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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62.환절기

puresmile 2015. 3. 11. 13:39

*환절기


1.

19년 만에 집에 있는 냉장고를 바꿨다.

집에 있는데 아빠가 와보라고 부르시길래 쪼르르 달려갔다. 

"우리 냉장고 이걸로 바꿀꺼다!" 라고 하시면서 모니터를 내 쪽으로 향해 틀어주셨다.

"우와. 진짜? 우리 냉장고 바꿔?"

"응. 오래도 됐고, 옛날꺼라 전기세도 많이 들잖아. 예전에 컴프레셔도 고장나서 한번 고쳤고."

아빠는 장바구니에 넣어둔 냉장고를 이제 구매하려고 '장바구니'를 클릭했다.

아무 생각없이 옆에서 보고 있던 나는, 소리쳤다.

"어? 아빠 잠깐만!!"

"왜??"

"아빠 이거 뭐야?"

나는 손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네 개의 눈이 주목한 글귀는 바로 '초콜렛 20종 모음'.

"아.. 들켰네. 이제 곧 화이트데이잖아. 너네 사탕말고 초콜렛 좋아하니까 초콜렛 주문하려고 했지"

"와 아빠 진짜 짱이다!"

그랬다. 아빠는 우리들의 입맛과 행동을 모두 눈여겨보시고 특히 사탕보다는 초콜렛을 더 좋아하는 나와 동생을 위해 초콜렛을 몰래 장바구니에 넣어두셨던 것이였다.

며칠 뒤 여러가지 다양한 초콜렛들은 커다란 상자에 담겨 내 손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아, 초콜렛 중에 린도볼이 진정 최고다.

그리고 갸또쇼콜라도! 어쩜 이렇게 딱 알맞게 적당한 딱딱함에 진-한 초콜렛 맛을 느끼게 할 수 있지?

입 안이 행복한 환절기다.



2.

"어? 엄마랑 아빠랑 어디갔다왔어?"

늦은 저녁에 집에 도착한 나. 

당연히 부모님이 계실 줄 알았는데,  가족 중에 내가 집에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이였다.

'띡띡띡띡'

깜깜한 거실에 불을 켜고, 외투를 벗고 있는데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와 아빠는 산책 겸 차를 놓고 전철을 타고 백화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제 환절기니까 얇은 바람막이 입으려고 하나 사왔어"

엄마는 해맑게 이야기하곤 쇼핑백에서 바람막이를 꺼내 내게 자랑하셨다.

"오, 예쁘다! 잘샀네!"

슬쩍 한번 보고 힘차게 엄마에게 제스쳐를 취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엄마가 핸드백에서 주섬주섬 손바닥만한 종이를 꺼내며 내게 흔들었다.

"이게 뭐야?" 

가까이가서 그 정체불명의 종이를 자세히 보니,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입구에서 쪽머리 곱게 한 직원언니가 나눠주는 향수 프로모션 시향지였다. 

"아빠가 이거 너 향수랑 똑같은 냄새라고 하더라"

"오잉? 진짜? 나 아빠한테 한번도 내가 쓰는 향수 보여준 적 없는데?"

항상 나는 가방에 향수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화장대에서도 내 향수를 볼 기회가 잘 없다.

그때 아빠가 안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어머, 아빠 내 향수 알고 있었어?"

"어, 너꺼 당연히 뭔지 알지. 저거 종이 냄새 맡아보니 너꺼랑 똑같던데?"

정확히 말하면 완전 100% 같은 향은 아니지만 같은 회사에서 거의 비슷한 라인으로 나온 향수라서 향이 많이 비슷했다.

"오, 아빠 엄청 섬세하다" 

"???"

아빠는 '얘, 뭐야..'라는 듯한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셨다.

난 아빠가 내 향수를 알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뭐, 물론 당연히 외출하기 직전에 옷 다 입고 마지막으로 향수를 칙칙 뿌리니까 집을 돌아다니면 향이 날텐데

아빠는 그 향을 인지하고 계셨던 것이다.

아, 뭔가 내 향수같이 달콤하고 진하게 괜히 혼자 감동을 받았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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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http://doranprojec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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