가 주인공이었던 날이기에 모든 것을 내 계획대로 해야 직성에 풀려서 1부터 100까지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디데이 전 날 자기 직전 눈을 감으면서 생각했다. '내일 눈 뜨자마자 모든 것이 실전이고, 이제 내 손안에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즐기자'라고. 그렇게 새벽부터 일어나서 하루 종일 웃고 울고 떠들며 최대치로 즐긴 나는 밤 10시가 되어도 배고픈 지 몰랐다. 10..
*예감"그렇게 우리 좋게 만나고 헤어졌잖아. 그리고 난 다음날 연락이 바로 올 줄 알았지. 근데 안 오는거야. 그래서 '음, 그렇구나'라고 (혼자 머쓱해하며) 그렇게 넘어갔는데 그다음 날 바로 연락이 오더라고? 그래서 난 좋았어.""근데 나도 바로 다음날 연락이 올 줄 알았어. 근데 안 오더라고. 그래서 그다음 날 바로 연락해 봤지.""아, 그랬어?""그리고 우리 (다시) 만나서 걷고, 먹고, 그랬을 때도 뭔가 나는 더 물어보고 싶었는데 계속 뭐가 있다면서 먼저 간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아, 이 사람은 나한테 관심이 없구나' 생각했지.""아, 그때 나 친구랑 스터디해야 하는 시간이라 (그 시간을 미룰 수 없어서) 제일 먼저 만나자마자 말했지. 맞아, 맞아. 아 그게 관심 없는 것처럼 보였어? 그랬구나..
*도시락가산에 있는 회사에 다닐 때 한동안 열심히 도시락 메뉴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원래는 회사 지하 식당에서 밥을 사 먹거나, 아니면 밖에 있는 식당에서 따로 사 먹거나 늘 둘 중 하난데 몇 년을 다니니 밥은 밥대로 다 질려서 친한 회사 동료들끼리 도시락을 싸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게 우리들은 더운 여름날 열심히 밥을 싸오고, 전날 집에서 반찬을 해오고, 도시락 메뉴 중 넘버원인 도시락 김까지 챙겨서 각자의 도시락 가방에 챙겨왔다. 11시 반, 점심시간이 되면 다 같이 회사 복도 끝 테라스로 쪼르르 몰려가서 스탠딩 파티를 벌였다. 테라스에는 의자가 몇 개 없어서 그냥 서서 먹기도 했고, 의자에 살짝 걸터 앉아 먹기도 했다. 우리들은 밥을 먹으면서도 뭐가 그렇게 재밌었던지 깔깔대며 웃기 바빴고, 밥..
*오렌지왜 사사로운 것에도 불만을 내비치는지. 물론 입장은 다르지만 내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었다.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뭐라도 말하면서 풀고 싶었다. "오렌지 먹을래?"-Hee ····················································································도란도란 프로젝트의 다른 글들도 만나보세요.🔸도란도란 프로젝트 Tumblr 바로가기🔸도란도란 프로젝트 브런치 바로가기🔹도란도란 프로젝트 페이스북페이지 바로가기🔹도란도란 프로젝트 트위터 바로가기
*식탁1.벌써 20년도 더 됐을까. 시험기간이 되면 동생이랑 나랑 한 식탁에 앉아서 각자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늦은 밤 홀로 공부하는 것보다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아 공부하는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니 더 공부가 잘되고 집중이 잘 됐다. 마치 혼자 책상 위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모두가 공부하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면 더 잘 외워지고, 이해가 잘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몇 년 뒤 그렇게 시험공부를 하던 식탁이 어느 순간 각자 다이어리를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던 테이블로 용도가 바뀌었다. 나는 영어를 공부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고, 동생은 잔뜩 사 온 스티커를 다이어리에 붙이며 미뤄둔 다이어리를 쓰곤 했다. 각자의 방에 책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식탁을 활용했다. 2.한때 하얀 원형 테이블을..
*일기예보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토요일. 괜히 내일 일기예보를 들여다본다. 일기예보를 보면 뭐하나. 비가 와도 뛰러 갈 것이고, 비가 오지 않지만 추워도 뛰러 갈 것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뛸 것인데. 그 사실은 변함없는데. 이렇게 으슬으슬 봄바람 불고 흐린 날씨를 싫어하는(사실 그냥 추운 걸 싫어한다) 나는 취소하지 못할 내일의 마라톤을 접수한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은근하게 원망을 해본다. 요즘 너무 바쁜 나머지 제대로 마라톤 연습을 하지 못해서 자신이 없었고, 그냥 완주를 목표로만 하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하지만 난 나를 잘 아는걸. 내일 신나게 뛸 것이라는걸. 아니나 다를까 마라톤 당일, 평일에 출근하는 날보다도 훨씬 일찍 일어나서 미리 꺼내둔 운동복으로 갈아입자마자 신이 나기 시작했다. ..
*상대적1.A를 바라보는 눈이 정말 다르다.B는 A를 매사에 불만이 많고 불평만 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항상 만족하지 못하고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욕심쟁이. C는 A를 그래도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B에게 A에 대한 이야기를 아예 듣지 않았다면 나를 아껴주는 천사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 '그래도'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B의 시각에서 보는 A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래도'를 붙였고, '그래도' 뒤 '나에겐'은 생략했다. D는 A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C에게 A에 대한 좋은 이야기만 들었기 때문이다. 잘해주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사실 C는 그런 사실들만 기억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사실만 D에게 전달한 것일지도.E는 A를 눈에 비유하자면 흘겨보..
*관계의 끝1.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원히 보지 않을 사람(들)이고, 곧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관계들은 일주일 전, 한달 전의 나를 비웃듯 기약 없이 이어져 가게 되었다. 반면 나랑 평생 알고 지낼 것 같았던 사람(들)은 인연의 끈이 허무하게도 쉽게 끊어져 버렸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 같은 일일까. 며칠 전 친구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정말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어디서 어떻게 이어지게 될지 모르니 어디서든 잘 해야 한다고. 근데 그게 말이 쉽지.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잘하는게 제일 어려운 일이다. 2.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지만 가끔씩 대화하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대상이 있다. 그 대상과의 대화가 그리운 날들이 있다. 그렇게 끝을 내지 말걸. 아니 끝을 맞이하도록 두지 말걸 그랬나. 3.관계를 ..
*생일선물1.며칠 전 다이소에서 포장지를 산 적이 있다. 오랜만에 포장지를 고르고 있는데 생각보다 포장지의 종류가 많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종이 재질의 포장지를 살 건지, 비닐 재질의 포장지를 살 건지 혼자 열심히 만지작 만지작거리다가 갑자기 초등학교 때 서점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아마 누군가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서점에서 책을 골랐고, '포장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서점에 있는 주인(또는 아르바이트생)분이 손가락으로 포장지 네다섯 개가 담긴 길쭉한 나무 박스를 가르키며 원하는 포장지를 고르라고 했었다. 짧은 시 간동안 열심히 포장지들을 보며 뭘 할지 고민하다가 하나의 포장지를 선택했고, 서점 주인분은 그 포장지를 스윽 꺼내서 능숙하게 책을 포장해 줬다. 요즘은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열심히 ..
*낙관1.골치 아픈 일들이 은근히 내 머릿속에 스며드는 요즘. 다르게 생각하면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신경 쓰고 싶은 일들이기도 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도 있다. 그래도 하나하나 수월하게 넘어가고 있으니까! 생각한 대로 해내면 되고, 움직이면 된다. 그리고 나중에 나는 지금처럼 웃고 있을 거니까 다 잘 될 것이라고 믿는다. 2.근데 갑자기 든 생각인데, 만약 약간 스스로가 염세적이고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사람은 머리가 안 아플 순간이 있을까? 걱정만 해야 하고, 좋지 않은 결과들이 마구 떠오르면 그건 그거대로 스트레스일 텐데. 아예 뇌의 구조가 다른 걸까? 어떤 생각의 흐름을 가지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H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