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사실 그렇게 생겨먹었다. 인연읜 시작은, 그토록 어리숙하고 애매하게 첫 단추를 꿴다.마치 첫 여행이 그런 것처럼. 별 기억이 아닌데도 한 사람의 기억으로 웃음이 날 때가 있다. 돌아보면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닌데도 배를 잡고 뒹굴면서까지 웃게 되는 적이. 하지만 우리를 붙드는 건 그 웃음의 근원과 크기가 아니라, 그 세세한 기억이 아니라, 아직까지도차곡차곡 남아 주변을 깊이 채우고 있는 그 평화롭고 화사한 기운이다. 인연의 성분은 그토록 구체적이지도 선명하지도 않은 것으로 묶여 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좋아지면 왜 그러는지도 모르면서 저녁이 되면 어렵고, 밤이 되면 저리고, 그렇게 한 계절을, 한 사람을 앓는 것이다.
한떄는 소호였다. 사무치게 살고 싶은 곳. 그곳에 가면 내가 살면서 앓던 모든 것이 나을 것 같았다.내가 알고 지내고 속해 있던 고만고만한 세계가 흠씬 두들겨 맞는 느낌이랄까. 오래전 한때의 소호는 그런 설렘과 긴장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동네였다.그때 당신과 나는 소호에 있었다. 당신과 처음으로 향한 먼 곳이었다. 어떤 도망이었다.그리고 지금 나는 혼자 소호에 있다. 그때 당신과 내가 머물던 호텔의 건너편이다.새벽녘 저 창문을 열고 창밖으로 머리를 내고 담배를 피우던 기억. 담배를 피우는데 어디선가 커피향이 몰려와서 주방에 전화를 걸어 아침을 시켜먹던 기억.그때는 바깥으로 이 거리가 있는 줄 몰랐다. 그때는 그 작은 방 안에 당신과 나의 모든 것이 엉켜 있었다.당신이 나에게 신발을 사주었었다.당신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