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

어느 누구도 슬픔을 강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조바심이라면 조바심이고, 노파심이라면 노파심으로 강요되어졌을 뿐. 셀프강요로 인해 나는 고비를 넘긴 것 같다. 밤마다 그리워서 우는 일도 없으며,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간절해지지도 않았다. 여긴 다행스럽게도 계절의 장난도 없어 감정에 쉽게 지배당하지도 않는다. 물론 다달이 부-욱 찢어버리는 달력과 매주 넘어가는 다이어리 덕분에 가을을 실감하고, 추워졌다는 친구들과 가족들의 말, 그리고 SNS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들이 계절을 느끼게 해줄 뿐. 계절의 관성때문인지, 무의식 중에 계절을 학습한 덕분인지 몰라도 네일아트샵에서 색을 고를 때 쨍한 여름 색들은 외면하고 약간 어둡고 가을무드가 느껴지는 색을 고르는 내가 재미있다. 아 또 한 가지, 쇼핑몰에 가득 들어찬 브랜드샵들에도 계절은 있다. 자라엔 털옷이 잔뜩 나왔고, H&M엔 니트가 잔뜩이다. 여행도 없는 이 시점, 이 더운 나라에서 얼마나 팔릴 진 의문이지만. 작년 뉴욕에서 샀던 앵클부츠는 몇 번 신지도 못하고 부모님집 신발장 구석에 쳐박혀있고, 제작년 영등포 자라에서 내 사이즈에 맞는 걸 찾아다니다 겨우 구했던 니하이부츠 역시 큰 키를 감당하지 못하고 반으로 접혀서 어딘가에 박혀있다. 제 짝을 찾지 못한 부츠들만이 슬픔을 머금고 있을 뿐 무작위로 강요되어진 나의 슬픔은 나름 방어할 수 있는 음악들을 따라 이리저리 새어나갔고,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캐롤이든, 스티커든, 현실이든 머물게 하고 싶은 것들을 채워넣는다.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단연 숲이고 풍경이다.

-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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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나이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가 다른 네 사람이 모여

같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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